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질문법>
가끔 기업 문화 관련한 자문을 받을 때가 있다. “사장님이 기업문화를 바꾸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제가 팀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움말을 부탁합니다.” 난 질문부터 던진다. “그런데 기업 문화의 정확한 정의가 뭔가요?” 그럼 이러저러한 설명을 한다. “기업 문화는 구성원들의 암묵적인 가치가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죠. 결국 기업 문화가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기업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난 다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그런 기업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나요? 기업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난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 언젠가는 바꿀 수 있겠지만 투자 대비 가치가 적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업 문화는 오너 성격과 가치관의 확대다. 삼성의 기업 문화는 이병철 회장 성격의 확장이고,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그것의 정확한 뜻을 묻는 것이다. 재정의를 확실히 하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상처받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상처받았다는 말의 정확한 정의가 뭘까?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그 사람이 상처를 주려는 의도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그 사람이 선의에서 한 말을 오해한 건 아닐까? 늘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혹시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는 것은 왜일까?
사실 상처를 받았다는 건 이미 내 안에 상처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약함과 부족함과 열등감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그걸 들추어낸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열등감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상처를 잘 받는다는 건 깨지기 쉬운 물건, 스스로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란 뜻이다. 상처를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처의 정의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기분이 든다면 혹시 스스로 자기 마음에 상처를 새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보자.
요즘 인정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데 몰두하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시도 때도 없이 누르기도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정의 정의는 무엇인가? 인정(認定)의 앞 글자인 ‘알 인(認)’자를 파자하면 ‘말씀 언言’ 더하기 ‘참을 인(忍)’이다. 말을 참으라는 뜻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상대 이야기를 들으라는 말이다. 그럼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랬었구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구나. 자칫 오해할 뻔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인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정이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다. 나를 감추고 다른 사람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난 후 상대로 하여금 자부심이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정의 정의다.
가장 좋은 질문은 개념의 정의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도대체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남이 내린 정의가 아닌 나만의 정의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경영자라면 경영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그러하다. 돈이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부자는 어떤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이슈는 무엇인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이슈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 보는 것이다. 건강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자유도 그러하다. 재정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