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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31. 2016

00. <112일간의 엄마> 프롤로그

<112일간의 엄마>

이것이 나오와 아들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증거이다.



셋이서 살아가는 길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사진은 2014년 연말에 다케토미 섬(오키나와)으로 여행 갔을 때 찍은 것이다. 나오가 항암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내심 포기하고 있던 일정이었는데 그때만 ‘기적적’으로 몸 상태가 나아져 우리 셋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 세 식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다케토미 섬에 도착한 나오는 줄곧 “눈을 뜰 수가 없네”라고 말했다. 태양과 바다에 반사된 빛 때문이었다. 몇 달 만에 쐬는 자연의 빛이었을까. 병실 아니면 집 안의 조명을 받는 게 전부일 정도로 긴 입원과 투병 생활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눈부셔 하는 그 얼굴은 확실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여행할 수 있게 된 기쁨을 안고. 물론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오’를, ‘엄마가 된 나오’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이토록 너를 예뻐했단다, 이토록 다정했단다” 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사랑스레 우리 아이를 품에 안은 나오. 이제 와 생각한다. 사진 속에 담긴 행복한 ‘순간’, 이 순간을 훗날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사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걷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오는 온전히 자신의 다리로 서서 아들을 안고 있다. 몸도 야위고 항암제 탓에 얼굴도 부어 있다. 허나 아무리 찾아봐도 힘들어 보이거나 마뜩잖아 하는 표정으로 찍힌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정말이지 단 한 장도 없다.

이 강인함이 바로 나오다. 이 상냥함이 나오다.

나오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한 달 좀 지나 우리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엄마로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112일. 하지만 ‘온기’는 잊을 수 없다. 잊힐 리가 없다.

그때 나오는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오의 투쟁을…….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오와 함께한 시간, 사랑하는 우리 아이와 함께한 ‘세 사람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소중한 것이기에.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나 자신이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와 아니, 단지 질병만이 아닌 갖가지 심각한 어려움에 맞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슬픔은 깊어지고 원통함은 더해만 간다. 그래서 눈물 흘릴 때도, 뒤돌아볼 때도, 멈춰 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미즈 켄이라도 무언가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1년……. 2015년 12월 25일, 「간사이 정보넷 ten.」(통칭 「ten.」) 연말 마지막 방송을 마친 날, 나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눈물을 홀로 흘렸다. ‘격동’도, ‘변화’도, ‘애썼다’도 아닌 눈물……. 하지만 작년에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물을 훔치고 사람들 앞에 섰다. 지금까지의 인생, 약해 빠진 주제에 한없이 강한 척하며 살아왔건만 왜 이리 눈물 바람인지……. 아내가 “참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면 안 돼요”라고도.

정말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많은 분들로부터 따뜻한 말씀과 마음을 받았다. 나 같은 사람에겐 과분할 정도로 많이. 천 번 만 번 감사드려도 부족할 따름이다.

그러니 단 한 분이라도 ‘앞을 향해 가겠다’ 하는 분이 계신다면, 내가 아내 나오와 함께 싸워온 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보답하고 싶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이런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치의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오 씨에게는 처음부터 간에 미세한 전이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나오 씨와 시미즈 씨 두 분의 ‘아드님’이 태중에서 두 분을 지켜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설사 출산을 포기하고 유방암 치료에 전념했더라도 남은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 분 사이에 생긴 아드님을 무사히 낳을 수 있었던 일, 엄마가 되어 아드님을 남긴 일이 ‘기적’이며 나오 씨는 그 기쁨을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했을 겁니다.”

확실한 건 알 수 없다. 아니,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 곁에는 나오와 함께 만든 ‘보물’이 있는데.

나오는 자신이 얼마 못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괴롭고 억울하고 무섭고 불안하고, 그런데도 ‘셋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나오는 단 한 번도 포기하는 일 없이 ‘가족’을 지키려 했다. 나오는 “나, 애썼어”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나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나오가 내게 맡겨주었다.
나는 지킬 것이다. 그리고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엄마의 위대함’과 ‘생명의 온기’를…….

여기에, ‘셋이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아내 나오와 함께 싸운 시간을 기록한다.
이것이 나오와 아들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증거이다.




□ 연재 목차  

00. <112일간의 엄마> 프롤로그(10/30)
01. 약점을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10/31)
02. 첫 데이트(11/1)
03. 새로운 생명(11/5)
04. 눈앞에 닥친 '생명 선택의 순간'(11/6)
05. 엄마가 될 준비를(11/7)
06. 부작용과의 싸움(11/8)
07. 셋이서 섬으로(11/12)
08. 첫 약한 소리(11/13)
09. 2월 11일 오전 3시 54분(11/14)
10. 나오에게(11/15)




저자 ㅣ 시미즈 켄

1976년 오사카 출생. 일본 요미우리 TV 「TEN.」의 메인 캐스터로 유명한 방송인이다. ‘시미켄’이라는 애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3년 5월, 스타일리스트였던 나오 씨와 결혼했다.

이 책은 임신 직후 유방암이 발병했을 때부터 아들이 태어나고 112일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행복한 엄마로서 강인하고 용감하게 살았던 故 나오 씨와의 추억이다. 또한 이 추억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 셋뿐만 아니라 이 가족 곁에서 힘을 보태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우리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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