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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0. 2018

04. 블랙 컨슈머를 충성 고객으로

<나에게 불황은 없다>




나는 유독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들을 고정 고객으로 많이 확보했다. 블랙 컨슈머란 기업 등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자 제품을 구매한 후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자를 뜻하는데, 백화점엔 유독 고객을 우선하고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백화점의 서비스 정신을 악용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사소한 불편을 못 참고 반말이나 욕설을 퍼부어 대는 것도 모자라 왕처럼 군림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고객은 왕’이라지만 일부 고객들의 ‘갑질’ 행태는 사회적 약자인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평생 가슴에 남을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고객에게 온정을 쏟아야 되는 우리는 약자가 아니다. 판매사원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움츠리기보다 더 당당하게 응대해야 한다. 악성 고객들은 사람의 감정을 교묘하게 건드리기 때문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더 큰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나처럼 오래 서비스업에서 종사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형의 블랙 컨슈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랙 컨슈머 중에는 상습적으로 꼬투리를 잡는 비양심적인 고객이 있는가 하면, 힘들게 번 돈을 제대로 돈을 쓰려는 마음에 ‘갑’이 되고 싶어 하는 보상 심리를 가진 고객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블랙 컨슈머 중에는 악의적 소비자가 있는 반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유달라서 무의식중에 불편한 마음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를 상대하다 보니 고객의 표정과 차림새만 보면 그들의 마음을 읽어버리는 반(半) 관상쟁이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화가 잔뜩 난 50대 남자 고객이 매장에 들이닥쳤다. 그분은 들어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매니저가 누군교!”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객은 몹시 화가 난 듯했다. 눈치를 살펴보니 그분의 제스처에는 약간 허세가 깃들어 있었다. 대체로 큰 소리를 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분들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할까 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크다. 

나는 차분하게 고객에게 다가갔다. 
“제가 매니저입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사정을 들어보니, 그분은 방금 타 매장에 들렸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른 매장에서 요구를 거절당한 상태라 또 한 번 거절을 당할까 봐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 고객님, 그런데 어떤 일로 불쾌하신 건가요?”

그러자 그 고객은 여기서도 수선을 거절당하면 옷을 확 찢어 버리겠다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좀 앉으세요. 차 한 잔 드릴까요?”

이미 화가 난 사람은 일단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함께 차를 마시며 자초지종을 묻고 30분 정도를 아무 말도 않고 들어만 주었다. 

“잘 들어 보소! 이 옷은 내가 제일 아끼는 정장인기라. 즐겨 입다 보니 소매 단추가 떨어지고 소매가 뜯어져서 B점 가서 수선을 부탁했더니 이 문디 자식들이 몇 년 입어서 똑같은 단추도 없꼬, 오래 입은 옷이라 수선이 불가하다고 딱 잘라 말을 하는 것이 아닌교! 매니저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교? 내가 무슨 걸레를 들고 온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나는 일단 고객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호응하며 “아이고, 속상하셨겠네요.” 하며 참을성 있게 하소연을 들어 주었다. 이미 화가 난 상태로 오신 분이시라 자칫 말실수를 하여 더 화를 내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우선 고객의 노여움을 풀고 난 후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우선 이 제품에 대한 A/S기간이끝났다는 것을 정확하게 주지시켜 드리고 똑같은 단추가 없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서도 설득했다. 그리고 이 제품을 만든 본사에서는 수선이 불가능하지만, 일반 수선실에서는 수선이 안 되는 게 없을 정도로 실력이 좋으니 일단 그곳을 믿어 보자고 일러 주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수선비용이 나올 것이란 사실도 인지시켰다.

그러자 그 고객은 ‘그 옷을 계속 입고 다닐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똑같은 단추가 없지만 비슷한 것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이고, 최대한 원형을 살려서 입을 수 있게 수선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나의 감(感)을 믿었고, 속상한 마음을 풀고 매장을 나가던 고객의 뒷모습에서 풍기던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믿었다. 

과연 나의 예감은 맞았다. A/S된 옷을 찾으러 다시 매장을 방문한 고객님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의 화를 내던 모습은 사라지고 온화한 모습의 신사분이 오신 것이다. 수선해 온 정장을 내어 드리니 꼼꼼히 살펴보신 후 깔끔하게 수선되었다고 정말 마음에 들어 하셨다. 더 놀라운 것은 수선비를 지급하시며 “다른 정장을 한 벌 더 여기서 구입하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전 매니저가 골라 주는 옷을 입어야제”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분은 그날 이후 나의 고정 고객이 되었다. 그날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에게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분의 섬세한 관심과 배려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매니저가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 매니저를 관리해야 한다면서 수시로 안부 전화도 주시고, 매장도 가끔 들리시기도 했으며, 제철 과일도 여러 차례 선물해 주셨다. 벌써 10여 년이 넘는 세월이지만 아직까지 서로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블랙 컨슈머를 고정 고객으로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마음을 읽은 덕분이 아닐까. 고객의 마음을 읽고 가슴으로 대했더니 고객도 진정성 있는 나의 마음을 읽고 나에게 한층 더 신뢰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이 답일 수밖에 없다. 나의 충성 고객 중에 백화점 근처에서 사업을 하는 분이 계시다. 그분은 한가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이쇼핑’을 즐기는 분이셨다. 늘 우리 매장을 들리고 우리 브랜드 제품이 좋다고 말은 하면서도 구매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넉살이 좋은 것인지 그분은 좁은 매장 의자에 앉아서 자주 수다를 떨다 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매니저님! 다방 커피 한 잔 줄 수 있어요? 여기 커피가 달달하고 맛이 있어서요.”
“네, 당연히 드려야죠.”

내가 믹스 커피를 한 잔 타 드렸더니 그분은 맛있게 드시고 가셨다. 직원들이 실없는 사람 같다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오히려 나는 그들을 나무랐다.

“얘들아, 우리 매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은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응대해 드리기로 했잖아. 그러니 매장에 방문하는 어린아이조차도 진심으로 환영해 주면 어떨까? 역지사지로 생각해 봐. 저분이 갈 데가 없어서 우리 매장을 계속 오시는 건 아닐 거야. 내 생각엔 우리 매장에 관심이 분명 있으니까 자주 오시는 게 아닐까? 우리 매장에 들어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얼핏 보면 매장에 고객이 많은 것처럼 보일 테니까. 안 그래?” 

그런데 다음날 그분이 오더니 고액 매출을 올려주었다. 매장 직원들이 기분 좋은 얼굴로 대해주고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어서 단골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그분은 명절이면 직원들에게 상품권과 선물을 수시로 챙겨 주시기도 하고, 가끔 매장 직원들에게 통 큰 식사도 대접해 주는 ‘화이트 컨슈머’가 되었다. 이렇듯 작은 것에 감동하는 것이 고객이다. 나는 서비스가 정말 큰 것이 아니라는 것, 고객이 정말 필요하고 갈증을 느끼는 것을 찾아 주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객에게 대접한 ‘달달한 커피 한 잔’이 10년 충성고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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