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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May 29. 2024

연재 소설 5화 - 유령의 메시지

미스테리 연재 소설 - 죽은 선정이의 메시지


4월의 끝자락. 교내 산책로에 만개했던 벚꽃은 중간고사 시험 대비 기간인 2주 전에 이미 아쉬운 엔딩을 고했다. 대한민국 고딩에게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했던가. 마법의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벚꽃길 사이를 학생들은 문제집으로 불룩한 가방을 메고 무표정하게 오갔다.      




지필고사가 치러지는 고등학교 교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극도의 긴장감과 완전한 무기력이 뒤섞인 혼돈의 무법지대다. 내신 등급으로 만족할만한 대학 배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중상위권 학생들은 2학년 2학기, 일찌감치 ‘정시러’를 선언하고 선택과 집중을 위해 내신 포기 모드에 돌입했다. 이들에게 지필고사는 그냥 아는 문제 몇 개를 성의껏 풀어보는 정도의 테스트. 대입을 아예 포기한 5~6명의 학생은 찍기 신공조차 시간이 아까운 듯, 시험지를 받자마자 OMR 카드에 원하는 테트리스 모형을 완성하고는 곧바로 엎어져 잠을 청했다. 더 노답인 것은 이들을 깨우는 선생님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3 내신은 이 혼란의 현장 속에서 대략 내신 2점대 초반까지의 학생들끼리 벌이는 치열한 접전이다.           


중간고사 기간 레전드 사건이 있었는데, 동호가 생물 과목 0점을 받은 일이었다. 녀석은 스포츠 토토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핸드폰을 가방 속에 몰래 넣어두었다. 쉬는 시간, 영끌 베팅한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패배를 확인하고는 그 충격으로 전원을 끄지 않고 핸드폰을 그대로 가방에 넣은 것이다. 2교시 생물 시험 시간, 조용했던 교실에 난데없는 스테레오 사운드가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ㅋㅋㅋ.. 몇 명 아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해 큭큭 웃으며 감독관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나중에 동호에게 들은 바로는 절단난 도박 승률 때문에 괴로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핸드폰 벨소리라고 했다. 시험 중 핸드폰 제출은 의무사항이었고 적발 시 해당 과목은 무조건 0점 처리되었다. 녀석은 0점 처리된 과목보다 통장에서 거짓말처럼 녹아내린 현금의 충격이 수천 배 큰 듯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시험 종료 벨이 울리자마자 동호는 부리나케 핸드폰을 찾아 전원을 켜며 교실 문을 나섰다.      


나의 중간고사 결과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했다. 방학 동안 죽어라 킬러 문항과 씨름한 덕분인지, 아니 현우진쌤의 뉴런이 드디어 나의 시냅스에 연결된 것인지 지난 3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국어 3등급, 영어 2등급, 과탐 3등급. 3월 모의고사 등급은 총체적으로 답이 없었다. 역시 내신을 끌어올려 학종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판단에 생애 최초로 미친 듯이 중간고사 대비에 몰두했고 수학 만점과 함께 전반적으로 만족할만한 내신 상승곡선을 만들어냈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지훈이와 PC방에 가곤 했는데, 녀석이 직업 위탁 교육기관인 현대 산업 정보학교로 가버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지훈이가 없는 학교는 나에겐 맹숭맹숭 무료한 공간이었다. 녀석은 뭘 하고 있는지 닉네임 동방박사, 지훈이의 인스타를 열어봤다. 직업학교에서 아구 손질 중인 듯, 제법 큰 아귀 대가리를 얼굴에 바짝 붙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지훈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녀석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똥방박사, 오늘 저녁 메뉴는 매콤 아귀찜이냐??-     

쉬는 시간인지 지훈이에게 바로 메시지가 왔다     

-시험 잘 봄?

-수학 만점 받음. 똥방박사 경배 각! ㅋㅋㅋ

-오케! 아귀찜 접수!     


딱히 갈 곳도 없고, 하루 정도 충전하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서쌤이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야~! 차은호. 고 3되고 도서관에 아주 발길 끊은 줄 알았다. 그래두 시험 끝났다구 얼굴 보여주네, 역시 의리파야.”     

