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눈을 뜨자 이쿠코는 우선 남자를 내쫓고, 혼자서 느긋하게 단팥빵과 우유를 아침으로 먹었다.
그리고 2번가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사한지를 확인한다. 이쿠코는 직설적으로 묻는다.
“엄마, 잘 지내?”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묻는다. 매일 아침 있는 일이라, 이쿠코가 묻기도 전에 엄마 쪽에서 먼저 “엄마, 잘 지낸다” 하고 말하는 일도 있다.
여보세요, 도 생략하고 전화를 받자마자 그렇게 말한다. 아무튼 매일 아침 그런 식으로 이쿠코는 엄마의 무사함을 확인한다.
“오늘 밤에 하루코 언니 만날 거야.”
이쿠코가 말하자, 엄마는,
“어머나, 그러니”
하고 대답했다.
“안부 전해다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일기예보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켰다. 이쿠코 방의 텔레비전에는 천이 씌워져 있다. 묵직하고 광택 있는 연두색 타프타 천이다. 옛날에 ‘2번가 집’에서 커튼으로 사용했던 천을 엄마에게 잘라달라고 했다. 텔레비전을 보려면 그 천을 걷어 올려야 한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예수를 좋아하는 이쿠코는 텔레비전 위에 조르륵 몇 개 놓은 예수상으로 걷어 올린 천을 눌러놓는 작업을 한다.
이쿠코 참 웃긴다.
두 언니는 이쿠코를 곧잘 놀린다. 미션계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데,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 모르겠네.
이쿠코도 왠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예수와 관련된 것들이 좋았다. 교회가 있으면 들어가보았고, 성모마리아의 그림엽서가 있으면 갖고 싶었다. 말과 당나귀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그림책에 흠뻑 빠졌었는데, 그게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색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중학생 때는 구약성서를 읽었다. 세례를 받을까 한 적도 있지만, 자신의 기분이 신앙심과는 다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마 색감을 좋아한 것이리라. 이쿠코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예수나 성모마리아, 당나귀와 양과 밤하늘과 별, 그들이 있는 세계의 색감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일기예보를 보고는 텔레비전을 끄고 천을 조심조심 내린다. 오늘밤 도쿄의 강수 확률은 26퍼센트인 것 같다.
이쿠코의 직장에는 유니폼이 있기 때문에 출퇴근 때는 옷을 자유롭게 입어도 된다. 어차피 코트를 걸칠 거니까, 이쿠코는 손에 닿는 원피스를 골랐다. 크림색 바탕에 보라색과 노란색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옛날에 엄마가 입던 원피스다.
화분에 돋은 양치식물에 물을 준 후, 나갈 준비를 다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벌써 자동응답 기능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쿠코?”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듣는, 그러나 잘 아는 목소리다.
“사토미?”
이름이 떠오르자 동시에 그리움도 밀려왔다. 이쿠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패션 전문학교를 다녔다. 사토미는 그때 같은 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고, 졸업한 후에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만나고 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이쿠코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사토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토미?”
또 몇 초 동안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간신히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니?”
이번에는 이쿠코가 놀라서 입을 다문다. 사토미는 화가 나 있다, 는 것이 이쿠코가 인식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긴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세팅한, 키 큰 여자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니?”
그런 추궁에 이쿠코는 말을 아꼈다. 하릴없이 텔레비전 위에 놓인 크고 작은 예수상을 바라본다. 금도금이 벗겨진 것이 두 개, 하얀색도 두 개, 그리고 상아색 하나에 짙은 초록색 하나.
“정말 어이가 없어서.”
사토미는 이쿠코를 몰아세운다. 두 번째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
이쿠코는 이제야 무슨 얘긴지 알았다.
“미안해.”
사토미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튼 사과했다.
“하지만 그건, 너랑 그 사람 문제잖아.”
솔직히 그랬다.
“본질적으로는 나랑 관계없어.”
그렇게 덧붙였다. 사토미는 또 말이 없다.
지난주, 이쿠코는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생일이 어쩌다 토요일이어서 전문학교 시절 친구 몇 명이 모여 축하해주었다. 사토미는 일 — 그녀는 패션 관련 무역회사에서 일한다. 그리고 그날 VIP를 위한 세일이 있었다 —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 미츠오가 있었다. 한 친구가 일하는 조그만 바를 통째로 빌려,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놀았다. 그 아이들은, 하고 이쿠코는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성장이란 걸 모른다니까.
전문학교에 다니는 2년 동안, 이쿠코는 날마다 즐거웠다. 독특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건 알아.”
시큰둥한 목소리로 사토미는 말했다.
“나, 좀 우울한가 봐.”
그날, 요란하게 먹고 마시고 논 후에 이쿠코는 미츠오와 잤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신나게 놀다가 그냥 잔 것이다. 미츠오는 유니크한 남자였다.
미츠오와 사토미의 관계 — 벌써 10년째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서, 그래도 내게는 이 사람밖에 없다는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 는 물론 알고 있었다.
“미츠오도 참 순진하다. 굳이 사토미에게 털어놓을 것도 없는데.”
이쿠코가 그렇게 말하자 사토미는 맥없이, 그러나 우습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성격이야.”
조만간 만나서 밥이나 먹자, 하고 약속하고 이쿠코는 전화를 끊었다.
늘 타는 전철을 타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쿠코는 아사가야에 살고 있다. 상점 거리를 지나 역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 걸린다. 바깥 날씨는 화창하지만 기온은 낮다. 내쉬는 숨이 하얗다.
직장인 운전면허학원까지는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이 걸린다. 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까도 싶었지만, 이쿠코는 이 동네의 어수선함이 마음에 들었다. 짙으면서도 조용하다.
사토미, 잘 있어서 다행이네.
이쿠코는 그렇게 생각한다. 홧김에 전화를 걸었다는 건 벌써 잊었다. 시계 가게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 밤이 되기 전에는 머리를 빗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하루코 언니에게 혼날 거야, 하고.
‘조천’은 하루코와 이쿠코가 좋아하는 가게다. 둘 다 이 가게의 다짐육 튀김은 일본 최고라고 생각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하루코는 가운뎃손가락에 낀 반지를 빙빙 돌리고 있다. 초조할 때면 나오는 버릇이다.
하루코는 자신이 예정한 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다. 외국계 회사는 시간적으로 자유롭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다 거짓이라고 하루코는 생각한다. 물론 휴가도 받기 쉬워 여행을 좋아하는 하루코에게 편리한 것은 맞지만, 하루하루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퇴근 시간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다.
약속 시간에 오십 분이나 늦었다. 이쿠코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 가게에는 언제 가도 술 취한 아저씨가 있다. 하루코가 평소 접대에 사용하는 가게와는 격이 다른 그런 가게에 동생을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몹시 꺼림칙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쿠코다. 마음이 맞았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면서 아저씨를 따라갈 수도 있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 돼?
구마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루코는 등받이에 기대어 피식 웃는다. 창밖은 캄캄한 밤이다. 고속도로 펜스 너머로 조그만 네온 불빛이 천박하게 깜박거리고 있다. 구마키는 아마 모를 것이다. 이쿠코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이쿠코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하루코는 눈을 감고 살며시 숨을 들이쉰다. 택시 안은 하루코의 향수 냄새로 가득하다. 운전사는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하루코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일곱 살 때 아빠가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사준 후로 하루코에게 향수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은 ‘ENVY’를 사용하고 있다. 익숙한 향기 속에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치 동물 같군.
언젠가 구마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고속도로에서 나가면 첫 신호에서 우회전해주세요.”
하루코는 업무용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상큼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