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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Ryu 제이류 Mar 19. 2020

'여명'... 노을의 시간, 새벽을 꿈꾸는 여인

콜레트, 늦게 온 사랑을 읊다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한국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20세기의 프랑스 작가. 여성작가 최초로, '콩쿠르 아카데미' 회원이자 회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작가.


책의 뒷표지에 묘사된 콜레트. ‘좁은 문’의 앙드레 지드도 그녀를 찬사한다.



눈앞에 생트로페의 해변가와 구릿빛 단단한 몸의 남자가 그려지는,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여명'.


콜레트는 자신의 이번 소설을, '남자와 평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종의 개론서'라 이름 붙인다. 늦게 찾아온 사랑. 이미 폭풍우 같은 사랑을 여럿 겪고 조용히 살려는 콜레트는, 예전의 남자들과 사뭇 다른-욕망도 설렘도 없다- 비알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받아들일까.


2017년 파리 여행에서 찾아간 콜레트의 묘지. 1954년 국장으로 장례식이 치뤄졌다 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삼총사'를 영화나 애니로 접해봤던가, 적어도 들어는 보았을 거다. '삼총사'의 작가인 뒤마처럼, 프랑스에서 국민작가로 사랑받았던 콜레트.


우리가 알만한 접점은, 오드리 헵번 정도일까. (몽테 카를로에서 영화를 찍던 헵번을 콜레트가 발견하고,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던 자신의 작품 '지지'의 여주인공으로 택한다.)


아마 그녀의 삶과 마찬가지로 파격적인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라 예전에는 한국에서 출판 금지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지금도).


자전적 소설의 본보기랄까. 그녀의 삶이 소설인지, 소설이 삶이 되었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특히, '여명'에서는 콜레트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남자 주인공인 비알 이외에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예술가들이 본명 그대로 나온다.    


콜레트가 모리드 구스케(후에 세 번째 남편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함)와 함께 했던, 자신의 별장, 생트로페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창작된 '여명'...


소설이 시작되기 전, 콜레트는 덧붙인다.

 


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내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천만에, 그것은 단지 나의 모델일 뿐이다.


(... 변형된 자화상, 혹은 자전적 소설이 맞는 말이겠다.)



오십 대 초반의 콜레트는 한참 연상의 바람둥이 남편들에게 상처 받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연애 후, 이제 남자들이 지겹다, 사랑은 해볼 만큼 해봤다, 고독을 즐기고 싶다, 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중년의 소설가이자 연극배우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 간다.
모성애는 또 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중해의 해안가 마을, 생트로페는 그런 콜레트의 결심을 실현시켜 주는 듯, 소설 곳곳에서 단순하나 반짝이는 삶을 이끄는 장소로 묘사된다.


나이가 들며 콜레트는 변했다. 두 번째 남편이 소유했던 성채, 카스텔 노벨 성 보다, 자신의 작은 집, 해변의 별장을 중년의 콜레트는 더 원한다.

삶의 끝이 다가올수록, 더 단순한 삶에 끌리는 것이다.



밤과 안개와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해변으로의 산책......
그러고 나서 해수욕, 글 쓰는 작업, 휴식.......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단순해 보이는가.......
다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일들도
여기에서는 가능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장밋빛 주사위처럼 네모난 집에 사는 ‘슬픈’ 비알이 그녀 곁에 나타난다.

닭요리를 하며, 육식의 잔인성을 떠올리고 내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비알에게 말하는 콜레트. 올해는 말고. 아직 너무 배가 고프니,  언젠가......라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래, 닭고기가 맛있긴 하지, 포기하기 힘들지, 고개를 끄덕였으나 책 뒤의 해설에서 그것이 성적인 비유라 한다) 그렇게 콜레트는 나이를 이유로 성적인 끌림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하다.

하지만 비알이란 한참 연하의 남자와는 설렘도 욕망도 없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육체적 긴장감은 부재하고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낸다. (이 부분에서 비알은 자괴감을 느낀다.)


콜레트는 그의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뿐, 욕망은 부재한다. (...라기보다 예전과 달리 여유롭고 차분해진 거 아닐까 싶지만..)


닭고기 요리 중, 콜레트는 비알에게 식용유를 부어달라 부탁한다.



그는 몸을 숙이고 기름을 따랐다.
드러난 그의 가슴은 태양과 소금기로 빛나고, 피부는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페즈의 염색업자들이 만든 색깔처럼,
그의 움직임에 따라 허리 부분은 초록색으로 보였고 어깨는 푸른색이었다.
내가 "그만"하고 명령하자 그는 금빛이 도는 식용유 붓기를 멈추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잠시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마치 말을 다래기라도 하듯이.