자그마한 체구와 달리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김효정 사서쌤. 안정된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책이 좋아 사서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코로나 19로 인해 출석이 들쑥날쑥했던 고등 2년의 시간 동안 북태그 챌린지로 문상을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뿌리고, 비대면 토론대회를 개최하면서 동아리 친구들의 생기부를 꽉꽉 채워준 열정 쌤이기도 하다.      

“도서관 저 없어도 상관없이 쌩쌩 잘 돌아가죠?”

“잘 돌아가긴, 보다시피 학생들 그림자도 안 보이는 나 홀로 도서관이다.”     

언제나처럼 책상 서랍을 열더니 사서쌤은 망고 주스, 초코바, 쿠키, 소시지를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도서관 봉사 하는 학생들이 꺼내 먹도록 쌤의 서랍 안은 항상 다양한 간식들이 준비되어 있다. 쌤은 직접 소시지 비닐을 벗겨 건네주며 말했다.

“천하장사 소시지 좋아하잖아. 은호 오면 주려고 사뒀지.”     


나는 선정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창가 자리를 바라보았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흙바람 속에 운동장을 나뒹굴던 그 날...그 바람 속을 휘청이며 걸어가던 선정이의 뒷모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모습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이제는 창문 너머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마다 풍성한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초록초록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두 달 전, 그 시간은 거짓말인 것처럼.     


잠시 후 사서쌤은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가 땡긴다면서 1시간만 도서관을 맡아달라며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딸기라테를 배달해 주겠다면서. 서가에서 선정이가 사고 당일 들고 나간 <파우스트>가 반납되어 있는지 찾아보았다.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은 블랙 커버가 아닌 흰색 표지의 파우스트. 선정이가 대여해 간 파우스트는 역시 반납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서샘 자리에 앉아 <파우스트>를 읽었다. 1학년, 북태그 동아리 초기에 선정이가 공유했던 책. 그때 문상을 받으려고 릴레이 읽기를 하다 1부까지 겨우 읽고 2부는 집중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 한평생 지식을 미친 듯이 갈구했지만, 끝내 진리를 깨우칠 수 없었던 파우스트. 그는 세상의 부와 명예, 쾌락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악마와 영혼을 담보로 거래를 맺고 젊은 외모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레트헨이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져, 한때의 욕정으로 그녀는 물론 가족까지도 파멸시키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줄거리다. 선정이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했던 파우스트 2부의 뒷부분을 펼쳐 보았다.     




천사들  (파우스트의 불멸 영혼을 데리고 두둥실

               더 높이 올라간다)

              정신세계의 고매한 일원이

              악으로부터 구원받았노라.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노라.

              그가 천상의 복을 받았으니

              복된 무리가 진심으로 환영하리.....



사르륵, 사르륵. 어디선가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코끝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람, 그 익숙한 냄새. 거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원목 체스판을 올려두고 혼자서 체스를 두던 여섯 살 어느 저녁에도, 주먹밥을 먹으며 앉은뱅이책상에서 수학 학습지를 풀던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오후에도 이렇게 살랑이는 바람이 불었다. 은은한 꽃향기 같은 엄마의 체취가 느껴지던 바람의 냄새. 그리고 사르륵사르륵...거실과 이어진 식탁에 앉아 엄마가 책장을 넘기던 소리.     

... 엄마...?     


끼익~ 도서관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정이었다. 단정한 단발머리를 귀에 꽂고 살짝 미소 띤 표정, 무릎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려는 찰나, 선정이는 책장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책장 쪽으로 따라가 보니, 다시 맞은편 책장 뒤쪽으로 하얀 원피스 자락이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사르륵, 사르륵. 다시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앞뒤로 흔들리는 도서관 유리문 너머, 복도로 걸어가는 선정이의 야윈 맨다리가 보였다.      

‘선정아!!!’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생각과 다르게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안간힘을 써서 선정이의 이름을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린 선정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복도 끝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인데!  다급한 생각에 쫓기다 꿈에서 깨어났다.      



펼쳐둔 파우스트 책장이 바람결에 사르륵 넘어갔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스마트 폰을 꺼내 카톡 메시지 창을 열었다.      

발신자는...... 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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