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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26. 2024

[소설] 준호가 만든 세상

준호를 둘러싼 세상은 준호를 위해 아빠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함께 아빠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어른들은 부모의 죽음이라는 큰 상처가 지울 수 없는 흉터만을 남길 것이라 생각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어른처럼 깊은 슬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저 준호가 아직 어른의 슬픔을 겪지 않도록 준호 앞에서 마치 이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듯 행동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어른들은 준호에게 다들 조용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덕에 준호는 엄마처럼 현실의 감각들을 느낄 수 없었다. 장례식을 다녀오지 않은 준호에게 세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돌아와 다시 집안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의 남아있는 온기를 느끼며 상상으로 계속 그 안을 자신의 온기로 채워나갔다. 그저 아빠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며칠 뒤면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곧 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준호에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크게 변한 것이 하나 있었다. 준호는 점점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슬퍼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일에만 빠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도 많아졌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있을 때의 엄마는 아빠만큼 다정하지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냉정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항상 회사일에 쌓여 집에서도 일을 하고,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었지만, 그날 이후의 엄마는 더 이상 준호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걸어주지도 않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주는 다정한 말들도 해주지 않았다. 준호를 쳐다보다가 등을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하는 말이 있다면 그 말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돼라는 말뿐이었다. 더 이상 아이처럼 굴면 안 된다고 했다. 


그저 직장에서 돌아오는 날에는 남은 집안일을 마무리를 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켜놓은 채로 잠을 청했다. 준호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엄마는 준호 몰래 아빠의 작업실방 문을 굳게 잠가놓았다. 준호를 외할머니에게 맡긴 날, 엄마는 아빠와 관련된 물건들을 준호 몰래 아빠 작업실방에 모두 밀어 넣어 준호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도록 해놓았다.


하지만 준호는 엄마가 회사에 있을 때, 몰래 아빠 방문의 열쇠를 찾아냈다. 준호는 매일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아빠와 함께 지냈다. 어느 때면 준호는 엄마에게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분명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준호는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빠가 돌아오면 다시 엄마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슬픔을 편리한 방식으로 정리해 두었다. 하루종일 아빠의 물건들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가 올 때면 다시 숨겨두었다. 준호는 점점 마음을 숨기는 데에 익숙해져 갔다. 그저 아빠가 있던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 다시 빠져들었다. 


방해하지 마


준호의 등교날이 다가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 일들은 뒤로 한 채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알려주는 작은 화면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1, 2, 3, 4, … 20. 매일같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준호는 의식적으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숫자만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없는 날들도 이전처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아빠가 없는데도 집을 나온 바깥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자주 마주치는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하시는 아저씨, 아줌마를 만났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이전과 같이 밝은 얼굴로 미소 지으며 준호에게 인사해 주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미소로 웃어주는 이웃 아줌마, 아저씨 덕분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꾸 끈적이처럼 준호에게 달라붙는 불편함이 잠시 누그러졌다. 준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에게 예전과 같이 인사하기 위해 미소 지어 보려 했다. 하지만 미소는 준호의 마음을 감춰줄 수 없었는지 예전과는 다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왜 한 동안 아침에 마주치지 않은 건지 물어봐주었다. 어른들의 쓸데없는 호기심은 다시 준호에게 불편함이 다시 찐득찐득하게 달라붙도록 해주었다. 긴 시간이 지나 1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리자 준호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열린 문 사이로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문 앞에 보이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아빠가 없는 세상이 피부에 차갑게 와닿는 것 같았다. 준호는 자꾸 달라 보이는 세상을 애써 외면하였다. 하지만 자꾸 느껴지는 무엇인지 모를 불편함에 짜증이 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빠는 몸이 아팠지만 다시 회복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준호가 학교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준호의 몸이 잠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호는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아빠는 돌아올 것이라고 되뇌었다. 


