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레터 Jun 26. 2024

연재 소설 9화 - 엄마가 떠난 시간

미스테리 연재 소설- 악성 민원,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의 우울증


손동호 원장의 이야기는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잠자고 일어나면 기억에도 없는 사진들이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되어 있고 교과서나 문제집의 글자 일부가 보이지 않거나 꿈틀거리는 등, 선정이에겐 복합적인 심리적 문제가 동반되어 나타났다고 했다. 선정이는 정신과 상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약물 의존을 줄이고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이기에 그는 선정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방 없이 집중력 높이는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것을 삼가고, 치유를 위해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손동호 원장의 설명에 선정이 아버지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의사의 양심을 걸고 위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학업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고등학생이 어디 있겠냐면서, 알아서 잘 다독이겠다는 짧은 이야기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통화 이후로 선정이는 상담을 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손동호 원장은 선정이 상황을 노출해 부모님이 심각성을 깨닫고 다른 곳에서라도 정신과 치료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블로그 글을 게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럴듯한 논리에 점차 설득당하고 있을 때, 선정이의 마지막 편지와 카톡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일순간 정렬되며 튀어 올랐다. 처방전 없이 딸에게 약을 준 선정이 아버지의 행동이 위법이라면, 환자의 동의 없이 상담 내용을 노출한 정신과 의사 역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것 아닌가? 스스로를 박제된 인생이라 표현했던 아이가 자신을 지워달라는 부탁과 함께 손동호 원장의 블로그를 메시지로 보냈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구구절절 그럴듯해 깜박 동의할 뻔했지만, 선정이는 블로그 게시글은 물론이고 자기 이야기가 출판되어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 아이에게 허락받은 적 없죠? ‘약쟁이, 마약 하는 전교 1등’처럼  칼춤 추는 댓글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것은 당신 책임이죠. 선정이 이야기, 블로그에서 삭제하고 신간에서도 빼시죠.”

“안타깝지만 선정이 죽음은 부모가 치료를 거부하고 방치한게 핵심이야. 언제 사고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은 조현병, 환각, 충동 장애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담 후 복용할 것을 FDA도 경고하고 있어. 자살 충동도 수백 건 보고 되었지. 난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사명감을 느끼지. 더이상 중독성 약물에 우리 청소년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사회가 경각심을 가지도록 말야.”      


최후통첩으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선정이에게 온 메시지를 손동호에게 내밀었다. 순간 흠칫하는 긴장감이 그의 눈빛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 그는 안경 코받이를 올리며 말했다.     


“죽은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 은호 완전 재미있는 친구군. 실명을 노출한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논제야. 삭제할 이유를 못 느끼겠는데. 초판 인쇄도 이미 끝난 상탤 걸.”

“역시 방송이나 SNS에 떡밥 뿌리고 이슈 몰이 하는 게 당신 본업이야. 심각한 피해자가 생기는 건 안중에도 없지. 그때도 마찬가지였어. 우리 엄마 죽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든 거!”     


아무 말 없이 빤히 나를 쳐다보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머물렀다. 그리고는 동그란 안경을 벗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두 팔로 책상을 짚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안경 뒤에 가려진 진짜 눈빛이 항상 궁금했는데, 그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푸른 빛이 감도는 방안, 거대한 물고기 같은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푸른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파란 입술을 열어 파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말하자, 얼음 같은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속삭이듯 입술을 내 귀에 가까이 대고 그가 말했다.      


“은호야, 아직도 죄책감 속에 살고 있구나. 생각할수록 미칠 거 같지? 너는 알고 있지. 엄마의 죽음에 트리거 역할을 한게 너라는 걸.”

“......”

