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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26. 2024

[소설] 5부. 모험의 시작


하얀 숲의 숨겨진 또 다른 이름은 

진실의 숲이었다.

숲은 진실이 필요한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기 때문이었다.


각자 원하는 바가 있었다. 준호는 아빠를 보고 싶어 했고, 상우는 아빠가 돌아오기를 바랐고, 눈사람은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준호와 상우는 서로가 불편했다. 


준호는 상우가 집으로 찾아온 이유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상우에게 함께 하얀 숲으로 떠나자고 말했지만, 금방 후회했다. 이내 상우가 집으로 찾아온 이유가 어떤 것인지를 금방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선생님이 시켜서 온 것이라면 상우는 준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상우는 준호가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상우는 준호의 제안으로 따라오기는 했지만, 자신에 대한 비밀을 모두 알아버린 준호가 불편했다. 상우의 수치스러운 비밀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을 준호가 알고 있다. 준호는 상우의 수치스러운 비밀의 진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준호는 상우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준호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눈사람도 준호를 따르고, 준호는 하얀 숲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상우는 준호가 이끄는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상우는 소원을 이루러 간다는 상투적인 목표만 알고 있을 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준호가 결정하고 자신은 따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준호와 상우의 사이가 너무 어색해서 눈사람의 녹았던 눈까지 다시 얼어붙을 정도였다. 눈사람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준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이제 하얀 숲이 안내한 곳으로 들어온 거야. 여기는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야.”


상우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살펴보면 원래 살던 곳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준호는 책을 통해 들어온 세상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현실의 세상과 거울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명 집안의 모습도 준호네 집과 똑같았다. 준호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확인해 보았다. 책상도 책상 안에 있는 물건들, 아빠와 함께 만들었던 레고장난감들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눈사람을 안은 채로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도 나가보았다. 밖의 세상도 원래 살고 있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직 딱 한 가지 다른 점은 바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같았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었고, 지나다니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준호는 다른 점을 찾아보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준호는 평소에 놀던 놀이터로 달려 나가 모래를 한 움큼 쥐어보았다. 모래의 촉감과 움직임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의 날씨마저 창문으로 통해 본 하늘과 같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딜까. 정말로 우리는 책 속의 세상에 들어와 있는 걸까?


상우는 준호가 가는 대로 뒤에서 졸졸 따라가기만 했다. 상우는 준호가 갑자기 집안에서 뛰쳐나가고, 나가서도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주지도 않는 준호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준호가 향해 가는 곳을 보니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향해가는 것 같았다. 상우는 준호의 앞서 걸어가는 발에만 시선을 주었다. 상우는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의 특별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준호는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의 벤치에 앉아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주시했다. 하지만 준호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에 아무런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도로만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다. 상우는 그런 준호가 답답했다. 정말 버스를 타려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데리러 오는 건지 알 수 없어 점점 짜증이 났다. 준호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 한 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결국 상우가 준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떤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 거야?”


“하얀색 버스. 아까 지도에서 봤잖아.” 준호는 상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상우는 준호의 대충 대답하는 듯한 대답에 기분이 상했고, 눈사람은 기분이 상한 상우의 표정을 발견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버스가 오는 게 맞아?” 이번엔 상우가 따지듯 준호에게 말했다.


“올 거야. 분명.” 초조해진 준호가 예민하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맞받아쳐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안 와. 도대체 몇 번 버스 타면 되는 건데. 몇 분 뒤에 오는지 저거로 보면 되는 거 아니야?”


상우가 전광판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하듯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숫자들은 모두 의미 없는 조합일 뿐이었다.


“아니야.” 준호가 또 한 번 냉담하게 답했다.


“확실해? 지금 너 때문에 못 가고 있는 거 아니고?”


“너는 숲의 초대를 받은 게 아니잖아. 너 때문에 버스가 안 오는 거겠지!” 


준호도 점점 화를 돋우는 상우의 말에 덩달아 언성을 높였다. 하얀 숲이 보여준 지도에서처럼 버스가 오지 않아 점점 초조해지고 있던 상태였다.


