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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by 책꽃 BookFlower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 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p7)


우연히 들른 중고서점에서 위 문장이 적힌 책머리글을 읽고는 마음이 사로잡혔다.‘왜 쓰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그 문장 안에 있었다. 특히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은 예전 한 스님을 말씀에서 듣고 적어두었던 문장이었다. 지금은 내 삶의 철학을 담아 나를 표현하는 문장이 되었다. 나는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읽기의 거룩함

“책이 곧 별이다.(p69)”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두운 밤하늘에 별을 하나씩 켜나가는 일과 같다. 나를 밝히는 별,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별, 다시 쓰게 만드는 별. 저자는 독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다시 깨어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고 계절을 읽고 사물을 읽는다. 타인과의 대화로 자신을 세우는 일이다.

희로애락에 끄달리지 않고 소유와 쾌락에 치달리지 않는 거룩한 ‘기쁨’에 동참하는 길. 스승이면서 벗이고, 벗이면서 또 스승일 수 있는 관계, 배움과 가르침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관계. 거기에 인간성의 극치가 있다.(p102) 진짜 독서는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문장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다.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한 문장씩 필사하는 그 행위는 마치 기도 같고, 저자가 말한 ‘거룩한 읽기’의 또 다른 형태다. 읽는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쓰기의 통쾌함

“글쓰기로 수련하기(p111)”

저자는 쓴다는 행위를 ‘카오스에 차서(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적 행위’라고 했다. 글을 쓰는 순간, 복잡하게 얽힌 생각이 하나의 줄기로 모인다. 언어가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이 나를 이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쓰는 나’를 다시 돌아봤다. 완벽한 문장을 쓰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담는 일이 더 신경 쓴다.

작가는 말한다. “천지간에 새로움이란 배움의 열정밖에 없다. 자신을 넘어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곧 길이요 도(道)다.(p152)”


거룩하고 통쾌한 읽고 쓰기의 세계

“읽었으니 써라!” “쓰기 위해 읽어라!”

읽는 자는 써야 하고, 쓰는 자는 읽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처럼 순환할 때 비로소 사유가 숨을 쉰다. 저자는 글을 쓰는 행위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양생(養生)하는 길’로 설명한다. 글쓰기가 곧 자기 돌봄이며, 세계와의 관계 회복이라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세계와, 타인과 연결되는 법을 가르쳐준다. 특히, ‘책을 통해 인맥을 재구성하라’고 강조한다.(p161)

알면 알수록 모르는 영역이 늘어난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다.(p158) 읽고 쓰는 일은 결국 ‘공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공부란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로 삶을 배우는 일임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그 모든 시간이 거룩하다. 그렇게 하루를 기록하며, 내 삶의 문장으로 채운 나만의 책을 완성해 가겠지. 글쓰기는 결국 나를 확장시키는 일이고, 동시에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다. 오늘 쓴 한 줄이 내일의 나를 바꾸고,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다시 한 문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 순환의 기쁨 속에서 나는 안다. 읽고 쓰는 일보다 거룩하고 통쾌한 일은, 이 생에도 다음 생에도 다시없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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