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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l 03. 2024

10화 - 바나나 우유의 정체


조금 쉬고 나면 좋아질 줄 알았다. 프로야구 시즌 중이지만 아빠는 어렵게 휴가를 냈고, 여름 방학 동안 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에메랄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이 강제휴가를 준 모양이라고 엄마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다시 지방 출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그 무렵 지훈이를 포함한 친구들과 리그오브레전드 지역 대회 출전을 위해 <동방박사의 경배>팀을 결성한 나 역시 엄마의 우울을 들여다보기엔 너무 어렸다.      


설거지와 빨래가 쌓이고 엄마가 키우던 허브들이 하나둘 말라죽었다. 정신과 처방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엄마는 예전처럼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오전 시간 자주 잠에 취해 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 때쯤 이제는 적막한 집안의 공기가 일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는 날도 대화는 겉돌고 자주 방향을 잃었다. 안방 침대 협탁에 엄마가 복용하는 약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지만, 꼬박꼬박 정신과를 찾고 우울증을 털어내려 노력하는 엄마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의 병도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낫는 것이라는 엄마의 말을 믿었으니까.....     



삶은 어긋남의 연속, 미련한 후회의 반복일까? 사고로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아빠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사춘기 아들을 혼자 두고 장돌뱅이 같은 카메라맨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아빠는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매출이 오르기 힘든 주택가 골목 안쪽에 편의점을 차린 것은 집 가까운 곳에서 최대한 나를 케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미친 듯 게임에 몰두했던 나 역시, 최신 PC와 모니터, 게이머용 마우스로 엄마가 세팅해 주신 다락방으로 숨어들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빠와 나는 여전히 엄마의 공간에서 함께 살았다. 유통기간이 지난 편의점 음식을 진수성찬이라고 우기는 아빠와 아침을 먹고, 수시로 편의점 알바 땜방으로 나를 호출해 대는 아빠와 투닥이면서 괜찮은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가끔씩 마주하는 서로의 텅 빈 눈동자는 못 본 척했다, 지금처럼.     


편의점 앞 쌓아둔 빈 박스를 정리하다 아빠는 담배를 꺼내 문다. 10시가 넘은 골목길은 인적 없이 조용하다. ‘휴~~’. 한숨 같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빠, 그림자마저 텅 비어있는 것 같다.      


“차은호, 안 들어가고 뭐 해?”     

지훈이가 어깨를 툭 쳤다. 편의점 반대편 담벼락에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지훈이가 발견한 것이다.     

“어.. 들어가려구. 너는 이 밤중에 왜 또 집에 안가구?”

“아저씨 일 좀 거들 거 있나 해서. 근데 요새 뭐 있지? ‘안 멀쩡해요’ 니 얼굴에 써있다.”  

“.....라이딩 하자.”

“이 밤에?”

“달리자. 후련하게!”     



지훈이가 없었다면, 그 지독한 우울의 시간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동방박사’란 닉네임으로 지역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지훈이는 엄마가 떠난 후 별말 없이 게이머의 삶을 접었다. 장례식장에서 꺽꺽대며 나보다 더 눈물을 쏟아내던 녀석. 나에 대한 미안함인지,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상에 지훈이 자리를 마련하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인지 묻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롤게임 때문에 급 친해진 지훈이가 보육원에 사는 것을 알고 난 후, 엄마는 현장 학습 때 지훈이 도시락을 하나 더 챙기고, 내 옷을 살 때면 지훈이 티셔츠를 한 장 더 샀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훈이 생일에는 보육원에 허락을 맡고 우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게임에 쏟았던 시간만큼 우리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화양구의 개발되지 않은 논밭 옆으로 흐르는 도담천의 자전거 길.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여름 대낮에도, 플라타너스 낙엽이 거리에 수북한 가을 늦은 오후에도... 답답함과 요동치는 감정 때문에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면 지훈이는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렸다.      


“굴다리 찍턴 하고 편의점으로 돌아오기, 부라보콘 내기 어때?”

“콜!”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하는 라이딩. 가로등 아래로 이제 막 수줍은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노란 유채꽃 길을 지나 푸릇푸릇한 들판을 달리고 또 달렸다. 도담천변에서 만난 모든 풍경은 언제나처럼 내 영혼을 말갛게 닦아주며 위로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리고 나니 한결 머릿속이 가뿐해졌다.      


