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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27. 2022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기만 하다면.


 저는 요리사입니다. 그리고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 자주 일을 하곤 합니다.

 위생을 위해서 매일 1시간 이상은 꾸준히 청소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주방에는 100도가 넘는 불은 물론 언제나 피자를 굽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400도의 오븐에 언제 자기 손을 벨지도 모르는 날카로운 칼날까지, 주방은 위험한 것들 천지입니다.

 손에 화상을 한번 입으면 상처가 낫는데 몇 주나 걸리기도 하고, 화상 흔적을 지우는 데에는 몇 년이나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새로운 요리사를 들일 땐,

"어느 손잡이 이신가요?"라고 묻고

"오른손잡이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저는 오른손의 등 쪽을 자주 보곤 합니다. 칼을 잡는 것은 오른손이기에 왼손을 잘 다치기도 하지만, 화상이나 다른 외상은 자주 쓰는 손에 더 흔적이 남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얼마나 고생을 하고 나와 만나게 되었는지 보기 위해서 그런 손을 보기도 합니다.

 주방은 그렇게 언제나 위험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엄격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으며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매우 보수적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몇 시간이나 서서 일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루기도 하고 완벽히 해내야 했던 것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건 결국 '지치기'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주방의 일을 그만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13시간 일하면서 쉬는 시간이라곤 30분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을 감당할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결국엔 다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글을 쓰기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며, 대부분의 좋은 일을 이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기만 하다면 계속 읽어주세요.


 

 오전 9시에 집을 나서고, 가게 근처에 와서 잠시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출근시간이 10시까지였지만, 10시에 딱 맞춰서 들어가고 싶어서 그렇게 대기하고 있었던 거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롭고 즐겁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정말 이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시작한 건데.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그런 생각만 매일 하게 되는 하루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기도 하며, 경험을 쌓아서 좋은 경험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로하고 괴롭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였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일은 그만두고 싶었고 출근도 하기 싫었죠.

 그래서 내린 결단은 하나였습니다.

"저 이번 달까지 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집안 사정을 거짓으로 둘러대고 사직 이유를 둘러댔습니다.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상태였고, 저는 여전히 출근하는 척을 하면서 집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2개월이 지나서야 그만둔 사실을 알리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여행지는 '평창 올림픽'이었습니다.

 여행을 한다는 건 정말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따라 해 보고 싶은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배낭여행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제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을 보고 그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는 게 저에겐 환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올림픽이라니.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저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고, 모든 사람들이 서양인이었고, 한국사람이겠거니 싶었으면 일본 사람이라던가 중국사람이었습니다. 완전히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 속에서 아버지에게서 연락 한통을 받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불안한 예감은 어째 미리 앞을 본 것처럼 틀리지 않는지, 혹시나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뒤늦게 온 저를 다른 친척 어른들이 야단을 쳤습니다.

 이런 시기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냐고 말이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고 눈물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찾아올 날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감흥이 없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저와 동생을 키워준 엄마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를 보내드리려고 할 때, 아버지는 평생 보이지도 않던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습니다.

"내가 엄마 맛있는 것도 많이 못 사주고! 그 좋아하는 것 하나 못 사주고!"

 그 말에 어째서인지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아파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완전히 모셔두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야. 그거 아냐?" 저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뭘?"

"너 초딩때. 열 살도 안될 때. 할머니가 너 데리러 간다고 학교 정문 앞으로 마중 나간 적이 있었거든."

"어."

"그땐 난 집에 있었고. 그땐 집에 엄마도 아빠도 없었고 할머니가 우리 키워줬었으니까. 할머니 도와주려고 밥상이라도 차리려고 했거든."

"그런 적이 있었나?"
"있었지. 그래서 처음 만들어봤어."

"뭘 만들었는데?"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 크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거 진짜 맛없었을 것 같애. 그냥 끓는 물에 참치 넣고 김치만 넣고 끝이었으니까."

"다시다도 안 넣었으면 맛없지."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할머니가 순간 놀라며 나한테 뭐라고 했던 기억은 있어."

"가스레인지 만졌다고?"

"그래 위험하다고."

 그런 기억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매일 할머니와 살았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를 도와주기에 밥상을 차렸었다. 할머니는 불로 요리를 한 나를 보고 놀라기도 하며, 동시에 기뻐했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뭔 말을 하려는 거야?" 동생이 물었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시작했었던 거라고."

 내가 해주는 것에 기뻐하고 맛있어해 준 할머니와 동생의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거기에 기뻐했고 요리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 기억과 계기가 있었기에, 그 일에 자신감을 갖고 계속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시작한 일에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내가 계속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친 마음에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왜 힘들기만 했던건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친구 없이 조용히 여행을 떠난다는 건, 제가 앞으로 걷는 만큼 지나간 일을 생각하기에 충분히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는 계란말이도 해보고 감자채 볶음도 해보고 카레도 만들어보고, 참 여러 가지 요리를 해봤습니다. 그게 전부 가족을 위한 일이었죠.

 혼자 여행을 하는 게, 힘들고 지친 마음에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기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요리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틀린 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좋아해서 시작한 일들은 여전히 힘들기도 했지만, 좋아한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추억, 좋아하는 일들을 만나면서 행복한 일들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웹툰작가 유지별이님 제공



 '지침'은 많은 것을 잊게 만듭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내가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것인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회복을 하고 그런 것을 되찾았습니다.

 그게 저는 그렇게 따라 해보고 싶었던 혼자만의 여행을 하면서 찾았던 거였죠.

 여행은 그저 하나의 계기일 뿐이었지 답은 아닙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조용히 이것저것 생각해보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그동안 왜 힘들기만 했던건지, 왜 내가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던 건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함이 그저 저는 여행이었을 뿐이었죠.


 여러분은 지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기만 한가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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