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것
준호는 오늘도 익숙한 듯이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준호의 눈에는 담기지 않았다. 불안했다. 준호는 학교가 끝나고 혼자서 집에 있을 때면 자꾸만 마음속 불편한 질문들이 거품처럼 점점 커져 메슥하게 올라왔다. 자꾸 그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준호는 집에 혼자 남아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아빠와 함께 보던 영화를 틀어놓은 채로 아빠와 가지고 놀던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이미 완성된 레고 조각들을 해체시켰다가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아빠와 함께 레고를 가지고 놀았을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빠가 있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는 연속성은 준호에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전과 같은 행동을 지금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엄습해 오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준호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준호는 해리포터가 외로이 창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며 레고의 마지막 조각을 붙였다. 마지막 조각은 아빠가 아빠만의 표식을 하기 위해 데코용으로 사용한 조각이었다. 조각에는 아빠가 웃는 표정을 그려 넣은 낙서가 있었다. 마지막을 조각을 붙이고 나자 다시 문득 아빠가 병원에 있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그날 준호는 긴박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을 어딘가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준호는 마치 그때로 돌아가 그 기분 나쁜 느낌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스스로를 그때의 기분 나쁜 병원에 갇히게 만들었지만,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준호는 지금 또다시 병원에 갇혀있었다.
준호는 할머니의 옷 끝자락을 잡고 흔들며 물었다.
“할머니, 아빠 아파?”
할머니의 얼굴은 깊은 슬픔에 잠긴 듯했다. 할머니는 아무 설명도 해줄 수가 없었다. 아들이 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차마 입 밖으로 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준호의 말에 손바닥으로 얼굴 모두를 가려버리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준호는 할머니의 반응만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 복도를 반복해서 걷고 있었다.
“정신사나워. 제발 좀 그만 걸어 다녀.”
“그럼 어떻게 해요,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남편을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그들은 초조함에 서로에게 날을 세웠다.
“준호야, 엄마 좀 말려봐.” 할머니가 준호에게 말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집에 가면 안 돼? 집에 가고 싶어.”
“준호야. 자꾸 어린애처럼 행동하지 마. 어른들 정신 사납게 자꾸 물어보지도 말고.”
평소대로라면 엄마에게 떼를 쓸 것이었지만, 그날의 준호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낯선 병원에 있는 것 자체가 싫어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혼자 가만히 있었다. 이 날부터였다. 엄마가 엄마 같지 않은 것처럼 변한 날이. 엄마는 더 이상 아빠와 함께하던 때의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평소처럼 준호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았다.
갑자기 간호사들이 엄마와 할머니를 불렀다. 준호도 엄마와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아빠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간호사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친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특히 사고가 나 심하게 다친 아빠를 보는 것은 커서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며 준호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엄마와 할머니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날 준호는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말하는 대로, 간호사들이 말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빠가 병원에서 눈을 감는 순간에도 아무도 없는 텅 빈 병원 복도에서 준호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준호는 아빠를 보지 못했다.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아빠가 있는 병실 문을 지켜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준호는
긴긴 시간 동안
병실 밖에 혼자남아
문을 넘어 들려오는
흐느끼는 울음소리만을 들었다.
준호는 엄마도, 할머니도 없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차가운 병원 복도에
혼자 있었다.
혼자 그곳에 갇혀버렸다.
불안함이 파도쳐 준호를 잠식시킬 것만 같았다.
두려움의 파도가 준호를 잠식시키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준호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파도를 피하기 위해
엄마처럼 병원 복도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걷자 잠식될 것 같은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두려움은 준호의 그림자가 되어 발 뒤에 붙어 계속 따라다녔다.
두려움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언제나 준호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번엔 귀를 막아보았다.
귀를 막자 준호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준호 마음속 아무도 발 들이지 못하는 곳이 만들어졌다.
엄마와 할머니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눈을 감았다.
이곳은 준호만의 세상이었다.
준호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준호는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곳에서 준호는 아빠가 언젠가 저 병원 문을 나올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는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고 설명해 주었다.
준호의 머릿속에서의 그 하늘나라는 그저 비행기를 타면 언젠가 닿을 수 있는
다른 나라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아빠는 언젠가 다시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라고
준호의 두려움이 귀에 속삭여 말해주었다.
그렇게 준호는 아빠가 살아있던 과거의 시간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렸다.
그렇게 매일 준호는 집에서 아빠가 살아있던 시간 속에서만 있었다.
이곳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뗀다면,
그곳은 아빠가 부재하는 세상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준호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준호는 다시 레고조각을 해체했다. 준호에게 상실감은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았다. 상실감은 파도처럼 문득문득 거칠게 몰려왔다. 아픈 기억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차례 예고도 없이 계속해서 방문했다. 그 예고 없는 방문이 일어날 때마다 준호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레고를 맞추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