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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n 12. 2024

연재 소설 7화 - 마약시음회 사건, 그리고 희생 제물

미스테리 연재 소설 -  대치동 마약 시음회 사건과 메가 ADHD 음료


결국, 날 밤 샜다!

뭐지? ‘대입’이라는 현생을 사느라 잊고 있던 해커 본능을 단번에 일깨운 손동호라는 미친 인간!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를 끔찍한 현실로 데려간 ‘빨간약’처럼, 손동호 원장이 만들어낸 빨간약 괴담은 인터넷 공간에서 또 하나의 진실이 되어있었다. 내 상담 내용을 허락도 없이 방송에 나가 떠들던 인간! 나를 막돼먹은 놈으로 만든 그의 한마디. 그때는 실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는 상습범이다.      


한 때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는 빨간 약 이야기는 작년 9월, 손동호 원장이 S양에 대한 블로그 글을 게시하며 시작되었다. 얼핏 보면 다음 세대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와 학부모들의 과한 기대를 염려하는 정신과 의사다운 글이다.




<이카로스의 꺾여진 날개 1- 전교 1S, 빨간약의 비밀>     


8월의 어느 날. S고등학교 전교 1등, S양이 방문했다. 최근 머리가 너무 아프고 문제집 글씨가 부분부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S양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의사인 데다 4년 터울의 오빠는 소문난 영재로 H대 의대에 수능 만점으로 합격한 레전드 인물이다. 오빠가 의대에 합격하자, 아버지의 관심은 이제 온통 S양의 의대 진학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S양을 보며 그리스 신화의 천재, 다이달로스가 생각났다. 뛰어난 기술자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는 죄를 지어 자신이 설계한 미궁에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히게 되자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었다. 마침내 탈출하는 날,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날개에 붙인 밀랍이 녹을 수도 있으니 태양 가까이 날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아직 젊고 충동적인 이카로스에게 다이달로스의 가이드라인은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것이었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카로스는 결국 망망대해에 빠져 죽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려 애쓴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날개가 아닌, 자신의 날개로 세상을 향해 비상해야 한다. 자녀에게 원치 않는 날개를 억지로 부여하고, 부모가 설정한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원하는 마음은 자녀를 위한 것일까,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일까?  

    

최근에는 자녀의 학습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ADHD 환자에게 사용하는 중독성 약물을 처방도 없이 복용시키는 부모도 있다. 인터넷에서 비밀리에 유통되는 일명 빨간약이 그것이다. 글씨가 부분부분 보이지 않는다는 S양의 증세 또한 상담 결과, 이 약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였다.



S양을 희생제물 삼은 첫 번째 블로그 게시글에서 손동호 원장은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욕망과 억압을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로 그럴듯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회심의 결정타를 날린 두 번째 게시글에서는 ‘마약 음료 시음회 사건’을 S양과 연관 지어 조회 수를 떡상시켰다. 작년 봄, 정체 모를 범죄 집단이 시음회를 한다면서 필로폰이 섞인 음료를 대치동 학원가 수험생들에게 ‘ADHD 음료’로 속여 마시게 한 사건이 있었다. 손동호 원장은 범죄 집단이 홍보했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ADHD 음료의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이 필로폰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현행법상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며 S양이 처방 없이 장기 투약한 결과 중독 증상이 엿보인다는 떡밥을 뿌린 것이다.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은 중독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흔히 알려진 마약은 아니다. 그러나 권위 있는 의사의 모호한 글로 인해 S양이 마치 마약을 복용한 것처럼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전교 1등 #의대 #빨간약 #S양 #ADHD약 같은 떡밥은 네티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력한 키워드가 되어 대책 없이 인터넷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수험생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아낸 만선 댓글들은 이런 내용이었다.



 - 빨간약 뭐가 문제임? 집중력 향상 시키는 약이라고 소문났는데 불법임?

- K 학부모 역시 레전드! 중독성 있는 먀약 성분 약물을 처방도 없이 마구 먹이다니, 친부모 맞냐?

- 빨간약 먹고 1등 보장각이면 나도 먹는다. ㅋㅋ 구입처 좀! (굽신굽신)

- 능지가 딸리면 관련 기사라도 찾아보렴. 그거 계속 먹으면 우울증에 심하면 환각 증세 온다는데 미친!!

