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Apr 20. 2024

편재되어 있는 파편들

생은 기차이지 기차역이 아니다.
꿈꾸는 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이다.
꿈을 꾸거나 기이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알레프/파울로 코엘로



서랍 속에 넣어둔 손바닥만 한 스프링 노트를 꺼내 보았다.

코팅이 되어있었던 표지는 낡아 있고 스프링의 페인트 된 색깔도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언제부터 쓰던 노트일까 펼쳐서 앞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본다.

'경인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2010년 새해 기록인 듯하다.

그렇다면 2009년에 나에게 온 노트인 것이었다.

학부모 상담을 하기 위한 상담 멘트도 여기저기 흩어져 적혀있다.

뒤표지는 물기에 젖었는지 누렇게 얼룩이 스며들어 있다.

한동안 차 운전석 문 사이 틈에 넣고 다녔던 노트이다.

글씨를 갈겨쎠서 알아볼 수 없는 문장도 있고

정갈하게 정성을 들여 쓴 문장도 있다.

출처가 없는 문장도 있고 발췌한 곳의 책을 적어 놓은 문장도 있다.

그중 파울로 코엘로의 <알레프>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은 길들여진 날들이었을까

꿈이 없는 사람은 길들여지는 생을 살 수밖에 없다.

꿈이 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행하는 사람이다.

나의 본질과 정체성을 알고 기차에 오른 사람일 것이다.

여러 객차에서 나는 어떤 칸에 머물러 있었을까

이 칸과 저 칸 사이엔 바람처럼 날아가는 시간이 있었다.

꿈을 꾸는 일과 기이한 경험들은 예기 치도 않았던 일들로 인한 상실과 고통으로 휩쓸려

가로질러 간 또 다른 객차 안일 것이다.

모든 객차에는 유리창과 의자가 있다.

바라보는 풍경은 비슷해 보이지만 곁을 주었을 때에야 다름을 알 수 있다.

다가가 앉아 보면 얼룩이 묻은 의자가 있고, 스프링에 눌려 비대칭이 되어 있는 의자도 있다.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의자들 내가 앉아 보았을 때 내가 곁에 가서 살갗을 닿고

느꼈을 때야 알 수 있는 편안함이다.


누군가 내 곁을 다가왔을 때 난 편안한 사람이었을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얼룩진 상흔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 마음속에 편재해 있는 파편들로 인한 피해의식과 편견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까





파울로 코엘로의 <알레프>가 책장에 꽂혀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책을 펼쳤다. 인덱스도 몇 개 붙여있지 않고 중간중간 볼펜으로 밑줄을 그은 흔적이 남아있다.  코엘로의 작품에 빠져있었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 15여 년 전의 나는 현실회피형 독서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재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될까.




이전 01화 나만의 공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