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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n 05. 2024

6화 - 빨간약의 비밀


하얀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리고 있는 교내 산책로의 대형 나무 테이블. 그 위에 책을 올려두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V 표를 하는 선정이의 사진이 메시지와 함께 전송되었다.




벚꽃, 피었니? 도서관 창가에서 바라보는 우리 학교 벚꽃길 참 좋아했어.

너여서 미안하지만, 내가 부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너야.

살기 위해 하나씩 나를 지우다보니, 어느 순간 내 삶은 비밀이 되어버렸어. 죽음은 나답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고 전면전이야. 내 죽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버려두지 말아줘. 완벽한 모순에서 벗어나 안식할 수 있게 도와줘.


  www.kblog.dittoclinic.com      


 - 완벽한 모순은 현명한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똑같이 비밀스럽다. - 파우스트-





사진 속 선정이는 싱그러운 봄을 머금은 듯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작년 봄, 북태그 동아리에서 열었던 <코로나를 이기는 봄맞이 독서 릴레이> 때 베스트 포토로 뽑혔던 사진이다. 교내 어디서든 책과 함께 하는 사진을 동아리 밴드에 올리면 문상을 주는 챌린지 였는데, 하얀 선정이 얼굴이 벚꽃과 아주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벚꽃잎 꽃송이처럼 잔잔한 아픔이 서서히 가슴속에 퍼져나갔다. 불시에 날아든 카톡 메시지 정말, 선정이가 보낸 것일까? 그리고 이토록 환한 봄을 그 친구에게서 빼앗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



 www.kblog.dittoclinic.com      

선정이가 메시지와 함께 보낸 링크를 클릭했다. <손동호의 마음 치료 동행-화양구 공감 정신 건강의학과>의 블로그가 열렸다.

“뭐지? 뜬금 손동호?‘

동그란 안경 너머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손동호 원장의 익숙한 얼굴이 블로그 대문에 큰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잊고 있던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방송을 타며 얻은 유명세를 등에 업고 이제는 블로그 세상까지 접수한 듯, 그는 이웃 수가 3만이 넘는 ‘건강 분야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었다. 블로그 대문 한쪽에는 ‘5월 초 출간 예정’이라는 문구와 함께 신간 표지가 올려져 있었다.


책 제목은 <공감 닥터, 손동호가 만난 코로나 시대의 우울>.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공감 메시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블로그 공지에 보이는 이벤트 알림 게시글을 클릭했다. 해당 이벤트 게시글을 블로그나 인스타 같은 SNS에 공유하고 기대 평을 남긴 이웃들을 랜덤 추첨해 신간 100권을 선물로 발송한다는 내용이었다. 500개가 넘어가는 댓글, TV 방송과 유튜브 출연을 통해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명인사답게 관심도 뜨거워 보였다.

-팬데믹의 단절을 넘어선 따뜻한 연대의 이야기!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신간 홍보 문구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중학교 시절, 그에게 받았던 상담은 상처받은 나의 영혼에 최고 단계 매운맛 캡사이신을 마구 뿌려대는, 최악의 것이었다!    

 

이벤트 알림 게시글에는 신간의 목차도 소개되어 있었다.

1장. 코로나 19시대, 늘어난 청년 고독사/ 무엇이 소통을 가로막는가?

2장으로 넘어갈 때 훅 시선을 강타한 소제목. <이카로스의 꺾여진 날개 – 전교 1등 S양, 빨간 약의 비극>.


이게 뭐지?? 다시 그의 블로그에서 ‘S양’을 검색해 봤다. ‘공감 닥터 에세이’ 카테고리에 <이카로스의 꺾여진 날개 – 전교 1등 S양의 비밀>이란 제목의 글이 두 개 올라와 있었다.


