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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May 22. 2024

연재 소설 4화 - 버려진 국화

미스테리 연재 소설 - 다시 찾아온 선정이


정이를 보내는 시간은 메마른 꽃길 같았다

장례식 장에서 보았던 선정이 어머니는 넋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겨우겨우 선정이 오빠에게 기대 있었다. 시종일관 입을 꾹 다문 선정이 아버지에게선 슬픔도, 애통함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도 함부로 애도와 위로를 말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은 ’대한의사협회/대한가정의학회/한국대 의대 동문회/공감 정신의학과‘ 같은 규격화된 디자인의 대형 화환들. 근조 화환 리본에 당당하게 새겨진 ’의대, 의사 협회‘ 같은 글자들이 나는 이상하게 불편했다. 지금까지 선정이를 압박하던 모든 것들이 흰 국화로 교묘히 낯을 가리고, 마지막 길에 생기 없는 꽃잎을 뿌려대는 느낌이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서일고 학생들은 그날 이후, 선정이가 발견된 구관 뒤쪽 공터에 흰 국화꽃을 모아두었다. 봄방학이 끝나고 학년이 바뀌는 시점이라 선정이가 소속되었던 2학년 반에 꽃을 가져다 둘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현장을 추모하게 된 것이다. 개학일 등굣길에 경비 아저씨의 손에 들려진, 대형 분리수거 비닐봉지 안에 아무렇게나 꺾인 흰 국화 꽃송이들을 보았다. 우수한 학생을 잃었지만, 학교는 교내 자살 사건으로 인터넷 기사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화제가 되길 원치 않았다.



고3, 새 담임 선생님의 등장을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 앉아 있는 신관 3학년 4반 교실에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말끔한, 건너편 구관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기 구관 어디쯤 생과 사의 경계, 죽음의 입구가 자리하고 있을까? 패딩점퍼의 모자까지 지퍼를 올려 완전히 얼굴을 가린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선정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선정이의 투신 시간은 저녁 8시 10분 경이라고 했다. 구관 옥상 계단으로 향하는 선정이의 마지막 모습이 복도 CCTV에 남아 있고, 스터디 카페 사물함에서 발견된 선정이 핸드폰에도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기에 사건은 빠르게 자살로 귀결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정이 오빠, 주선민 선배에게 선정이의 편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의 답변은 명료했다.     


”먼 길 간 녀석, 가족들 입장에선 조용히 보내주고 싶어. 작년 2학기 때부터 성적이 떨어져 불안감이 컸는지 정신과 상담을 받았더라구. 오피스텔에 나가 있는 데다 부모님이 전혀 말씀을 안 하시니 난 몰랐어. 아버지랑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대한민국 고 3중에 불화 없는 집이 있겠어? 파우스트니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다 아파서 그런 건데, 그렇게까지 마음이 무너져 있는지 몰랐던 거 부모님 입장에서 너무 힘드실 거야. 자책감 때문에.  괜한 소문이 더해지는 거, 선정이도 원치 않을 거구. 사고 전날 녀석이 나한테 보낸 메일이 있어. 가고 나서야 확인한 무심한 오빠지만. 거기에도 힘들다, 미안하다 같은 이야기뿐이야. “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수시 원서를 쓰기 위해 끌어올려야 하는 내신, 안타깝지만 정신과 상담 중이었다는 선정이의 마지막 메시지에 계속 집착할 어떤 근거도 없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에겐 악성코드보다 더 난해한 말들이었으니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옆자리 동호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이 c, 또 개같이 망했네. 아침부터 얼마 잃은 거야. 진짜 자살각이네. 은호 너 해커라며. 사이트 폭파, 아니 내 돈 복구 어케 안 되냐?”     

