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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해지자

고집

by 북짱



우리 딸내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는 말랑말랑한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일이다. 손으로 조물딱거리면 아무렇게나 뭉개지고 길게 늘어나는 그 촉감이 참 재미있고 신기하다. 그래서 나도 가끔 딸내미 옆에 앉아 슬라임을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기분 좋은 촉감이 스트레스도 풀어준다니, 요즘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런 말랑말랑한 감각을 즐기는 것 같다.




집 안에는 친구가 선물해 준 작은 나무 화분이 하나 있다. 어느덧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잘 자라 주어 볼 때마다 기특하다. 넓고 단단한 잎들이 한층 풍성해져 흐뭇한 마음이 든 어느 날, 그 사이에 새잎이 하나 둘 돋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보드랍고 여린 느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연하고 말랑말랑해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찢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작은 새잎 하나가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도 그렇다. 말랑말랑한 사람이 좋다. 처음 만났을 때 딱딱하게 경계를 세우는 사람보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먼저 기울고, 금세 마음의 문이 열린다. 반대로 거친 말투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지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말에 나는, 나이가 들어도 넉넉하고 부드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쩜 그렇게 마음이 굳어 있고 고집이 세신지 모르겠다며, 오래 살아오며 겪은 어려움 때문인지, 혹은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굳어진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주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억세지고 거칠어져만 간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서 배운다고 하셨다. 젊은이들은 생각이 유연하고 새로운 것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하며,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 같다며.




그 말을 듣는데 문득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여유롭고 넉넉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다짐한다. 나는 나이 들어도 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자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내 안을 따뜻한 것들로 채워가자고. 마음이 굳어지면 말도 행동도 뾰족해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뾰족한 말로 상처를 주는 엄마나 아내가 되기보다는, 함께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누구든 다가오기 쉬웠던, 누구도 정죄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모습으로,

오늘도 누군가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가길 바라며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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