게시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전교 1등 S양은 다름 아닌 선정이의 이야기였다. 얼핏 보아도 선정이의 우울증, 그리고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될 개인적인 이야기를 실명만 빼고 자세히도 공개해 놓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더니!! 미친.....쓰레기!!! #%*!@#!! 육두문자가 정신없이 튀어나왔다. 선정이가 떠난 2월의 그 밤, 도로에 공포를 뿌리던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운 소리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머릿속에 공명을 일으키듯, 순간 쓰러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은호야, 차은호!! 밥 먹어~!“

지훈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벌써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저녁은 미나리를 듬뿍 넣은 아귀 지리탕과 불고기였다.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싶은데, 매운 아귀찜을 만든다던 지훈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탕으로 급배신을 때린 것이다. 아버지는 ‘짱세프’를 연발하면서 오늘 지리탕은 ‘감동의 도가니탕’이라고 극찬했다. 냄비 속, 아귀 대가리가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아주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는 아귀, 댕강 잘린 대가리만으로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던 이 녀석의 삶을 얼마나 유추할 수 있을까?  죽음 너머, 아득한 심연을 가로질러 내게 온 메시지 한통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현실 해커는 분노할 뿐,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답장할 방법은 없을까? 회신할 수 없는 일방적인 메시지 앞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뒤통수가 얼얼했다. 지훈이였다.     


”숟가락 들고 뭘 그렇게 한참 째려봐? 생선 대가리 처음 보냐? 같이 넣고 우려야 제맛이 나거든! “

”매운 아귀찜 한다며?!“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괜히 지훈이에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딩동’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낮에 '천하장사'라는 닉네임으로 공감 정신 건강 의학과 블로그에 내가 남긴 비밀 댓글에 손동호 원장이 답글을 단 것이다.     



-천하장사:  질문 있습니다. 내담자의 신상을 허락 없이 유포해도 되나요?-

-공감닥터:  천하장사 님, 내담자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됩니다.

-천하장사:  출판, 강의, 대중매체에 상담 내용을 공개할 때는 내담자의 동의가 필수 아닌가요?

-공감닥터:  당연하죠. 개인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실명을 절대 언급하지 않으며 다양한 임상 사례를 엮어 특정 개인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게 주의 하고 있습니다.

-천하장사:  블로그 게시글, 누가 봐도 특정할 수 있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던데요. 신간 목차에도 들어가 있던데 허락 없이 출간하실 건가요?

-공감닥터:  오해입니다. 고민이나 상담 내용이 겹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천하장사:  이카로스의 꺾여진 날개? 하늘나라에 간 S양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했죠?   



갑자기 내가 쓴 비밀 댓글과 공감 닥터의 댓글이 사라졌다. 손동호 원장이 관리자 권한으로 댓글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내 아이디까지 차단한 것이다. 스팀이 확! 올라는 뒤통수를 이번에는 아버지가 가격했다. 스마트폰 내려놓고 닥치고 밥 먹으라는 뜻이다. 스마트폰 대신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뭐야, 밥 안 먹어? 지훈이가 너 중간고사 끝났다구 힘들게 요리했는데?“

”낮에 과식해서 아직 더부룩해요. 죄송해요. 맛있게 드세요.“

”뭘 먹었는데?“

”천하장사요.“

”얘 뭐라는 거니?“

아버지가 지훈이를 보며 물었다. 손동호 원장, 극강의 뻔뻔함에 열이 뻗쳐 아무 말 대잔치 같은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못먹겠어요 .다음 주까지 신작 게임 보안 테스팅해서 보내야 돼요. 다락방에 있을게요. “

나의 뒤통수에 대고 아버지와 지훈이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니, 중간고사는 잘 본 거야? 입맛 없으면 지리탕 국물이라도 먹어봐!“

”뭐야, 아귀찜 아니라서 삐친 거야? 차은호!!“          



빌라 맨 위층에는 서비스 면적으로 제공되는, 천정이 삼각형 모양으로 낮아지는 작은 다락방이 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내가 롤에 미쳐있던 중학교 1학년 때, 엄마는 차라리 집에서 게임을 하라며 최신 PC와 스피커, 게임용 키보드와 마우스 풀세트를 이곳에 세팅해 주셨다. 엄마가 사주신 PC 풀세트는 이제 벽면 책장으로 이동해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노트북 전원을 켰다.      