- S, 나중에 약쟁이 의사 되는거임?? 소름!!     



수험생 커뮤니티와 입시 정보 카페를 오가는 학부모들이 이야기를 옮기기 시작하며 작년 9월 중순 이후로는 S양에 대해 성토가 시작되었다. 지역 커뮤니티 ’화양구 맘‘ 카페의 몇 명 회원은 네티즌 수사대가 되어 S양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특히 ’바나나 우유‘라는 닉네임은 사이버 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S양을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리고 있었다.      



-세상에 집중력 높이는 약이라니, 대치동 같은 딴 세상 얘긴 줄 알았는데 화양구 얘기 맞아요?

-부모가 나쁜 거죠. 마약 비슷한 걸 먹여가며 공부시키는 게 말이 되나요?

-글쎄 그걸 1년도 훨씬 넘게 먹었다잖아요.

-약 먹고 1등 한 게 공정한가요? 대치동 사교육 시킬 형편이 아니라 애한테 미안한데 이젠 약쟁이랑 경쟁시켜야 하는 더러운 세상!

-근데 S양은 누구죠?

-오빠가 H대 의대, 할아버지 아버지도 의사!! 뻔하죠. 서X고 전교 1등.

-세상에. 약쟁이 학생이 학종으로 의대 가도 되나요? 학교에선 알고 있을까요?    



빨간약 괴담 단체 환각이라도 빠진 듯, 이 사건에 몰입한 일부 네티즌들은 S양을 자근자근 물어뜯었다. 어느새 선정이는 빨간 약을 먹고 전교 1등 자리를 사수한 지독한 약쟁이가 되었다. 적어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것이 ’진실‘, 아니 ’진실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선정이는 공정한 입시를 교란하는 공공의 적이 되었고, 내 자녀의 정당한 입시를 위해 쓰러트려야 할 표적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괴담은 희생양이 생기기 전에 웬만해선 사그라지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의 칼춤 같은 글들은... 내가 당했던 것처럼, 무방비 상태의 선정이를 아프게 찌르고 겁박했을 것이다.

선정이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고간 편지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파우스트>의 결말은 틀렸어.

메피스토보다 영혼의 거래를 한 파우스트가 더 사악한데 왜 구원을 받았을까?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레트헨의 모든 것을 앗아간 파우스트.

나는 그놈과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거야.

은호야, 약속한 것처럼 내 얘기를 들어 줘. 그리고 나를 지워 줘.

부탁해.



-손동호 원장이 작성한 블로그 제목, <꺾여진 이카로스의 날개-전교 1등 S양, 빨간 약의 비밀>.

-곧 출간될 신간의 목차, <꺾여진 이카로스의 날개 -전교 1등 S양, 빨간 약의 비극>.     


‘비밀’이 ‘비극’으로 치환되는 결말을 누구보다 바란 것은 손동호가 아닐까?

살아있는한 악은 진화를 멈추지 않는 법! 환자의 사생활을 외부로 유출하는 그의 은밀한 취미생활은 이젠 SNS를 주된 활동 무대로 삼고 있었다. 선정이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공감 정신 의학과 원장 손동호’ 근조 화환이 머릿속을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다음 주, 5월이면 손동호 원장의 신간이 출간된다. 이대로 두면 비극적 결말로 마침표를 찍은 S양 이야기는, 선정이의 말처럼 세상에 ‘박제’되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화양구 사람들은 선정이가 이 약에 취해 죽은 것으로 생각하겠지.     



다락방 창문으로 한 줌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손동호 원장의 블로그 프로필에서 휴대폰 번호를 확인했다.      


<3년 전, 원장님의 따뜻한 상담 덕분에 화창한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환자인 것처럼 커피 쿠폰과 함께 악성코드를 심어 문자를 보냈다. 쿠폰을 여는 순간, 그의 스마트폰은 이제 내 것이 된다. 차은호, 이렇게 블랙 해커의 길로 들어서는 거 아니냐구? 아니, 이제 정말 그의 호러블한 취미생활에 제동을 걸 때다. 박제되길 원치 않는 선정이를 위해, 그리고 그 인간 때문에 막돼먹는 놈이 되버렸던 어린 시절 나를 위해. 


S양의 비극, 날조된 이야기만 신간에서 빼주고 사과하면 그의 스마트폰 따위를 해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직접 그를 만나 담판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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