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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l 10. 2024

연재소설 11화 - 골든티켓의 은밀한 거래

미스테리 연재 소설 - 고등학교 시험 문제 유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지훈이 예측이 맞았다. 손동호의 스마트폰은 구린내 정도가 아니라 부패와 불법이 저장되고 지시되는 리모트 컨트롤러였다.      


”와~~대박 사건! 손지우 아빠가 손동호? 이거 실화냐?“   

  


지훈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핑크색 머리띠, 바나나 우유를 두 손에 쥐고 활짝 웃고 있는 꼬마는 어린 시절 손지우였다. 지금도 깔끔하게 머리띠를 즐겨하는, 일부러 찍어 넣은 듯한 코끝 점 때문에 더 도도해 보이는 아이. 한 번도 역전한 적은 없지만 2학년 1학기까지, 근소한 차이로 항상 선정이를 맹추격한 서일고 전교 2등. 선정이가 죽고 난 뒤 지난 중간고사에서는 손지우가 전교 1등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의대 지망생인 손지우가 원한다면, 수시에서 한국대 의대 학교장 추천서는 이제 그 아이의 것이 될 것이다.  손동호의 외동딸 손지우, 그 아이 사진 속에서 바나나 우유를 본 순간,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에서 마주했던 바나나 우유의 댓글들이 떠올랐다.     


-부모가 나쁜 거죠. 마약 비슷한 걸 먹여가며 공부시키는 게 말이 되나요?

-S양, 나중에 약쟁이 의사 되는거임?? 소름!!

-죽은 여학생, 빨간 약 먹고 1등 한 거라네요.     


선정이가 복용했다는 집중력 높이는 약을 마치 마약인 것처럼 지속적으로 혼동을 주며 사이버 세상을 종횡무진 누빈 ‘바나나 우유’. 포털과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닉네임 ‘바나나 우유’의 아이디를 대조했다. 바나나 우유의 아이디는 <SKYSON>. 각종 커뮤니티는 물론 서일고에서도 공통으로 이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유저는 예상대로 손지우였다.      


”뭐야? 공갈닥터놈이랑 손지우 선정이 타도 2인 1조였던 거야? 와 이거 진짜 막장 드라마다.“

”... 이렇게 되면 선정이는 자살일까? 자살 당한 걸까?“      



‘손지우’라는 마스터키를 쥐고 나니 스마트폰 깊숙한 곳에 음험하게 닫혀있던 비밀의 문들이 차례차례 열렸다. 교묘하고 비열한 자료들이 뭉텅이로 숨겨져 있는 폴더들을 하나하나 내 노트북으로 다운로드 했다. 처음 우리를 경악하게 한 것은 손동호에게 선정이는 단순한 환자가 아닌 ‘과몰입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가 <분리수거>란 이름으로 저장해둔 파일에는 선정이와 관련된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료를 보니, 선정이와 손지우는 화양구 4개 중학교 중 하나인 지명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부터 둘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는지 선정이와 손지우의 학기별 내신과 각종 대회 수상내역이 차곡차곡 손동호의 파일에 보관되어 있었다. 글짓기 대회, 영어 에세이 작문 대회, 과학탐구토론대회 등 대부분 교내대회를 싹쓸이한 것은 선정이었다. 손지우는 항상 아깝게 2~3등을 차지했고, 폴더에 저장된 교내대회 수상 포토의 주인공은 매번 선정이, 사이드에 김빠진 얼굴로 서 있는 아이가 손지우였다.     


중학교부터 시작된 선정이와 손지우의 내신비교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손동호는 두 아이의 과목별 내신 점수와 등급은 물론이고 과목별 문제 항목과 오답 리스트를 엑셀로 만들어 비교했다. 이렇게 비교해 보니 손지우가 선정이에 비해 수학, 과학에서 총점을 깎아 먹고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분석표마다 어떻게 열세인 과목의 점수를 만회할 것인지, 그리고 선정이가 다니고 있는 내신 대비 학원, 대치동 대형 학원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나같은 보육원 출신은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아. 다행히 내 담당은 아니었지만, 보육원에 불독이라 불리던 또라이 교사가 있었는데 정신과 의사랑 콜라보 하는 걸 아주 좋아했어.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과잉행동을 한다면서 정신과 약을 영양제 먹이듯 억지로 먹였지. 그 약을 먹은 애들은 점점 말이 어눌해졌어. 정신과는 보육원 애들 약팔이 해서 건강보험 공단 돈을 줍줍 하는 셈이고 또라이 교사는 애들 핸들링하기 좋은 멍청한 상태로 만드니까 서로 윈윈이지. 그동안 파렴치한 인간들 많이 봐왔지만 손동호 이 인간 역대급이네. 부모가 자녀에게 욕망을 투사하면 안 된다고 떠들더니 본인 집착은 저세상급이구만. 파일명이 ‘분리수거’인 게 소름이다.“

