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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12. 2018

우리도, '라면'만 먹고 싶은 게 아니에요

어른이가 되어서도 하는 때쓰기



 공무원 준비를 한지 몇 년째가 되어가고,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 데 돈도 벌어보지 못하다 보니 나 자신에 너무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눈 앞에는 아무리 맛있는 반찬들이 있어도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고 스스로 식욕을 다 날려버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공부만 하는 나를 이렇게 기다려 주시는 데 나는 왜 이런 짜증을 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끼고 있었다. 친구들은 다 직장을 구하고 일도 하고 연애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백수나 다름없었다. 공무원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지 않고 독서실 근처의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과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던 적이 있다.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달라는 것도 미안하고, 나 때문에 반찬을 계속 새로 만들어 놓는 것도 미안했다. 그저 나는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화를 내셨다.

"집에 오는 데 1시간이 걸리니 30분이 걸리니? 잘 먹어야 뭐든 잘하는 건데, 또 라면만 먹고 다니지?"

 딱히 라면을 먹었다고 말은 안 해도 어머니는 무엇을 먹었는지 대충 눈치채셨다. 옷에 라면 국물이라도 튄 건지, 입에서 라면 냄새가 나는 건지, 라면만 먹을 때만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그렇게 답한다.

"그냥 그렇게 했어, 빨리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

 라고 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언성은 분명 높아져 있을 것 같았고 내 기억을 조작하는 것 처럼 그런 말을 한 것 처럼 멋대로 기억해 버린다.

 사실은

"아, 그냥 알아서 먹었으니까 신경 좀 쓰지마!"

 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거짓말을 할 땐 괜히 우울해졌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 그깟 공무원이 뭐라고 내 청춘을 이렇게 바치고 있는 건지, 매일매일 공부를 하더라도 나를 받아 주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 욕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늘 잔소리를 하신다.

 그게 어디까지나 자식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마냥 듣기 좋기만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는 분명,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에 하는 잔소리고, 아들 역시 그런 뜻을 알기 때문에 듣기가 싫다.

"또 라면 먹니? 좀 잘 챙겨 먹어."

 잔소리의 시작은 대부분, 우리가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울 때였다. 부모님 입장에선 자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닌, 영양가가 좋지 않은 음식으로 한 끼를 채우니 마냥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자식 또한 라면만 챙겨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가끔은 분명 뜨끈하고 맵고 짭짤한 라면이 먹고 싶을 때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고급 음식도 아니고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몇 번을 먹게 되면 분명 질리고 아예 먹고 싶지도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라면을 먹어야만 했다. 결코 라면을 매일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왜 그리 라면을 고집했을까. 물론 생활비가 부족하기도 했던 게 제일 컸지만,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시간 절약이나 용돈 절약 등 나의 편의를 위함이라고 변명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외롭게 버티고 있는지, 그 말을 쉽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쌓여가는 컵라면 용기로 표현했던 건 아니었던가 생각했다. 나의 서러움을 알아달라는 무언의 항의 같은 억지스러운 표현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런 걸 부모님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을 정말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라면 말이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였고, 나 서러움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잔소리도, 그런 괴로움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을까.



 그런 떼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한테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던 어린애처럼, 여전히 나는 떼를 쓰고 있었다. 어째 방법이 더 유치해진 건 아닌지, 여전히 최고의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부모님도 자식도 서로를 잘 알 수 있지만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키웠던 자식인 만큼, 자식이 아픈 걸 보는 게 제일 힘든 부모님인 만큼, 내가 얼마나 어떻게 괴로울지 부모님도 잘 아시지 않을까.


 오늘은 집에 꼭 들어가서 밥을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 이런 말을 꼭 해야지 하면서.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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