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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06. 2017

02. 편의점, 문 닫기는 더 어렵다.

<정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까?>

편의점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문을 닫는 매장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에는 천여 개의 편의점이 폐점했지만 2년 뒤에는 2천 4백여 개로 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전체 편의점 수 대비 폐점 비율도 4.8%에서 9.7%로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문을 닫는 것은 문을 열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편의점 문을 닫으려면 본사에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점포별 운영 기간에 따라 한 달 평균이익 배분금액의 6배에서 12배까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른바 위약금입니다. 여기에 집기 철거비, 시설 손해배상비까지 모두 물어내야 합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만 원 단위입니다.

     
2015년 8월 편의점 문을 열었다가 최근 폐점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 씨를 만났습니다. 그의 사정도 딱했습니다. 물건 원가와 가게 임대료를 제한 수익이 300만 원. 이 비용으로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300만 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이런 수익 상태가 개업 이후 지금까지 계속됐습니다. 편의점 문을 연 지 6개월째. 지금 폐점을 하면 5,600여만 원을 본사에 물어야 합니다. 초기 투자금 6,500만 원을 대부분 잃는 셈입니다. 
     
애써 평생 모은 돈으로 큰맘 먹고 투자한 사업인데, 너무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황인 겁니다. 이씨는 좌절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씨는 꼼꼼히 알아보지 않고 계약한 자신을 탓하면서도 확실하게 수익이 보장된다고 말한 본사 담당자에 대한 원망과 실망도 감추지 못했습니다. 폐점하려는 편의점주들은 제각기 다른 사연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번동에서 만난 이정애(가명) 씨는 이씨보다 사정이 더 나빴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기준보다 훨씬 더 많은 위약금을 물어야 할 상황에 부닥쳐 있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편의점을 하는 내내 적자에 시달렸고, 지병인 허리 디스크로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녀는 건강상의 이유로 편의점 운영이 불가능하며, 더 이상의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해당 편의점을 양도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본사에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본사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5년 8월 그녀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러 편의점을 비운 사이, 본사는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그동안 밀린 미납금이 많고, 본사와의 합의 없이 편의점 문을 닫았다는 것이 계약 해지의 이유였습니다. 본사는 그녀에게 12개월 치의 평균이익 배분금액과 시설 위약금, 철거비 등을 합쳐 9천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표준거래계약서에는 계약을 해지할 경우 통상 6개월 치의 평균이익 금액을 부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이 기준의 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셈입니다. 그녀는 본사에 이유를 물었습니다. 본사는 해당 점포의 경우 서로 합의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주의 귀책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만큼 더 많은 위약금을 부과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편의점을 한 지 2년여. 그녀에게 남은 것은 빚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지병으로 경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본사가 계약 해지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 점은 부당하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리고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합니다.  

  
눈물의 편의점을 줄이려면

편의점 본사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가맹점의 숫자를 늘리는 데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사는 점주의 이익보다 본사의 이익을 늘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전문가들은 경쟁적으로 점포를 확장하는 업계의 행태를 규제할 수 있도록 거리 제한 등의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요건들이 가맹 본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정된 점, 가맹본부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법적으로 이런 행태를 제재할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꼭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점주를 보호할 제도적인 장치가 미흡한 만큼 현재 상황에서 점주도 자신의 밥그릇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습니다. 본사와 맺은 계약서, 정산서 등 수많은 서류 앞에서 꼼꼼하고 날카로운 이성을 발휘해 손해가 될 계약은 절대 하지 말고, 스스로 사전에 상권 조사를 철저히 해서 ‘망할 사업’은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전국에 28,000여 개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비단 편의점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맹사업에 뛰어든 또 다른 많은 소시민이 있습니다. 당장 내일의 생계조차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고심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누군가의 어머니고 아버지입니다. 그분들의 눈물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을까요?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에 들어서지만, 제게 편의점은 제가 만난 많은 편의점주의 눈물이 깃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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