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트렌드를 읽다>
인공지능(AI)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보통 AI로 불리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 혹은 인조지능이라고도 한다. 인공지능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대체적으로 1950년대 보급되었던 체스 프로그램 게임이라 보면 된다.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었는데(물론 여기서 ‘생각’이라는 것도 의미가 애매하기는 하다) 깊은 사고를 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대응과 판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지금 완성되어 있는 상태인가? 이것 역시 애매하다. 인공지능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지능’에 대한 정의를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공지능이란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며, ‘사람의 뇌를 닮게 만들어가는 무엇인가’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로봇을 물어보면 대부분 ‘터미네이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건 AI가 육체까지 가졌을 때의 모습이다. AI는 ‘뇌’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컴퓨터 ‘할’이나 <레지던트 이블>의 슈퍼컴퓨터 ‘레드퀸’을 생각하면 된다. 아직 먼 미래, SF소설과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던 인공지능을 현실에서 고민하게 된 건 2016년 초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다.
구글의 ‘알파고’
2016년 3월 우리는 인류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인간지능 vs 인공지능.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시합이었다. ‘체스’가 아닌 ‘바둑’까지 과연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을 이길 수 있을까? 각종 우려와 예측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알파고의 4:1 승리였다. 전 세계적인 이벤트가 국내에서 열린 덕분에 인공지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도 ‘알파고’ ‘딥마인드’의 용어를 입에 쉽게 올릴 정도로 이 대국은 큰 영향을 미쳤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알파고의 존재에 대해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보다 영리한 ‘기계’가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해묵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이 너무 당연한데, 완벽한 존재가 그것도 우리보다 영리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에는 인간보다 영리하게 만들어진 생각하는 로봇 ‘큐티’가 등장한다. 큐티는 인간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신이 사람을 임시방편으로 만들었고 자신을 완성된 제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이야기가 소설로만 들리지 않는 현실이 곧 올 것 같다.
MS의 ‘테이’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구글’만 하는 건 아니다. MS는 알파고의 성공 직후인 2016년 3월 23일 인공지능 ‘테이’를 공개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라면 테이의 목적은 ‘대화’다. 마치 아이폰의 시리와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듯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쉽게 테이와 ‘채팅’을 나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해진 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고처럼 ‘신경망’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테이는 공개된 지 16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테이가 인종차별적인 발언,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부 사람들이 테이에게 ‘나쁜 말’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테이는 ‘너는 멍청한 기계야’라는 인간의 말에 ‘난 최고에게 배웠다. 난 너희들에게 배웠고, 너희들도 똑같이 멍청해’라는 답까지 할 정도였다. 주입식 교육, 어릴 적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아이에게나 하던 말이었는데 인공지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곧 인공지능에게도 ‘도덕’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IBM의 ‘왓슨’
좀 더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이전에는 ‘체스’가 있었다. 인간에 대한 컴퓨터의 도전은 1989년부터였다. 당시 IBM은 Deep Thought를 만들어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에게 도전했지만 0:4로 완패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6년 그 유명한 Deep Blue 딥 블루 가 등장했다. 딥 블루는 6경기 중 첫 경기에 승리해 세계 챔피언에게 한 경기를 이긴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다음 해 1997년 업그레이드된 딥 블루는 2승 3무 1패로 카스파로프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체스에서 가능성을 본 IBM은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다. 바로 미국의 유명한 퀴즈쇼 <제퍼디>에 도전한 것이다. 도전한 컴퓨터의 이름은 ‘왓슨’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2011년의 일이다. 체스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된 건 사람이 말하는 ‘언어’를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퀴즈쇼 중에는 인터넷 연결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마치 사람처럼 왓슨은 차단 전까지의 데이터만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왓슨은 다른 챔피언들을 제치고 승리했다. 알파고의 이야기와 좀 비슷하지 않은가? 왓슨의 행보를 보면 알파고가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을 어느 정도는 예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왓슨’은 헬스케어와 금융 분야, 미디어・커머스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왓슨을 의료분야에 적용한 ‘왓슨 포 온콜로지’ 플랫폼은 이미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활용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5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료정보를 학습해 환자 수천 명의 사례에 적용해 치료방법을 제시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도 가천대 길병원에 도입되어 있다.
AI 왓슨, 길병원 ‘보 조닥터’로 온다.
그리고 도쿄대 의학연구소에 도입된 왓슨은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여 급성골수성백혈병 중에서도 2차성 백혈병이라는 특수한 유형의 결과를 불과 10분 만에 내놓았을 정도다.