라이딩 내기는 지훈이가 이겼다. 아이스크림의 근본은 부라보콘이라고 주장하는 녀석의 취향대로 부라보콘 두 개, 편의점에서 아빠가 챙겨주신 삼각김밥과 육개장 사발면, 바나나 우유와 빅요구르트를 옥상 테이블에 그럴듯하게 플레이팅 했다. 우리 빌라의 옥상은 베이지색 타프, 릴렉스 체어와 원액션 테이블, 그리고 태양광 랜턴까지 갖춰진 나름 ‘캠핑 감성존’이다. 카메라맨으로 20년 넘게 세상 곳곳을 누비던 아빠는 편의점에 꼼짝없이 묶이게 된 후, ‘나 혼자 캠핑한다’를 외치며 옥상 꾸미는 취미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허기가 몰려왔다. 매운 불고기 삼각 김밥에 육개장 사발면은 내가 좋아하는 꿀 조합.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지훈이 말했다.      


“이 시간까지 저녁두 안 먹은 거야? 누가 부자간 아니랄까봐. 아저씨 간이 아직 멀쩡한 게 기적이다.”     


지훈이 시선을 따라 테이블 아래를 슬쩍 보니,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외로움의 시간들이 빈 소주병이 되어 나뒹굴고 있다.     


“뭐 어쩌겠어.. 그렇게 아빠도 견디는 중일 거야. 직업학교는 괜찮냐? “

”한식, 양식 자격증 따고 취직하기는 괜찮지, 군대 갔다 와서 창업하기도 나쁘지 않고. 지금 천오백 정도 모았으니 보육원 보호 종료 때 받는 지원금이랑 군대서 바짝 모으면 진짜 독립자금으로 괜찮을 거 같아. “ 

”너는 사막에 던져놔도 끄떡없을 거야. 근데 군대는 뭐 하러 가냐? 다들 면제받고 싶어 난린데.“

”태어나자마자 맡겨진 본투비 보육원 출신이라 군 면제라는 거,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귀찮아. 남들과 다르면 자꾸 색안경 끼고 보니까 최대한 평균치대로 살려구. 월급도 모으고 주거 공간도 생기고 군대, 나쁘지 않은 선택지야. 내 걱정은 말고 요새 니 얼굴색이 왜 시커먼지나 고백해.“     


선정이에게 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지훈이에게 보여주고 손동호 원장에게 찾아갔다가 쫓겨나다시피 한 이야기도 전했다. 삶 자체가 산전수전 공중전이라 열받을 일이 거의 없다는 녀석이 요구르트를 원샷하더니, ‘우지끈’ 병을 구겨버렸다.     


”정신과 의사들 그닥 좋게 안보지만, 손동호 이 인간 완전 환자 팔이 공갈닥터네!! 죽은 아이가 중간고사 끝나는 날 문제를 보낸다...고3 수험생 일상이 왜 이렇게 넷플릭스냐!“

”그래서 선정이가 맞다는 생각을 했어. 학교 연간계획을 확인했겠지. 워낙 진중했던 아이라 나름대로는 고3인 내 스케줄과 손동호의 책 출간 일정을 생각한 거 같아.“

”그래서 그 공갈닥터 놈 책은 그냥 출판되는 거야? 예전에 너한테도 그렇게 데미지를 주더니, 싸패스럽네. 말로 안 통하는 사람, 뭐 좋은 방법 없나?“     



있다, 지금 그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다행히 커피 쿠폰과 함께 내가 보낸 악성코드 문자를 손동호는 덥석 물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러 M 타워에 간 날, 자료를 열어보라며 건넨 USB에도 해킹프로그램을 심어두었다. 최후의 방법으로 생각했던 해킹. 지훈이는 분명 구린내가 진동할 것이라며 당장 그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열어보자고 재촉했다. 이 방법 외엔 없을까? 잠시 망설임이 있었지만, 자신을 지워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남긴 선정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락방 책상 앞에 지훈이와 나란히 앉아 노트북으로 손동호의 스마트폰을 열었다. 딸인가? 배경화면 사진에 핑크 리본 머리띠를 한 대여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빨대 꽂힌 바나나 우유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손동호도 아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붙이고 행복한 얼굴이다.      


”잠깐 이 여자애 어디서 본 얼굴인데.....공갈닥터 앨범 좀 열어봐. “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인 지훈이가 여자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손동호의 앨범을 펼쳤다. 앨범을 넘겨보다 지훈이와 나는 정말 뜻밖의 존재를 만났고, 감전된 듯 정지된 채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닉네임, 바나나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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