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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1. 2017

01. 장장지지(將將之智)로 천하를 평정하다.

<최후의 승자가 되라>

학계에서는 진시황의 서거 이후 유방이 새 왕조를 세울 때까지의 7년간을 초한지제(楚漢之際)로 칭한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서초패왕(西楚霸王)의 자리에 오른 후 한중왕(漢中王) 유방이 천하를 거머쥐는 시기까지 진행된 짧은 과도기를 말한다. ‘제(際)’라는 표현은 ‘시대’가 아니라 ‘과도기’를 뜻한다.

     
사마천은 『사기』 「고조본기」에서 건달 출신인 유방이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던 항우를 누르고 천하를 평정하게 된 배경을 병사가 아닌 장수를 부린 데서 찾았다. 장수를 수족처럼 부리는 이른바 장장(將將)의 지략에 주목한 것이다. 장수는 많은 병사를 거느리기 때문에 장수를 부리면 결국 수많은 병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된다. 유방이 발휘한 난세 리더십의 요체를 ‘장장지지’에서 찾은 셈이다.
     
반면 그는 「항우본기」에서 항우의 패망 원인을 시종 힘으로 밀어붙이며 천하를 경영하고자 한 데서 찾았다. 항우 자신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무용(武勇)은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했지만, 사마천은 일개 필부(匹夫)의 용맹(勇猛)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전한 말기의 유학자 양웅(揚雄)도 비슷한 생각을 보였다. 저서 『법언(法言)』에서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을 이같이 비교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초왕 항우가 해하에서 패해 바야흐로 죽게 되었는데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고 했으니 이는 믿을 만한 것입니까’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기를, ‘한왕 유방은 군신(群臣)들의 책략을 다 썼고, 군신들의 책략은 군중(群衆)들의 역량을 다 쓰게 했다. 그러나 초왕 항우는 군신들의 책략을 꺼려 오로지 자신의 역량에만 의지했다. 다른 사람에게 힘을 다 쓰게 하는 사람은 승리하고, 자신의 역량으로만 경쟁하는 사람은 패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 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항우와 유방의 리더십에 대한 양웅의 비교는 21세기 글로벌 리더십의 관점에서 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군신과 군중의 대비가 그렇다. 이는 원래 한비자가 한 말이다. 『한비자』 「팔경(八經)」의 해당 대목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여러 사람의 힘을 대적할 수 없고, 한 사람의 지혜로는 만물의 이치를 다 알 수 없다. 군주 한 사람의 힘과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온 나라 사람의 힘과 지혜를 이용하는 것만 못하다. 군주 한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무리를 대적하면 늘 무리를 이룬 쪽이 이긴다. 설령 계략이 가끔 적중할지라도 군주 홀로 고단하고, 만일 들어맞지 않으면 그 허물은 온통 군주 홀로 뒤집어쓰게 된다. 하급의 군주인 하군(下君)은 오직 본인 한 사람의 지혜와 힘을 모두 소진하고, 중급의 군주인 중군(中君)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모두 발휘하게 하고, 상급의 군주인 상군(上君)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를 모두 발휘하게 한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명군은 먼저 여러 사람의 지혜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개개인의 의견을 일일이 듣는다. 그리고 곧바로 공청회를 열어 이를 토론하게 한다. 공개 토론을 생략하면 군주는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결단하지 못하면 이내 일은 지체되고 위기는 커진다. 그러므로 군주가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결단하면 신하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염려가 없다.”     

21세기의 최고통치권자를 비롯해 기업 CEO들이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뛰어난 계책이다. 세계 IT산업에서 유일하게 애플 제국과 자웅을 겨루고 있는 삼성이 바로 그 실례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용인 연수원에서 가진 ‘21세기 CEO 과정’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다수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한 사람의 지혜로는 만물의 모든 이치를 알기 어렵다. 한 사람의 지혜와 힘보다는 많은 사람의 지혜와 힘을 쓰는 게 낫다.”
   
「팔경」의 내용을 살짝 돌려 표현한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독력(獨力)은 중력(衆力)만 못하고, 독지(獨智)는 중지(衆智)만 못하다. 한비자는 「팔경」에서 하군은 ‘독력’과 ‘독지’, 중군은 ‘중력’, 상군은 ‘중지’를 쓴다고 언급했다. 동양이 기원전부터 ‘중지’를 얼마나 중시해 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양웅이 항우의 패망 원인을 ‘독지’와 ‘독력’에서 찾은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난세에 작은 성공과 명성에 안주하는 알량한 자존심과 자부심은 자신을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치명적인 독소였다. 항우는 바로 이 덫에 걸려 스스로 패망했다. 반면 무일푼으로 시작한 유방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기에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다. 기존의 관행과 가치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병사 대신 장수를 부리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용인술과 용병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우가 가진 천하제일의 무용은 일개 필부의 용맹인 ‘필부지용’으로 폄하되고, 건달 출신 유방의 자유로운 행보가 장수를 수족처럼 부려 천하를 거머쥐는 지혜인 ‘장장지지’로 표현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유방의 난세 리더십이 항우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천하를 거머쥐었기에 모든 것이 미화된 측면이 있다. 유방 역시 입에 욕설을 달고 살며 사람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식으로 자고자대(自高自大)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득천하(得天下)는 항우가 ‘중지’를 활용하지 않고 ‘독지’로 일관하는 바람에 얻은 반사 이익의 성격이 짙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자고자대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도 한 사람은 애희 우미인의 머리를 애마인 추의 안장에 매단 채 독부(獨夫)의 모습으로 적장들과 분전하다가 전사했고, 한 사람은 장수를 수족처럼 부린 덕분에 새 왕조의 창업주가 되었다. ‘독지’와 ‘중지’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원소와 조조는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삼국지』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 따르면 조조가 원소와 함께 동탁 토벌을 위해 기병했을 때 하루는 원소가 문득 조조에게 이같이 물었다.
     
“만일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어느 쪽으로 나아가 근거지로 삼는 것이 좋겠소”
조조가 반문했다.
“족하(足下)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원소가 대답했다.
“나는 남으로 황하를 점거하고 북으로 연과 대 땅에 의지해 북쪽 오랑캐를 병사로 불러들여 남쪽으로 내려가 천하를 다투겠소. 이리하면 거의 성공할 것이오.”
그러자 조조는 이같이 응답했다.
“나는 천하의 지모와 역량을 사용하여 도로써 그들을 제어할 생각이오. 그러니 어느 곳이든 안 될 곳이 없소.”
   
여기서 조조는 ‘중지’를 천하지지력(天下之智力)으로 표현했다. 천하 단위의 ‘중지’를 통해 난세를 종식하겠다는 취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안방과 문밖의 경계가 사라진 21세기 경제전쟁의 모습과 맞아떨어진다. ‘초한지제’ 당시 유방이 발휘한 ‘장장지지’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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