동호는 스마트폰 화면을 나에게 바짝 들이밀었다. 수업 시간에만 꺼내놓지 않으면 폰압 없는 핸드폰 자율 학교라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삼삼오오 모여 온라인 도박에 빠져 있는 무리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동호는 ’ 바카라’를 하고 있었다. 카드 2장을 받아 합이 9에 가까울수록 이기는 도박, 얼핏 보기엔 그냥 온라인 카드 게임처럼 보여 구분도 쉽지 않았다.     

“동호야, 이건 룰자체가 딸 수가 없는 구조라구 몇 번 말했냐. 해커 아닌 예수님이 지금 재림해두 쫄딱 털리는 게임이야.”

“아니거든. 집에서 방학 동안 300 넘게 땄는데. 서일고, 학교 터가 안 좋아 그래. 그러니까 멀쩡하던 전교 1등이 자살을 하지.

”선정이 전교 1등 아니래. 작년 2학기부터 성적 나락 갔다던데? M 타워 건물, <공감 정신과> 단골이었다더라. 작년 가을 우주마트 사거리에서 쓰러진 적도 있대. 아빠도 의사, 오빠도 의대! 집 안이 다 의사니 어우~~ 압박감 장난 아니었겠지 ”     

동호 앞자리, 동그란 안경을 낀 녀석이 때를 기다린 것처럼 거들었다. 공감 정신과? 이름과 다르게 공감이라곤 1도 느껴지지 않던, 반질반질한 손동호 원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잠깐 다녔던, 비싼 상담료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정신과.     



그런데 이 친구들은 어떻게 선정이에 대한 정보를 줄줄 꿰고 있을까? 그날 이후, SNS를 통해 서일고 학생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사건의 경과를 주고받았다. 충격과 슬픔, 애도로 시작된 SNS 글들은 고3의 무게, 대한민국 입시 지옥에 대한 한탄에서 시간이 갈수록 선정이의 가족 관계, 성적 압박과 같은 신상 털기로 이동해 갔다. 선민 선배가 말했던 추측,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럴 때 닥치고 애도만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 타인의 불행을, 그것도 죽음을.... 한순간의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참을 수 없는 인간의 가벼움에 스멀스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전교 1등은 손지우인가?”

“한국대 의대 학추는 손지우가 받겠네. 손지우 의문의 1승이구만”

“손지우랑 주선정 라이벌 대결, 팝콘 각이었는데.. 이렇게 끝날 줄이야...”

“뭐래, 니들은 그게 진심 중요하니?  소시오패스들 같아!”     


말총처럼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은, 교탁 앞에 앉은 여학생이 참을 수 없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깔끔한 팩폭을 날렸다. 곧이어 수학 과목을 맡고 있는 조끼쌤이 교실 문을 열고 등장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똑같은 조끼를 입는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반 친구들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느껴졌다. 생기부 행특과 세특 무한 복붙으로 유명한 쌤이라, 중요한 고3 생기부는 이제 망했다는 무언의 공감대였다.


“새삼 내 소개, 필요 없지? 작년 2학년 수학 담당이라 다 알거구. 코로나 마스크 해제, 엔데믹이라 떠들어두 고3은 뭉쳐있어 좋을 거 하나 없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모여 떠들지 마! 코로나 걸리면 피 같은 시간 격리로 시간 날리게 되니, 뭐 알아서들 조심해. 그리고 개학 전 참 안타까운 사고가 있어 뒤숭숭하겠지만, 명복은 마음으로 비는 것이고. 각자도생, 적자생존!! 알지? 이게 고3의 국룰이다.     



조끼쌤의 당부대로 대입에 맞춰진 서일고 고3의 일상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 흔히 접해왔던 ‘성적비관 자살’이 다름 아닌 ‘우리 학교’에서 일어났다는 놀라움 정도. 3월 모의고사와 고3 내신이 걸린 중간고사 레이스 앞에서 학생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고 그렇게 선정이에 대한 기억을 학교는 빠르게 지워내고 있었다. 나 또한 평정심을 되찾고 일상의 루틴을 찾아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약속대로 선정이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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