준호는 아빠가 있던 예전처럼 등교를 하였다. 평소에는 아빠가 준호의 등교를 도와주었지만, 아빠가 멀리 가고부터는 엄마가 준호를 챙겨주었다. 엄마의 등교준비는 아빠보다도 훨씬 빨랐다. 엄마는 등교하는 준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달라진 등교준비에도 준호는 원래도 항상 이렇게 등교했던 것이라고 바뀐 것은 없다고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준호는 항상 다니던 등굣길을 나서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을 둘러보았다. 준호가 항상 다니던 길은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곧 아빠는 바뀌지 않은 이곳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 어쩌면. 제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서 준호는 마음속에서 어떤 불편함이 올라왔다. 분노인가. 어떤 불편함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불편함이었다. 그 이상한 불편함이 목구멍에서부터 느껴지는 것 같았다. 준호는 괜한 기침을 두 번 정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이물감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준호는 입고 있는 점퍼 안의 목폴라 목 부분을 세게 잡아당겨 보았다. 


여러 감정이 뭉쳐있는 이 이상한 느낌들을 무시하고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학교로 가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이제 학교 정문에 다 달랐다. 학교의 풍경 역시 차가워 보였다. 오랜만에 온 교실은 낯설어 보였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보는 준호를 반기며 준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물었다. 친구들의 질문들은 자꾸 준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반추하도록 만들었다. 


“왜 학교에 안 왔었어?”


아빠가 병원에 있느라 나오지 못했다-가 아니라 준호가 아파 병원에 가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몸이 좀 아팠어.”라고 말하려 했지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준호는 친구들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자꾸 준호에게 말을 걸었고, 준호는 친구들의 질문들이 싫었다. 학교를 왜 갑자기 나오지 않았는지, 나오지 않는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좋았는지를 여러 친구들이 물어보았다. 준호는 친구들의 질문을 할 때마다 계속 그날이 떠올랐고,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자꾸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 싫었다.


준호의 마음은 계속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생각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부글부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생각의 버블들이 준호를 괴롭혔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준호는 친구들이 묻는 질문에 원래의 사실들을 조금씩 변형해 나갔다.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이제 세상을 향해 하기 시작했다. 준호는 이렇게라도 해서 불쑥불쑥 올라오려는 감정들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미술시간이 되자, 이 모든 감정들은 서로 한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오늘은 이제 곧 방학 때 맞을 크리스마스 카드를 미리 만들어볼 거예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카드를 한 번 써봐요.”


준호는 출장에 가있는 아빠를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바빠 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할 아빠를 위해서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야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준호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야겠다. 


오늘 보았던 엄마의 얼굴을 그리고 옷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빠의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동그란 얼굴을 그렸다. 


한참 동안이나 둥그런 눈과… 

동그란 코.

그리고 동그란 반달의 입을… 

그렸다.


준호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빠의 모습은 병실에서의 잠깐 스치듯 본모습이었다. 아빠는 출장에 가있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보지만 자꾸만 슬픈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계속해서 차오르자 준호는 마지막으로 아빠의 모습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상상일 뿐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준호는 깨달았다. 마지막이었다.


모든 불편한 감정들이 메스껍게 올라왔고 준호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교실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준호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운동장으로 나왔다. 준호는 혼란스러운 교실에서 빠져나와 눈 내리는 운동장을 걷기 시작하였다. 교실은 답답하고 선생님은 쓸데없는 것들을 시키고 친구들의 질문들은 짜증 난다. 화가 난다.


다시 한번 목폴라의 목을 잡아당겼다.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는 운동장은 춥지 않았다. 내리는 눈의 움직임은 매우 거칠었지만, 등교할 때처럼의 찬바람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옷을 너무 껴입어서 차가운 바람이 안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준호는 걸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장 아빠를 안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떼며 아빠와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렸다. 

아빠와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아마도 다시는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렸다. 

걸음을 멈추었다. 


마주하기 싫은 생각이 떠올라버렸다.


그리고 그때, 눈이 내리는 운동장 저 편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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