“네가 오자고 했잖아! 내가 오는 게 무슨 상관인데! 네가 가는 방법도 제대로 못 찾아서 그런 거면서!” 

상우 또한 준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눈사람은 상우가 또 화내는 모습을 보이자, 무서워 새싹이의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너 때문에 눈사람이 무서워잖아!” 준호가 상우에게서 몸을 틀어 눈사람을 상우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상우는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준호의 몸짓에 더 화가 나 눈사람을 뺏으려 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겠지!”


준호는 눈사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눈사람처럼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너 또 눈사람 데리고 가려고 그러지!”


“안 데리고 가! 네가 지금 정말 오버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상우와 준호는 서로를 째려보고 있었다. 누구라도 먼저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둘의 갈등이 점차 격양되어가고 있을 때, 눈이 내려 쌓여있는 듯 보이는 버스 한 대가 둘 앞에 멈춰있었다. 준호와 상우는 어느새 눈앞에 있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이들은 버스의 신비로운 느낌에 압도되었다. 


버스의 표면은 정말 폭신한 눈이 내린 것처럼 엄청나게 큰 솜사탕 덩이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보였다. 바퀴 외에는 창문도 없었고, 거울도 달려있지 않았다. 버스의 문 또한 솜사탕처럼 생겨 정확히 어디가 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준호와 상우는 씩씩대며 아무 말 없이 버스를 타기 위해 앞문이 있을 쪽으로 향해 다가갔다. 


아이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문 앞에 한 줄로 서서 기다렸다. 준호는 눈사람을 손에 안고 재빨리 가장 먼저 문쪽에 서있었고, 그 뒤로는 상우가 서있었다. 뒤에 서있던 상우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준호를 옆으로 밀치고 문 앞에 가장 가까이에 섰다. 상우는 또 준호 뒤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뽀송하게 생긴 문이 열렸다. 귀엽게 생긴 눈과는 다르게 안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우는 망설였다.


“이 버스 맞는 거지?” 상우는 괜히 준호를 쳐다보며 말했지만, 준호는 여전히 상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준호를 밀치면서까지 앞에 섰으니 다시 뒤로 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상우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더니 가장 먼저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에 발을 내딛자마자 왠지 모르게 상우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발 끝의 감각은 부드러워지더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상우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준호도 상우를 따라 눈사람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준호도 상우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준호와 눈사람은 잠에 빠지지 않게 눈에 부릅 힘을 줘보기도 하고, 손으로 눈꺼풀을 만지며 자지 않으려는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눈사람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 안에서 가장 먼저 졸린 눈을 뜬 것은 준호였다. 준호는 비몽사몽 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버스 안에서 조금이라도 새어 나올 빛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 이곳, 저곳을 보아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곳에서 나갈 수는 있으려나.라고 생각할 때쯤, 어디에선가 작은 별처럼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작은 빛이 어둠을 밝히는 모습은 왠지 신비로워 보였다. 작은 빛줄기에 매료되어 있을 때쯤, 갑자기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렸다. 준호는 눈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악! 눈 아파!” 


버스는 아이들이 내리기 전에 녹아내렸다. 문을 열고 나올 새도 없이 모두 녹아내려 자고 있던 그 자세로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 차가워! 뭐야, 이게!”  


“버스가 녹아내렸어!” 준호가 소리쳤다.


아이들과 눈사람은 놀란 상태로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일어났다. 종착지에 도착하면 바로 하얀 숲이 눈앞에 펼쳐 나올 줄 알았다. 준호는 표지판부터 찾았다. 분명 숲이 보여준 지도에서는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더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준호의 생각과는 달리 하얀 숲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멀리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은 어찌나 거대한 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장엄한 자세로 서있는 듯 보였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하얀 숲이 나올 때까지 걷기로 하였다.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은 하얀 숲을 향해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걷고 또 걷고. 곧 도착할 것만 같은 숲은 나오지 않았다. 자꾸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상우가 또 툴툴거리며 물었다.