비알은 서른다섯 살의 실내 장식가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 한여름, 해수욕을 하고 반쯤 벗은 채 나타나는 그의 구릿빛 몸은 매일 그를 본 콜레트의 눈에 익숙해진다.


이집트인 같은 어깨, 원통형의 단단한 목, 무엇보다 온몸에 흐르는 윤기와 헝클어진 듯 신비한 분위기. 그런 그의 섹슈얼한 몸을 감상하며, 콜레트는 눈앞의 남자를 눈으로 음미하며 섬세하게 묘사한다.


콜레트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비알이 혼돈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다른 친구처럼 그를 대하며,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나라 타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흔들리는 감정을 깨닫는다.



비알이 멀어져 가자, 나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더위도, 서늘한 공기도, 기울어져 깊이 비추어 드는 빛도, 사방의 푸른빛도,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의 날개도, 우유와 마른 꽃향기가 뒤섞인 듯한 무화과나무의 냄새도......



해변에 함께 앉아 있던 비알이 잠깐 자리를 비운다. (‘함께’에서 ‘혼자’가 된 순간의 대비를 묘사한 부분)


비알의 짧은 공백은 그에 대한 콜레트의 마음을 깨닫게 한다. 혼자라는 편안함을 가로막고 채운 그의 존재. 그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비알.


그럼에도 콜레트는 가능한 현실적인 방향으로 처신한다. 비알에게 관심을 보이며 콜레트를 귀찮게 하는(당신만 없음 저 남자와 이뤄지는데, 식으로 콜레트에게 유치하게 구는) 젊은 여자 화가에게 비알을 보내려 한다. 그 여자가 콜레트에게 한 말을 듣고, 비알은 감히 그런 여자가- 식으로 불쾌해하나, 그 젊은 여자에 의해 삼각관계 소문은 금세 퍼지고, 콜레트와 비알은 전처럼 자연스래 단둘이 있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찾아온 비알은 콜레트와 새벽까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사랑과 무관하게 살고 싶다고, 읊조리는 콜레트. 동시에, 아직도 사랑을 원한다고, 자신의 이중적인 마음을 살짝 고백한다.


어떤 때는 '아! 제발 그가 아직도 거기 있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아! 제발 이제 그만 그가 가버렸으면!' 하고 말하기도 하지.



늦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콜레트의 심정을 압축하는 문장. 그러나, 비알은 '그'가 자기인 줄 모르고, "누구 말인가요?"하고 순진하게 묻는다.

그 말에 콜레트는 웃음을 터트리며,  비알을 쓰다듬는다.



열어젖힌 셔츠 사이로 아침 바람이 스쳐가는, 그리고 내 손도 닿을 수 있는 그의 멋진 가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보다 더 늙어버린 내 손....... 하지만 그날 아침의 나는 아마도 그 손만큼이나 나이 들어 보였을 것이다.



비알이 자신의 늙은 손을 바라볼 때, 작고 검은 쪼글쪼글한 그 손을 콜레트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나이를 신경 쓰는 이들을 바보라 표현한다. 형식에 엃매이지 않고 스스로에게 있는 그대로 당당한 콜레트.


이어지는 대화.

비알의 사랑고백에 콜레트는 수줍어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어떤 확답도 하지 않는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지?" 하고 다음 만남을 물을 뿐. 가능한 한 빨리 오겠다고 답한 비알은, 카트르 카르티에 백화점의 실내 장식에 몰두하며 파리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거절당했다 생각하고 일중독으로 불안을 다스리는 남자..)


이대로 이들의 사랑은 끝일까?  


열린 결말의 소설이다.


어쩌면 그녀가 비알을 젊은 여자에게 떠나보냈다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콜레트는 예전에 서른 살 연하의 애인을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하며 7년의 관계를 끝낸 적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 장의 새벽에 대한 묘사에서 우리는 콜레트가 사랑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고양이를 키우는(애완동물. 특히, 고양이에 대한 묘사가 꽤 된다.) 사람,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 그저 아름다운 문장과 사랑이야기를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덧붙임


하나, 생트로베는 프렌치 리비에라에 속한다. 하지만 필자가 문학여행으로 프랑스에 갔던 삼월은 비수기라 니스에서 생트로베 행 차편이 없었다. (성수기에만 버스가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둘, 콜레트의 남편 소유였던 카스텔 노벨 성 (샤토 드 카스텔 노벨르)은 현재 개조되어 4성급 호텔이 되었다. 콜레트 정원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http://www.castelnovel.com/


셋, 비알의 모델이 되는 콜레트의 세 번째 남편 직업은 소설 속 비알과 다르게 작가이다.



(참고 서적: ‘여명’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저, 문학동네 출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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