2015년 12월에는 왓슨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커머스가 노스페이스 페이지에 적용됐다. 사이트 접속 시 사용자는 ‘언제 어디서 재킷을 입을 건지’ ‘어떤 기상환경에서 착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답을 하면 이를 토대로 가장 잘 어울리는 재킷을 추천받을 수 있다. 또 2016년 힐튼호텔과 제휴해 최초의 호텔 컨시어지 로봇 ‘코니’를 공개했다. 코니는 움직이는 로봇으로, 왓슨의 인공지능 뇌 이 탑재되어 움직이며 고객에게 인사하고 질문에 답해준다.
‘왓슨’은 법률분야에서도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스타트업인 로스 인텔리전스는 왓슨을 기반으로 ‘로스’란 이름의 AI 변호사를 만들었는데, 관련 법 조항, 과거 판례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주는 일을 신임 변호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활용은 확실히 기업의 성과를 올려주고 있다.
인공지능 - 일자리의 위협
하지만 2016년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이 언급됐다. ‘일자리의 미래’란 이름의 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그 중심 키워드를 ‘인공지능・로봇・생명공학’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이 2020년까지 700만 개나 되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만약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의 머릿속에 ‘공장’의 일자리가 떠올랐다면 우리가 가진 지식에 업데이트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이미 공장 노동의 대부분은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다. 기계가 아닌 ‘인공지능’에 빼앗기게 될 일자리를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될 가까운 미래가 궁금하다면 SF 영화<HER>를 꼭 보자. 영화 속 주인공은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OS 쉽게 말해 윈도우다 와 사랑에 빠진다. 내 컴퓨터에 상주해 내가 주고받은 이메일, 접속했던 사이트, 카드내역 등 다양한 ‘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의 ‘삶’을 돕는 서비스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이런 프로그램은 획일적인 게 아니라 나에 대해 학습하며 나에게 최적화되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화를 하고 감정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까지 쌓여진 이런 존재를 아무 때나 쉽게 지우거나 삭제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하나의 생명으로 보아야 할 것일까? 지속적으로 생각해볼 문제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은 ‘편지’를 대필해주는 ‘대필 작가’인데, 일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어떤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내야 할 때 글을 직접 타이핑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만든 여러 ‘초안’들을 읽어보며 그중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어떤가?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창의적인 일’이라서 일자리의 위협을 느낄 일은 없다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착각이다. 글쓰기는 물론 작곡, 작사 심지어 그림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들을 인공지능은 제시해줄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기사를 작성하는 건 이미 상용화되어 있다. 인공지능 기자 ‘WordSmith’는 야후의 축구리포트, MLB・MBA경기평, 기상예보, 주식・보험과 관련된 기사들을 이미 써왔다.
로봇기자가 야구 기 사 쓴다.
2013년 한 해 동안 300만 개의 기사를 썼고, 2014년에는 10억 개의 기사를 썼다는데 실제 실험을 해본 결과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일반 기자가 쓴 글과 구분해내지 못했다. LA타임스는 ‘퀘이크봇’이란 지진 보도 전문 로봇기자를 가지고 있는데 퀘이크봇은 진도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속보’가 기사의 핵심이 될 때 로봇을 이기는 일은 점점 힘들어 보인다. 심지어 일본의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 공모전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제목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인데, 움직일 수 없는 붙박이 인공지능이 자신의 심정을 쓴 소설로 사람이 쓴 소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AI의 창작은 ‘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MS가 네덜란드의 기술자들과 공동개발한 AI인 ‘넥스트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로봇관 같은 행사장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 아니라 정말 사람보다 더 잘 그리는 로봇이다. 놀라운 것은 ‘딥러닝 기술’을 통해 학습한 다른 화가의 화풍을 흉내내어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렘브란트의 여러 작품을 입력해서 분석하여 결과를 입력한 후 ‘모자를 쓰고 하얀 깃 장식과 검은색 옷을 착용한 30~40대 백인 남성을 그리라’고 명령을 내리자 AI는 렘브란트가 그린 것처럼 백인 남성의 초상화를 그렸다. 게다가 3D 프린팅으로 인쇄되어 유화가 가진 질감 역시도 똑같이 재현됐다.
스마트폰 앱 중 Prisma(프리즈마)를 써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앱을 실행하고 사진을 선택한 후 원하는 ‘필터 화풍’을 선택만 하면 그림을 수정해준다. 이 앱은 인터넷이 연결되어야만 사용이 가능한데 사용자가 선택한 사진을 서버로 보낸 후에 사진을 바탕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직접 그림을 그려준다.
앞으로 인간의 ‘창의력’이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힘을 말하게 될까? 아니면 지금과는 달리 최선의 선택을 하는 ‘선택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