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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18. 2018

05. 내가 만약 그 입장이었더라면

<고수의 질문법>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엄청났다. 사망자 40만 명, 난민 180만 명, 게다가 화학무기로 민간인까지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존 캐리 미 국무장관은 2013년 9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한 여러 질문을 받았다. 언제 공습이 이루어지는지,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시리아의 대응은 어떻게 예상하는지 등의 질문이 있은 후, 한 여성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시리아가 공습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의아해했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니만큼 공습을 전제로 한 질문들이 이어졌던 상황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그 여성은 미국이 아닌 시리아 입장에서 공습을 막을 방법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존 캐리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살상무기를 포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얼마 후 시리아를 지원하던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 브로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러시아는 시리아가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살상무기를 단계적으로 포기할 것을 요청합니다.” 미국의 개입으로 인한 전쟁의 확대를 피하고 싶었던 러시아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얼마 후 시리아 외무장관 왈리드 알무알렘은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이틀 후 미국은 시리아 공습을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기자회견에서 한 여성의 질문이 있은 지 이틀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 여성은 CBS의 유명 앵커이자 기자인 마거릿 브레넌(Margaret Brennan)이다. 그의 질문 하나가 시리아 공습을 막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게 질문의 힘이다.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엄청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반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미국 입장에서 질문을 했다. 물론 그런 질문도 필요하다. 언제 공습을 할 것인지, 규모는 어떠한지 등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마거릿 브레넌은 시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미국이 공격을 한다는데 내가 시리아 사람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시리아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임원들을 코칭해왔는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우리나라 모기업의 신사업 때문에 스카우트된 사람이었다. 척 보기에도 아주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명확해 보였다. 해야 할 일과 이를 위한 로드맵도 확실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일하던 그가 점차 지쳐가는 기색이 보이자 퇴사한다고 할까 봐 걱정된 인사팀에서 내게 SOS를 보내 코칭을 하게 되었다.
  
그는 뭔가 할 말이 많았고, 그동안 쌓인 게 꽤 있는 듯했다. 멀쩡히 다른 회사 잘 다니던 자기를 스카우트했으면 제대로 일할 여건을 만들어줘야지, 이렇게 간섭할 거면 뭣 때문에 자기를 뽑았느냐는 감정이 목까지 차 있었다. 무엇보다 직속상관과 갈등이 많았다. 신사업인데 기존 사업과 똑같은 목표를 부여해 수시로 달성 여부를 가지고 못살게 군다는 인식이 강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상무님의 처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네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 상관이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그는 그 질문을 받고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도 비슷하게 할 거 같네요. 이 회사가 말은 안 하지만 숫자가 인격이란 문화가 강합니다. 아마 부사장님도 위에서 채근을 당해 제게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 임원의 태도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상사와의 관계도 급속히 개선되었다고 한다.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 말은 안 듣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고 미칠 것 같다고 한다. 난 이렇게 질문한다. “그런데 댁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셨나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고분고분했나요?” 그러면 다는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사실 아이 모습이 어릴 때 제 모습과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난 이어서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성장하셨나요?”라고 질문한다. 그러면 “부모님이 기다려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졌다”, “어느 순간 철이 들었다”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그러면 억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라. 그럼 뭔가 생각이 바뀌는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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