“내가 뭐라 했지? 먼저 급발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니까. 앞으로도 잊지 마! 그리고 무개념 헛소리 지껄이려면 다신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바보처럼....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인터넷 공간을 빠져나온 댓글들이 사각사각 내 영혼을 좀먹을 때도 나는 그 인간에게 한마디 저항도 하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에 M 타워를 찾았었지? 선정이 때문에? 엄마 때문에? 아니면 나 때문이었을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아스팔트 위에 서자, 땅속으로 꺼질 것 같은 중력의 힘이 느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의 말이 맞다. 인간은 한가지 실수를 저지른 뒤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 자책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날 내가 일찍 귀가했더라면, 아니 늦게라도 괜찮으니 조금만 일찍 엄마의 상태를 확인했더라면......너무나 선명하게 정지되어 있는 시간, 현실이면서 환영 같은 시간 속에서 떠나지 못한, 떠날 수 없는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를 지금도 매일 같이 물으며 산다.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면서 작가였다. 내가 백일이 되었을 무렵부터 네 살까지, 그림책을 읽어준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그것이 화제가 되어 <은호 맘의 그림책 육아>를 출간하게 되었고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엄마의 블로그는 그림책 육아에 관심 있는 부모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질문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평범했다. 스포츠 채널 카메라맨이었던 아빠는 3월 프로야구 시범 경기 시작과 함께 지방 출장으로 거의 집을 비웠고 어린 시절 나는 엄마랑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는 식탁에 앉아 담임을 맡은 학생들 일기장에 말풍선을 그려 넣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귀퉁이에 그려 넣는 엄마의 시그니처, 사막여우의 표정은 학생들의 일기 내용에 따라 웃을 때도 토라져 있을 때도 있었다. 엄마가 식탁에서 일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 나도 소파 앞 좌탁에 앉아 책을 읽고 체스를 두었다. 일을 하다 엄마는 가끔씩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온전히 충만했던 기억으로 남은 시간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그 사건이 생겼다. 그 시기 나는 같은 반 지훈이와 롤게임에 푹빠져 세이브 몰 옆 건물 유니온 빌딩 4층에 있는 스타PC방으로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학기 초, K의 엄마는 아들이 뒷자리에 앉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면서 한사코 앞자리 배정을 원했다. 문제의 K는 자리와 상관없이 수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맨 앞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K는 수업 시간에 노래를 부르다 지적을 받으면 공책을 뜯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급식 우유를 먹지 않고 뚜껑을 열어두었다가 번번이 교실 바닥에 흘려놓고는 담임인 엄마가 걸레로 바닥을 닦는 모습을 보면 킥킥대며 웃었다. 


불행하게도 교사인 엄마는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럴수록 K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K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끝나자마자 검도 학원버스를 타야 하니 1분도 지체하지 말고 정확한 시간에 하교시켜 달라, 체중 관리를 하고 있으니 급식에서 튀김류는 빼달라..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주말이든 새벽이든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문자폭탄이 전송되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하필이면 스승의 날, 쉬는 시간 K가 급식 우유를 책상 위에 흘려버리는 것을 옆자리에 앉은 D가 지적하자 K가 D의 뺨을 때렸다. 상황을 파악한 엄마는 D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K를 혼냈다. 그리고 걸레를 주며 흘린 우유를 스스로 닦으라 했다. 다음 날 K의 엄마가 교장실을 화끈하게 뒤집어 놓았다. 친구들 앞에서 사과를 강요하고 걸레질을 하게 해 K가 큰 충격을 받았고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또 의도적으로 뺨을 때리려 한 것이 아니라 팔을 휘젓다가 K의 손끝이 D의 뺨을 스친 것뿐이라는 신박한 주장을 펼쳤다. 발작에 가까운 K 엄마의 위세에 힘입어 뺨을 맞은 피해 학생은 존재하지만, 가해 학생은 없는 황당한 사건의 책임자는 점점 담임인 엄마의 것이 되어갔다. 학교는 침묵하며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하도록 부담을 주었고, 그럴수록 K의 엄마는 전생의 원수라도 만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 까먹는 뻔뻔한 교사, 선생 자격이 없는 XX년’ 같은 문자 폭언과 함께 K의 엄마는 아동학대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국민 신문고에도 부지런히 글을 올렸다. 공무원인 교사들은 악성 민원일지라도 답변의 의무가 있다. 끝없이 반복되는 민원에 답을 하느라 엄마는 두통, 불안증을 호소했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엄마는 결국 여름방학 일주일 전 휴직계를 냈다. 20년 베테랑 교사의 자부심을 시궁창에 처박은 K의 엄마는 교사로 절대 복귀할 수 없게 해주겠다는 진심을 담은 길고 긴 악담 문자를 보내 왔다. 아빠는 엄마의 핸드폰에서 K 엄마의 번호를 차단했다. 교사로서 비록 불명예스러운 퇴장이지만, 그렇게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낼 수 있으리라 우리는..... 방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