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근원을 찾아서
내 와이프는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무언가 집요하게 검색을 하고 있다?
그럼 곧바로
"진돗개 발령"
비상사태다.
집에 몇 개의 택배 상자가 올 지 모른다.
한 달 전 즈음인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시간에 맞춰 와이프를 데리러 갔다. 그렇게 평화롭게 집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와이프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집에서 향기가 안나는 것 같아."
집에서 어떤 향기가 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맛있게 밥 지어지는 냄새, 피죤 잔뜩 넣은 포근한 이불 냄새만 나면 되는 것 아닌가.
와이프는 집에 들어온 지 3분 만에 옷을 또 주섬주섬 갈아입기 시작한다. 또 어딘가 가려는 모양이다.
이제는 나도 알아서 척척 입에 목줄을 물고 기다린다. 끌려다닐 준비 끝.
이번에는 어딜 가나 했더니 다이소에 간다고 한다. 방향제 좀 사다 놔야 할 것 같다고.
그렇게 다이소에서 와이프는
"이 향 어때?"
한번 물어보고는 피치향 방향제를 산다.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다.
10년째
#단절
그 방향제를 거실 한편에 놓는다. 생김새가 조금 기분 나쁘다. 바퀴벌레 퇴치제 같기도 하고.
혹시 나를 퇴치하려 하는 건가.
또 하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얼 옆에 배치해 둔다.
진짜 이거 암살작전인가.
그러나 와이프는 다이소 방향제에 만족이 안되나 보다. 평소에는 발을 까딱까딱 하며 옷을 쇼핑해야 할 와이프가, 갑자기 디퓨저를 폭풍 검색하고 있다.
쇼핑의 주제가 바뀌었다.
그렇게 도착 한 디퓨저 1.
화장실에 배치된다.
그러나 화장실에 배치된 디퓨저는 쥐 죽은 듯 살고 있다.
다른 냄새가 더 강력하다.
다음날 디퓨저 2가 도착한다.
디퓨저가 항상 성공할리가 없다. 망한 디퓨저 2는 나의 서재에 배치된다. 디퓨저 2와 기존에 있던 디퓨저의 향이 섞인다.
책 읽을 때마다 머리 아파 죽겠다.
며칠 뒤 디퓨저 3이 또 도착한다.
이번에는 거실장 위에 배치. 이곳 아래에는 다이소 피치향 방향제도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재채기가 나온다. 에엣취
호그와트 입학 초대장이 분명하다.
디퓨저 4가 또 도착한다. 이번에는 현관 중문에 배치된다. 우리 집 첫인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친구다. 풍선껌 향. 알 수 없는 초딩.
디퓨저 5도 도착한다.
거실 결혼사진 옆에 배치된다.
기존에 있던 디퓨저는 중문 반대편 구석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이곳에도 무수한 스틱이 꽂혀있다.
가끔 카페에서 빨대 가져와서 꽂아놓는 것 같기도 하고.
곧이어 디퓨저 6이 도착한다.
얘는 또 더 크네.
체감상 코카콜라 1.6L. 안방에 배치된다.
요즘 잘 때마다 디퓨저 귀신 꿈꾼다.
와이프는 최근에 들어서야 디퓨저 쇼핑을 멈췄다. 집안의 향기와 와이프의 심신안정을 얻었지만 나는 후각을 잃었다.
그렇게 디퓨저 전쟁이 끝난 듯 했다.
같이 치맥을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디퓨저에 꽂혀있는 스틱 두 개를 가져온다.
냄새의 근원을 찾았다고.
냄새의 근원.
#남편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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