깍아지른 절벽 사이를 멋지게 비행하는, 밤하늘을 다 덮을 것처럼 긴 날개를 가진 악마의 모습이 모니터를 가득 채운다. 넥스트 게임사가 가을 출시를 앞두고 보내온 신작 게임의 오프닝 영상이었다. 컴컴한 어둠 속, 악마의 긴 날개가 이제 방안에 펼쳐지는 것처럼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빛이 온 방을 비추고 있다.


1년 전 열린, ‘제1회 넥스트 게임 온라인 버그 바운티 대회1)’에서 수상한 화이트 해커들에게 '넥스트 게임'사는 신작 게임 보안 테스팅을 맡기고 있다. 물론 회사 내부에도 보안팀이 있지만, 외부에서도 프로그램을 검증해 안전에 만반을 기하려는 취지다.


국내 게임 시장, 만년 2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넥스트 게임사는 다양한 이벤트를 벌였다. 금융권에서 주로 개최하는 <버그바운티 대회>를 처음 도입한 것도 청소년들의 꿈을 적극 후원하는 넥스트 게임사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코로나 기간 홍보 부족으로 참여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나는 운 좋게 금상을 수상해 상금 천만원과 졸업 후 내가 원한다면 넥스트 게임사에 입사할 수 있는 특전을 부여받았다. 수상 이후 넥스트 게임사는 신작 게임의 보안 테스팅을 가끔씩 의뢰 했는데 건당 1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주었다. 부정기적인 일이었지만 햇병아리 해커인 나에겐 꽤 괜찮은 알바였다.     

 

이번 신작 게임 오프닝 영상은 꽤나 신경쓴 것이 느껴졌다. 대장으로 보이는 악마가 밤하늘을 날아 도착한 곳은 화려한 색색 에메랄드로 치장한 초호화 호텔. 웅장한 효과음과 함께 황금 문을 열고 대장 악마가 입장하자 다른 악마들이 속속 도착해 초대장을 내민다. 초대장에 새겨진 글씨는 <PANDEMONIUM>.


신작 게임은 현실 라스베가스보다 더 호화롭고 실감 나게 세팅한,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 했다. 젠장!! 넥스트 게임사와 약속한 다음 주까지 테스팅을 마쳐야 하는데, 손동호 원장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기묘한 얼굴과 선정이가 보내온 메시지가 계속 머릿속에 오버랩 되었다.  


             

게임 화면을 정지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공감 정신과 블로그를 다시 살폈다. 신간 출간을  알리는 공감 정신 건강의학과 블로그의 이벤트 시글은 공유를 통해 SNS로 정신없이 퍼져나가, ‘S양 이카로스’라는 검색어만  넣어도 리포스팅된 게시글 수백 개를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화양구 맘> 카페에 공유된 손동호 원장 신간 이벤트 게시글에는 회원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A:  굿굿! 인상 좋고 환자에게 진심인 손 원장님 신간이 나오는군요. 기대만땅입니다!!

-B:  이런 얘기 조심스럽지만, 신간 목차에 있는 이카로스의 꺾여진 날개 S는 서일고 여학생 아닌가요?

-C:  서일고 누구?? 혹시 얼마전 자살한?

-B:  이번 신간, 손 원장님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 모아 출판하는 거예요. 인플루언서라 저도 가끔 블로그 방문하는데 작년에 블로그에 올라온 S양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D:  어머 무슨 이야기인데요?

-B:  한 때 커뮤에서 화제 될 뻔했는데. 빨간 약.....

-C:  빨간 약? 그게 뭐죠?

-B:  저도 딴 나라 얘긴 줄요. 죽은 여학생, 빨간 약 먹고 1등 한 거라네요.

-A:  헉. 약을 먹고?

-C:  소름!!!        


정신과 의사의 ‘정신적 테러’에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칭 공감 닥터가 쏘아 올린 ‘빨간약 괴기담’은 그렇게 인터넷 세상에 퍼져가고 있었다.



*1) 버그바운티 대회 - 기업의 서비스나 취약점을 발견한 화이트 해커에게 포상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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