“지도에서는 표지판이 있었어. 이쯤에 있었는데. 이제 곧 나와야 하는데. 표지판이 있었어…! 분명히… 그렇지, 젤리야?” 준호가 물었다.


“나도 분명히 봤어. 왜 안 나오는 거지.”


눈사람은 준호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바로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아버렸다.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우도 주저앉는 눈사람을 보며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준호는 주저앉은 눈사람과 상우를 보고도 혼자 표지판을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며 서성였다.


서성이고 있는 아이들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었다. 누군가 멀리서부터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접근하고 있었다. 상우는 지쳐버려 눈사람과 함께 그냥 땅바닥에 철퍼덕 앉은 상태로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누군가는 조용히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상우 옆에 눈을 꿈뻑이며 있던 눈사람은 저 멀리서부터 준호와 상우, 눈사람을 향해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눈사람은 그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미지의 생명체는 눈사람을 쳐다보며 무지막지하게 큰 입에 거대한 손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눈사람과 마주쳤던 생명체는 전력을 다해 준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상우는 달려오는 생명체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소리를 질렀고, 준호는 너무 놀라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 앞에 나타난 존재는 아름답고 보드라운 새 하얀 털을 지닌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호랑이였다. “크와앙!” 호랑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아이들에게 다가와 천둥소리와 같은 포효를 했다. 


아이들은 너무 무서워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고 눈사람만이 여전히 말똥말똥한 눈으로 호랑이를 쳐다보았다. 호랑이는 포효를 한 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가만히 있었다. 마치 아이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행동 같았다.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 도망가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떨고 있을 때, 눈사람이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크와앙-” 


호랑이는 눈사람에게 대답하듯이 또다시 포효를 하였다. 호랑이의 포효 소리에 아이들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 도망간다 할지라도 저런 덩치의 호랑이라면 단 몇 걸음만에 아이들을 따라잡을 것이었다.


호랑이는 다시 일어나더니 뒤를 돌아 다시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고서는 고개만을 돌려 뒤에 있는 눈사람을 쳐다보았다. 


“올라타라는데?”


눈사람은 호랑이의 긴 꼬리를 통통 밟으며 등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위험해!” 준호가 눈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눈사람은 준호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되려 준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호랑이가 하얀 숲이 어디인지 알고 있대. 너네도 올라 타.” 


눈사람의 말에 호랑이는 일어나 이번엔 다시 아이들 쪽으로 돌아보더니 아이들이 등에 올라타기 쉬운 방향으로 조정해 주었다. 준호와 상우는 망설였다. 눈사람 말대로 정말 호랑이를 타도 될까. 


모험을 하기 위해선 세상을 향한 믿음이 필요했다. 믿음 없이는 미지의 세계로 한 발자국 나서는 것도 불가능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눈사람과 낯선 생명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용기란 누군가를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우에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준호보다도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준호는 몰랐지만, 아빠가 준호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낯선 세상을 향한 믿음이었다. 준호는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준호 안에 존재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준호는 눈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눈사람의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도 아무런 의심 없이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아빠가 준호에게 보여주었던 세상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 준호의 용기는 아빠가 준호에게 남긴 수많은 선물 중 하나였다. 


준호가 먼저 호랑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랑이는 준호의 움직임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준호는 한 발자국씩 걸어가더니 호랑이의 긴 허리 쪽 털을 쓰다듬어 보았다. 처음엔 작은 움직임으로 쓰다듬다가 아무 반응이 없는 호랑이를 보며 점점 가까이 다가가 호랑이의 머리를 작은 고양이 만지듯 쓰다듬어 주었다. 


호랑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웠다. 눈사람은 호랑이가 발라당 누워버리는 탓에 바닥으로 떠밀려 때굴때굴 굴러가버렸다. 준호는 덩치가 큰 호랑이가 귀여운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눕자 배를 긁어주었다. 준호는 상우를 보며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상우는 준호의 즐거운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도 조마조마한 상태로 호랑이가 결국 준호를 물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준호는 호랑이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눈사람처럼 직접 말을 걸어보았다. “우리를 하얀 숲으로 데려다줄 거야?” 준호의 물음에 호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준호 앞에 엎드렸고, 준호는 그 등 뒤에 올라탔다. “나도 다시 탈 거야! 나도 올려줘!” 준호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채로 눈사람을 안아 자신의 앞에 앉혔다. 

