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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Nov 08. 2021

장기화된 코로나로
불안하고 우울하다면





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과 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매일 보는 가족이라도 독립적인 공간은 서로에게 필요하다. 몇 평 안 되는 집 안을 다닐 뿐 움직임이 덜하니 체력도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짜증과 분노의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팬데믹 이후에 많은 분들이 이런 우울과 분노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걷고 달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20여 년 전에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걸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니 걷지 않을 이유를 대었다. 코로나가 터지니 걸을 기회는 더 차단되었다. 이 모든 것이 ‘기후 문제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도 했다. 모종의 죄책감으로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몇 가지 실천 사항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기. 에코백과 텀블러 들고 다니기. 이메일 보관함 자주 비우기, 두 대 있는 차 중 하나 팔기 등. 


 되도록 2-3km 거리는 걸어 다니려고 노력했다. 차가 있을 때는 덥다는 이유로, 춥다는 이유로, 물건이 많다는 이유로 1km도 차로 다녔다. 막상 걸으니 멀게 느껴졌던 1km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2-3km도 시간만 10분, 20분 늘어날 뿐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내 몸을 움직이니, 내가 사는 동네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걷기에 아직 습관을 들이지 못한 나는 여러 핑계를 대며 이를 미룬다. 그러다가 내가 속해있던 한 커뮤니티 단톡방에 있는 한 분이 공지 하나 올려주었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박수 칠 때 떠나자>라는 이름의 함께 걷는 모임이었다. 여섯 번의 만남을 통해 원주 지역을 함께 걸아야 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이기에 바로 등록을 했다.  





 첫 걷는 코스는 원주 굽이길 코스 중 하나인 부론면에 있는 <거돈사지>였다. 원주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곳도 원주에 속한 동네였다. 거돈사지는 고려 초기의 절로 추정되는 약 7500여 평 절터로 당시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지금은 축구를 해도 될 정도로 넓은 공터이다. 거돈사지를 가기 위해 출발했던 곳에는 조그마한 강이 있었다. 산으로만 둘러쌓인 강원도 원주에 살고 있기에 “왜 이런 곳에 강이 있지?”라는 생각을 순간 했었다. 과거에는 이 강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왕래하고 절도 오갔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 동네가 꽤 부유했다고 한다. 


 원주에 수 십 년을 살아도 사실 자신이 살았던 곳만 익숙해지기 나름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도적으로라도 함께하는 분들이 계시니 이런 곳에도 와보게 된다. 센터 담장자, 프로그램 진행자, 엄마와 초등 6학년 딸,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젊은 여군, 젊을 때 등산을 좋아했다는 무실동에 사는 한 여성,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 명이 참여했다. 같은 지역에 살지만 걷는 것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이었다. 


 나는 작년까지 비영리단체 대학 관련기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는 거의 대학생들만 있었다. 이른 퇴직을 하고 난 후, 가끔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가 보면 정말 다양한 세대의 분들을 만나게 된다. 센터 담당자분은 젊은 분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보통 오, 육십대 여성분이 많은데, 젊은 여성이 참여하기는 거의 처음이라고 한다. 젊은 여군의 이력은 특이해서 질문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걸으니 숨이 가빴다. 걷다가 옆에 스치는 이들과 이야기하다가를 반복했다. 함께 걷다보니 7km 정도의 거리를 힘들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퇴직 후 매일 읽고 쓰는 삶이 내게 전부였다. 그러나 책만이 읽을 대상은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타인’을 읽는 시간이다. 이야기를 멈추고 홀로 걷을 때는 ‘나’를 읽는 시간이다. 나와의 대화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은 ‘자연’을 읽는 시간이 된다. 오랜만에 밟는 흙의 감촉, 부스럭거리는 낙엽 소리, 침묵해야만 들리는 새소리, 앞 뒤 걷는 사람들의 호흡 소리, 가끔씩 찰칵 거리는 카메라 소리는 배경 음악이다. 





 김경일 교수의 최근 신간 『심리 읽어드립니다』에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 한 가지를 제시한다. 바로 걷는 것이다. 걸으면 발바닥이 자극을 받으면서 뇌의 편도체가 약화되고 해마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편도체는 안 좋은 종류의 감정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반면 해마는 뇌가 새로운 가설을 떠올릴 때 활성화된다. 걸을 때 편도체는 부정적인 감정을 약화시킨다.  


 『아티스트 웨이』로 유명한 줄리아 카메론은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산책’이다. 적어도 매주 두 번 20분씩 하기를 제안한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없다거나,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매주 두 번 20분에 머물지 않고, 그 유익함을 경험하면서 산책의 시간을 늘려간다고 한다. 산책을 통해서 통찰을 얻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은 덤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로 답답하고 우울하다면 집과 일터를 떠나 밖을 나와 보라. 혼자 걸어도 좋고, 가족과 나와도 좋고, 걷는 모임에 참여해 봐도 좋고, 손수 걷는 모임을 만들어도 좋겠다. 걷다 보면, 집 안에만 있었던 좁은 세상이 조금은 넓어진다. 나를 새롭게 만남으로 몰랐던 창조성이 싹트기도 하고, 타인과 자연과 세상을 낯설게 보기도 한다. 그리고 우울하고 화난 나의 뇌구조도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걸어보자. 지구 보호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니깐.  



낙엽 밟으며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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