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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5. 2018

08. 상품을 팔지 말고 너의 영혼을 팔아라.

<나에게 불황은 없다>



백화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나 역시 많은 어려운 일을 겪었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서울 생활에 닳고 닳은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일반 고객을 상대하기도 힘들고 벅찼는데 이따금 고객의 컴플레인에 걸려서 휘둘릴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눈물이 핑 돌고 고향의 부모님 생각도 나고 시골 할머니 생각도 났다. 하지만 어찌하랴. 어차피 먹고살기 위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신세인 것을…….

데일 카네기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재미없어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난 내 일이 진심으로 재미있고, 내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빨리 원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앞에서 밝혔듯이 한 달짜리 주부사원으로 시한부인 내가 소기의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자 재미를 넘어서서 자부심을 갖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친절상을 여러 번 타고 8개월 만에 매니저로 스카웃되면서 남편의 사업 실패라는 우울한 기분은 금세 달아나 우물 속에서 깨끗한 물을 퍼올리는 듯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날마다 발전하는 나의 미래를 그려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하루하루 한 발짝씩 내딛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일수록 기뻐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객과 마주하며 얻은 귀한 가치 중 하나는, 고객은 자기를 알아봐 줄 때 가장 기뻐한다는 것이었고, 판매할 때 상품을 먼저 팔기보다 결국 고객의 마음을 먼저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란 것을 배웠다. 

그 무렵 까다롭기로 유명한 고객이 있었다. 매장에서는 서로 눈치로 그분이 오셨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허름한 행색의 그 고객은 한 번 매장에 들어가면 두 시간은 기본이고 매장에 있는 온갖 옷을 다 입어 봐서 판매 직원의 진을 다 빼고는 돌아가기 일쑤였다. 우리는 그 고객을 보고 뻔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유난히도 한가한 날이었다. 손님도 없고 매출도 없어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그분이 나타나셨다. 한가로운 때였지만 어떤 매장도 그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해도 두 시간 이상 사람 진을 빼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을 던지고는 사라지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서인지 그분은 다른 매장을 거쳐 우리 매장까지 왔다. 

나는 판매사원으로서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오늘같이 한가한 날 이분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하더라도 나의 고객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되도록 진심을 다하는 감정을 끌어내면서 그분에게 말을 걸었다. 

“고객님, 부담 갖지 마시고 둘러보시다가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나는 상품을 둘러보는 고객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 고객은 10여 분 정도 우리 매장의 옷을 둘러보더니 말씀하셨다. 

“이 옷을 한번 입어보고 싶군요.”

나는 재빨리 고객의 체형에 맞는 사이즈를 찾아 드렸다. 그때부터 그 고객은 계속해서 다른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풀 착장으로 열 벌은 입어 보신 것 같다. 나는 그분이 결정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어찌 보면 지나치게 세심하고 꼼꼼해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판매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고객이었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나 역시 슬슬 인내심이 한계가 오고 있었으나 고객을 응대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할까?’를 계속 생각했다. ‘이분의 정체가 뭐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좀 한가한 날이니까 매장에 있는 옷 다 입어 보셔도 돼요. 고객님이 진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입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권하면서 나는 갑자기 23년 동안 쇼핑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결혼 예복 사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사긴 사야 하고, 제대로 옷을 방법은 모르겠고, 주인이 사라는 대로 샀던 기억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이 어찌나 어렵던지.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구매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툴툴거렸었다. 

순간 나는 이 고객이 그런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고객과 대화를 하다 보니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안 되었는데 정장을 입는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어 정장을 고르는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 진작 여쭤볼걸 그랬네요. 미리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힘드시죠? 쇼핑은 원래 힘든 거예요.”

그때부터 고객과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자 굳어져 있던 그분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분이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기에 얼른 시원한 물 한 컵을 가져다 드렸다. 물을 쭉 들이켠 그분이 말했다.

“저, 그냥 아까 입었던 정장 여섯 벌 주세요.”

순간 나는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여섯 벌이요?”
“네.”

그날 그 고객은 천만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주어서 우리 매장은 정장 브랜드에서 매출 1등을 했다.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허름한 외모의 고객이 그런 매출을 올려줄 줄 누가 알았으랴! 까다로운 고객이라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국에서 쇼핑이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본래 뻔뻔한 게 아니라 그만의 상품 구매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꼼꼼히 따져보고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때에야 구매를 하는 분이었는데 초라한 행색과 직원들을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응대하지 않고 고객의 흉을 봤던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해 준 고객의 말은 큰 깨우침을 주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결심을 했다. 

절대 고객을 외모로 고객을 판단하지 말 것. 저 사람이 물건을 살까, 안 살까 저울질하지 말 것. 열 번이라도 원하는 것 다 챙겨서 보여 드릴 것. 진심을 담아서 원하는 것을 같이 찾아 줄 것. 만약에 우리 매장에 어울리는 제품이나 사이즈가 없다면 경쟁 브랜드라도 추천해서 안내해 줄 것.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귀 기울일 것. 모든 것들을 체험 할 수 있게 해 드릴 것. 이렇게 7가지 결심을 세웠다. 

절대로 고객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었다. 나의 경력에서 오는 촉으로 열 명 중 아홉은 맞을 수 있다고 해도 단 한 명의 고객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직원들과 아침 조회시간에 서로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일들을 반성하며 고객 한 분이라도 우리 매장에 들어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자며 다짐했다. 

중국 요리 중에 자장면은 기계면과 수타면이 있다. 그 맛도 비교해 보아야 수타면이 맛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 옷도 입어 본 것과 안 입어 본 것에 차이가 있다. 옷을 입어 보길 망설이는 고객이 있다면 기계면과 수타면의 차이를 들며 무조건 안 사셔도 괜찮으니 한번 입어만 보시라고 권하게 되었고, 진심으로 모든 고객들이 편하게 착용해 볼 수 있게 도와주게 되었다. 

이렇듯 고객의 가려운 부분까지 생각해 준다면 우리 매장을 찾는 분들은 방문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이젠 매장에 물건을 사러 오는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서로 친구 같은 만남으로 유지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도 숙지해야 할 일이다. 고객의 마음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면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다. 더불어 고객과 관계에서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고객과의 신뢰만큼은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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