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그물 안에서 무엇을 붙잡든 바로 우리의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침놀/니체
매주 월요일 오전 5시 30분 니체의 아침놀을 읽고 있다.
니체의 통찰과 사유를 훔치고 싶어서 이다.
몇 년 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어려워서 덮어 버리고 작년엔 필사를 도전해 보았다.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도통~ 잠이 오지 않으면 저녁에 읽기 딱 좋은 책이다.
그러나 난 이런 책이 없어도 잠을 잘 잔다.
독서모임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쉽게 다른 모임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오전 니체를 함께 읽는다는 블로거의 포스팅에 혹해서 시작한 게 어느새 아침놀을 절반을 읽고 있다.
그 분들은 3년째 이어온다고 한다.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난 내 주변만 보고 살아왔다.
내 주변엔 책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일지언정.(선택적 맹시)
니체는 내가 좋아했던 카를융의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철학자이다.
카를융과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임상실험결과 후 알게 된 학자들이지만 니체는 본인이 고통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사유한 내용들이다.
천재적인 철학자가 쓴 책이라 이해하기는 어렵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여러 번을 읽어야 맥락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니체를 알면 알수록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관점이 제대로 된 것일까
나와 자아, 내면의 기울기는 어느 정도인가
타인을 바라보며 경쟁하는 사회에서는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다.
그들과 함께 달려야 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그래서 내면의 아이가 어디서 헤메이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내 정체성은 무엇일까
자주 질문해 보는 삶이야 말로 내 내면의 기울기에 맞춰 균형을 이루는 삶이 아닐까
거미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주변에만 거미줄을 쳐놓고 그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의 것은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니체를 읽다 보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이처럼 문학적인 문장들로 인해 쉽게 풀어써주는 친절도 간혹 베풀기도 한다.
워낙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친절이라는게 문제다.
어릴 때 어른들이 쓰던 속담과 옛날 옛적에 라고 시작하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들 속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 준다는 것을 반백년을 살아온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