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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8. 2018

04. 왜 하필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았을까?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각 생명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진화는 거대한 행운 게임일 뿐이다.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가장 최적의 개체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가장 훌륭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가능성이 미미하게 더 높을 뿐이다. 어쩌면 전후무후하게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이미 젊었을 때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 매몰되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유전자의 질에 대해 말해주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공룡은 단 하나의 목숨밖에 없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주장을 내세우기에는 임의추출 표본의 크기가 너무 작다.
  
만약 이 티라노사우루스를 인공배양해서 유전자가 동일한 동물을 대량으로 만들어냈다면 그 동물의 삶은 아주 성공적이었을 것이고 유전자가 엄청나게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것이 아주 훌륭한 유전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우연히 돌에 맞아 죽은 가엾은 공룡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더 느리고 더 서툴고 더 약한 동종공룡은 운이 좋아서 대량으로 번식했을 수 있다.
  
진화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유전자가 자동적으로 성공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번식의 가능성을 아주 조금 높이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속임수 주사위로 놀이를 할 때와 같다고 보면 된다. 6이 조금 더 잘 나올 수 있게 살짝 불규칙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주사위를 사용하면 분명히 유리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것을 조금 더 큰 척도로, 즉 수백, 수천 또는 수십억 세대의 시간 척도로 살펴보자. 그러면 한 개체가 평생 맞닥뜨리는 우연들은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진화를 살펴보면 진화가 불가피하게 쫓아가야 하는 정해진 방향이 있는 것일까?
  
포식 동물 집단에서는 달리기가 빠르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것이 당연히 아주 유용하다. 따라서 진화가 바로 이런 특징을 내세우는 쪽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의 운명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많은 공룡들의 수천 년에 걸친 진화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포식 동물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발달되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이다. 진화는 수없이 많은 우연한 사건에 기인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물학에서 밀접한 관계가 없는 다양한 생물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해준다. 이것을 상사(相似)라고 하며, 동일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수렴(收斂)이라고 한다. 상어, 돌고래 또는 이미 오래전에 멸종된 어룡은 확실히 비슷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유전적인 동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이들의 공통의 조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이런 동물들이 재빠르고 민첩한 수영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선 형태를 여러 차례 새롭게 발전시켰다.
  
이는 매번 동일한 유전자가 생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물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고, 완전히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내며, 배아 상태에서 완전히
다르게 발달할 수 있다. 그래도 결국은 서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생명체가 나온다. 모두 지느러미, 뾰족한 주둥이 그리고 물 저항을 아주 적게 받는 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물리학의 법칙은 모든 종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비슷한 환경에 있는 생물들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진화는 매번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각자 믹서기를 만들어본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믹서기를 만드는 설계도는 아마도 각자 상당히 다를 것이고 중요한 부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피상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 비슷한 점들이 있을 것이다. 일정한 정도의 수렴을 기대할 수 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믹서기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일정한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화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수렴인가 우연인가? 이 질문 역시 최종적인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이미 수없이 많은 논쟁이 오갔다.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Simon Conway Morris)는 눈이 다섯 개 달린 오파비니아를 포함한 버지스 셰일의 화석들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 연구를 통해 두 생물학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
  
굴드는 버지스 셰일에 있는 화석의 엄청난 다양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완전히 다른 몸 형태를 가진 완전히 다른 동물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종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여 그곳에서 아주 잘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많은 종이 멸종했다. 그중 대부분은 오늘날 더 이상 후손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 왜 하필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은 것일까?
  
하필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고 티라노사우루스, 인간 그리고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벌거숭이뻐드렁니쥐가 발전하게 된 것은 그냥 우연이라고 스티븐 제이 굴드는 주장했다. 굴드는 이를 ‘우연성’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얼마든지 다른 생물의 종족이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오파비니아처럼 눈이 다섯 개 달린 종들이 많을 것이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오파비니아가 동족들과 함께 버지스 셰일에서 해양을 헤엄치던 그 시점에 진화가 다시 한 번 시작된다면, 우리가 오늘날 속하는 종과는 완전히 다른 다양한 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는 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진화에서의 수렴을 증거로 내세웠다. 우리 옛 조상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다르게 생긴 동시대 종들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비슷한 특징들을 발전시켜 진화했을 것이다. 만약 특정한 생태적 지위가 있다면 어떤 종이든 그것을 차지할 것이다. 어떤 유용한 특징이 있다면 그런 특징을 드러내는 종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큰 뇌를 가진 생명체가 언젠가 나타나는 것은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연성 추종자인 굴드와 수렴 지지자인 콘웨이 모리스 사이의 논쟁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었다. 콘웨이 모리스는 종교적 입장에서 주장을 펼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논쟁을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버지스 셰일의 생물학적 조건들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진화가 두 번째 시도에서는 다르게 이루어질지 지켜보려면 5억 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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