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참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은 더없이 무시무시했고, 임시적으로 바뀐 회사내의 방침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바뀌어 가면서 오픈전에 준비했었던 주변 소비층의 공략 준비가 꽤나 일찍 무너졌다.
물론 사람들의 감염경로를 줄이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 하루 40개 가까이 주문을 받던 레스토랑은 하루에 4개 받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런 과정은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도 그렇고 코로나 시대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자영업자들은 죽어나간다고 하고, 그 중에서도 장사가 잘된다는 곳도 아슬아슬한 곳도 많았다.
나의 월급을 주는 사장님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폐업에 대한 압박감을 받는 것 같았고, 한 번도 그런 위기에 두지 않았던 나로선 직원으로서 실직의 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그렇기에 나는 나중에 개인 식당을 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시장조사는 물론 메뉴 개발에 어떤 자리가 좋을지 어떤 곳이 월세가 쌀지 알아보고 다니곤 했다.
그 과정에는 내가 여러 가지 배웠던 사장님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너 좀 이상하다?"
"네?"
"내가 알기로는 너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 식당을 하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었잖아. 아니야?"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식당을 꾸리고 싶었던 것인지.
나의 중학생 시절이었다.
그때는 급식실이 따로 없어서 작은 카트가 교실 앞까지 배치되어서 반에서 한 명이 반 친구들에게 반찬을 나누어주곤 했다. 그 역할을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동안 해왔고 그 대가로 급식을 무료로 먹곤 했다.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
집안이 어떠한 위기로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기에 급식이라도 무료로 받으며 생계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담임선생은 나를 꼽주기도 했다.
"그렇게 집안을 생각한다면 공부도 더 해라. 밥만 그렇게 먹으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꽤나 큰 상처였다.
그것도 1년 내내 보는 담임선생이 그렇게 말했었다는 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몇 년이 더 지나서 그런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때 그 인간이 좀 더 나에게 좋고 따뜻한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면서 스승의 날에 찾아가게 될 인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왔던 말은 그 어린아이에게 아직 생기지도 않았던 자존심을 뜯어내 긁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요리를 하면서 생계가 어려운 아이들, 결식아동들에게 내가 하는 음식을 무료로 줄 수 있는 그런 식당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선 물론 장사가 잘되어서 매출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돈을 잘 벌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무서운 사회 파괴자 때문에 그 목적을 잊고 그저 위압감에 돈을 잘 벌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하마터면 꿈을 잊을 뻔했다.
내가 원하던 건 단순히 매출이 좋은 식당을 운영하는 게 아니었는데.
"감사합니다. 잊고 있었네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냐. 다행이네. 그거 어려운 꿈인 거 알지?"
"그럼요."
"그래 잊지 말고 꼭 해내라. 그렇게 베푼 은혜 돌고 돌아서 오는 법이니까."
"그럼요."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때 담임선생이 나에게 좋은 말로 은혜를 베풀었다면,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나 그 선생에게 돌려줬을 텐데.
나도참 용케 그런 반감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졌다니.
꽤나 아이러니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 돈을 버냐가 아니라, 왜 돈을 벌고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잊지 않는 것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서 수많은 것에 변화를 주기도하고 다시 깨닫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