”단순한 집요함으로 보기엔 도가 지나치지 않아? 만년 2등인 딸의 라이벌을 자기 경쟁자로 느끼고 있는 거 같아. 생기부 유출까지 마다하지 않은 걸 보면…. 이거 불법인데 누가 손동호에게 생기부를 넘겼을까?“

”이런 건 내부자 소행이야. 학교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     


지훈이는 보육원에서 비교적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지만, 학교에 등교했다가 보육원으로 돌아갈 때면 또 다른 ‘학교에 자러 간다’고 표현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원생들, 교사들과 워낙 갖가지 일을 겪다 보니 어둠의 경로에 대한 촉이 빠른 편이다.


학교 안에 손동호의 조력자가 있다? 손동호의 SNS를 살펴봤다. 카카오톡, 인스타 메시지에서는 별다른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둠의 메신저인 텔레그램 앱을 보이지 않게 감춰두고 비밀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상이 있었다. 닉네임 <골든 티켓>. 텔레그램은 서버에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닌, 메시지를 주고받는 당사자들만 기록이 남는 종단간 암호화를 사용하는 데다, 메시지 자동삭제 기능을 사용할 경우 해킹으로 찾아낼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손동호는 일주일 단위로 대화가 사라지도록 자동설정을 해두었지만 메시지 일부는 확인 가능했다. 그들의 마지막 대화는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골든 티켓 : 축하드립니다. 지우가 빛을 발하네요. 중간고사, 무난히 전교 1등입니다.

-공감 닥터:  덕분입니다.

-골든 티켓:  5월 생물탐구대회 집중해야 합니다. 의대 스팩 직결입니다.

-공감 닥터:  장내 세균과 불면증에 관한 연구 소스, 후배에게 받아뒀습니다.

-골든 티켓:  소스 좋네요. 서일고 이제 지우 독무대군요.

-공감 닥터:  커튼콜 때 진짜 주인공이 드러나는 법이죠. 요새 풀고 있는 N 제 첨부합니다.     



손동호가 첨부한 파일 N 제는 대치동 수학 1타 강사가 현강에서만 배부하는 고난도 문제였다. 학교에서 시험문제가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학부모가 시험 문항을 제공한다? 이전의 대화 기록이 사라져 중간고사 때 출제된 수학 문제에 부정이 있었는지 대조가 어렵지만,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전교 1등이란 이유로 선정이가 안팎으로 견뎌야 했던 질시와 압박이 안쓰러웠다. 응원만 받아도 쉽지 않은 고단한 레이스에 숨은 방해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딸, 손지우의 입시에 눈엣가시 같았던 선정이가 제 발로 자신의 정신과를 찾아왔을 때 손동호는 그물에 저절로 걸려든 대어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했으리라.     


선정이의 정신과 상담을 역이용해 손동호는 블로그에 글을 올려 멘탈을 흔들기 시작했어. 인플루언서의 파급력으로 네티즌 수사대가 S양을 찾아내도록 심리전을 펼친 거지. 선정이가 상담을 시작한 작년 8월부터는 무엇 때문인지 선정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정의학과 제약회사 납품 목록까지 리스트업하기 시작했어.“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이 정도 자료면 공갈닥터 압박 가능하지 않을까?“

”골든 티켓에게 뇌물을 준 기록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은행 거래에서 포착되는 게 없어. 손동호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손지우야. 지우에게 데미지가 될만한 확실한 증거가 가장 두려운 카드일 거야.“

”아까 이야기한 또라이 불독이 보육원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를 족치면서 주문처럼 하던 말이 있어. 한가지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선 일곱 개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다.“

”손동호가 갖고 있는 뭔가가 더 있을 거란 말이지?“     



손동호의 블로그에는 이제 5일 후면 온·오프라인 서점에 신간이 동시 출고된다는 공지가 새로 올라와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손동호를 한 방에 보내버릴 명확한 증거를 손에 넣기 위해 그의 일상을 스마트폰에서 체크하며 지훈이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심플한 플랜 하나를 생각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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