“상우야, 너도 빨리 올라타!”


상우는 한 마디도 안 하는 상태로 꿈쩍도 않고 고개만 작게 휘저었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호랑이의 비위를 거슬리게 할지 몰라 최대한 움직임을 작게 줄이려는 행동이었다. 호랑이는 그런 상우가 답답했는지 몸을 일으켜 상우에게로 다가가 다시 엎드렸다. 


“상우야, 가자!”


상우는 다가오는 호랑이의 몸짓에 놀라 또 한 번 털썩 넘어졌다. 상우는 넘어져 앉아있는 상태로 뒷걸음질치고는 다리를 끌어안아 몸을 웅크린 상태로 준호의 말에도 눈을 질끈 감고 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호랑이는 다시 일어나 이번엔 상우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내 민 채로 포효를 하고 삐진 듯 아예 돌아누웠다. 상우는 호랑이의 포효소리에 아예 귀를 양손으로 감쌌다. 


“호랑이도 점점 너 때문에 짜증 내잖아. 빨리 타! 더 화나게 할 거야?”


“못 타…”


“네가 안 타면 더 화나서 무슨 짓 할지 몰라! 빨리 타! 더 화내면 어쩌려고 그래!”


“크와앙-!” 호랑이는 준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상우에게 화내듯 포효했다.


“우리끼리 가버릴 거야. 여기에 호랑이가 있다면, 다른 더 무서운 동물들도 만날 수 있어. 그럼 더 위험해.” 

준호의 말에 상우는 지금이라도 빨리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싶었지만, 올라타는 동안 호랑이가 상우를 떨어뜨린 후, 물어뜯는 상상을 해버렸다. 호랑이는 기분이 상해 상우를 두고 어디론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준호는 다급해져 상우를 놓칠세라 소리쳤다.


“빨리 뛰어와! 여기는 현실세계가 아니야! 여기서 갇힐 수도 있어!”


상우는 준호의 말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준호의 간절한 목소리를 통해 그제야 호랑이의 등을 타기 위해 호랑이를 따라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자신을 따라오며 달리는 상우를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좀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상우는 너무 빠른 속도에 지쳐 포기하고 말았다. 호랑이는 아빠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고, 또 한 번 기회를 놓친 것 같은 마음에 절망감이 몰려왔다. 


상우가 절망감으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호랑이는 달리기를 멈춘 상우에게 놀아달라는 표현으로 다시 달려가 상우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이번에 상우는 호랑이가 반갑게 느껴졌다. 그제야 상우는 호랑이의 등에 겨우 올라탔다. 호랑이는 아이들이 모두 타자, 아이들을 태우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하얀 숲이 있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머리카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준호는 흘러가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하늘을 향해 뻗어보았다. 손바닥 사이로도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하늘이 빠르게 흘러갔다. 눈사람은 준호의 움직임에 뒤를 돌아보았다. 눈사람은 준호가 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준호를 따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왜 손을 뻗는 거야?”


“바람을 좀 더 잘 느끼려고.”

눈사람은 나뭇가지 표면에 닿는 바람을 느껴보았다. 


상우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도 눈을 꼭 감고 준호에게 바짝 붙었다. 준호의 옷을 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준호에게 의지하기는 싫었지만, 지금 상황으로써는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는 빠르게 아이들을 하얀 숲 속에 데려다주었다. 상우는 준호가 말했던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호랑이가 멈추자 누구보다 재빠르게 호랑이 등에서 내려왔다.


“와, 엄청 빨리 도착했다. 아쉽다. 재밌었는데.” 상우가 말했다.


“잘 가~” 눈사람이 손을 흔들며 호랑이에게 인사해 주었다.

“잘 가~” 눈사람이 인사를 하자, 준호도 따라 인사했다.

상우는 인사하는 둘을 보며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호랑이와 마주치는 일이 없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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