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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Jan 08. 2024

겨울 산을 걷는 사람들

백두대간 19km 완주






새벽 2헬스와 마라톤을 하는 사람    

  

몇 년 읽고 쓰는 데 몰입하다 보니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올해는 기필코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라톤, 수영, 헬스 등등 고민하다가 우선 트레킹, 등산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지역에 있는 산악회 두 번째 참여를 했다. 백운대간 19km 코스다. 이 코스가 산악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19km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아직 나에게는 감이 없는 초보 산행인이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완주했다. 그럼에도 결코 쉽지 않았다고 연실 말을 내뱉으니 한 대장님이 그래도 무엇도 모를 때 가장 용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셨다.      


등산이 끝나고 식당에서 어디에 앉을지 잠시 서성일 때 여기 앉으라고 말해 주셨는데, 알고 보니 산행 선두에서 글을 안내하는 대장님이셨다. 매우 화통하면서도 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운동마니아셨다. 산행한 지 20여 년이 되었으며, 지금도 퇴근하면 저녁에 클라이밍을 1시간 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서 2시간 헬스를 하고, 4시부터 2시간은 마라톤을 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그 희열이 대단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운동하게 된 계기, 지금도 그렇게 운동하고 있는 이유를 좀 더 깊게 물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시끄러운 식당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우선 대화를 트고 조금씩 알아가는 중임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식사 테이블과 옆테이블에는 남자분들이 여럿 앉으셨는데, 그중 대장님들이 많으셨던 거 같다. 대장이 한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 산악회 밴드에 가입했을 때는 밴드 회원들과 소통하는 리더 한 분이 계셨는데, 만나니 나이가 꽤 많아 보이셨다. 600여 명이 넘은 회원들, 수시로 올라오는 정보 업데이트, 다음 산행, 지난 산행 결산, 그리고 개인 톡으로 회원 상담 등등 이 작업을 이분이 다 하고 계셨던 걸까 생각하며 세상에는 참 놀랍고 신기한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지난 등산에는 식당이 너무 분주하고 정신없어서 혼자 나와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었었다. 아직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었고,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등산 인원 점검을 하셨는지 신입 한 자리가 빠진 것을 알고 이번에는 중간중간 많이들 챙겨주셨다. 그래서 이번이 나에게는 산행 후 첫 식사 자리이다. 곱창전골뿐 아니라 테이블 별로 맥주와 소주도 간간히 깔렸다. 술을 먹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분위기에만 동참했지만, 대학 생활 이후 오랜만에 접해 보는 문화였다.      


50, 60대가 많아 보였다. 중년 이후에는 모두 중성화된다고 했던가. 여성들도 남성과 같은 터프함과 걸쭉함 속에서 서로 잔과 유머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서로 언니, 오빠 하며 서로를 친숙하게 대하고 있었다. 이분들 중에는 나는 애매한 나이에 속하다 보니 나는 어떤 호칭으로 불러 드려야 할지 참 난감했다. 이런 분위기에 있다 보니 내가 정말 내향인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 만나는 분들은 모두 점잖은 분이셨구나 하며 생각해 본다. 내가 조금은 다른 결의 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았고, 그러다 보니 익숙한 내가 속한 곳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게 된다. 뭐 굳이 모든 세계에 다 맞출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곳의 탐험은 익숙함을 깨트리고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주기도 하니깐.   

   

19km 완주 후 식당 분위기를 먼저 전해 보았다. 그러면 산행은 어땠는가. 19km 거리와 백두대간이라는 장소의 사전 조사를 미처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가는 이유가 있겠지. 산행하다 만난 한 참여자에게 물으니 이 대간은 100코스가 된다고 하고, 어떤 분은 60코스 정도 된다고 한다. 나중에 한 대장님이 이건 우리 산악회가 임의로 걷기 적당할 정도로 길을 잘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코스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니 4~5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산악인들에게는 한 번쯤 가고 싶은 코스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코스는 일반 명산과는 달라서 여러 고개 길을 넘듯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반면 일반 산은 그냥 한번 쭈욱 올라간 후 한번 쭈욱 내려온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길이 더 어렵다고도 하고, 어떤 분은 더 쉬울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길이가 일반산보다 더 길다.      



내리막과 오르막은 다르다     


암튼 아무 정보도 없이 산행을 시작한 나는 초반에는 ‘뭐 이 정도는 걸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걷다 보니, 오르막길이 수시로 나왔다. 그런데 어떤 오르막길은 경사도가 45도 정도로 기울기가 꽤 가팔랐고, 그 길이 또한 짧지 않았다. 한 오르막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가 이곳에 잘 온 것일까. 다음 대간은 도전 못하겠다. 산행은 내 체질이 아닌 거 같다. 끈기는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존감이 급하락 하며 내 끈기는 이 정도였구나. 아니 이것을 극복해야 다른 모든 것도 할 수 있어 등등 수많은 생각이 오르내렸다. 정말 가파른 곳에서는 눈물이 찔끔 날 거 같았다.      


요 며칠 고2 생활을 앞둔 아이가 공부가 안된다며 독서실에는 가 있으니 멍 때리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고1 때는 매 학기 성적이 조금씩은 오르기도 했고, 방학에도 독서실에 가 앉아 있는 아이가 대견해하며,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었는데,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녹록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이런 오르막을 수없이 만나겠지, 이런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겠지 하는 수많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심리적 영혼의 고통도 끔찍하지만, 육체적 고통은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고통이다 보니,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오른 길이기에 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도 없다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었다. 오직 앞으로만 직진해야 했다. 정말 난감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능선 하나하나를 정복해 갔다. 누가 이제 4분의 1 지점 정도 온 거 같다는 말에 기쁘기도 했다가, 아직 많이 남았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했다. 처음에는 내 앞뒤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 발걸음이 늦어지려고 하고 뒷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길을 비켜 주었다. 한 뒷분은 기다리겠다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계속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가 되었다.      


무리 중 있을 때는 편안함과 안전감이 있지만, 앞뒤 속도를 계속 비교하게 된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못 미치면 나는 정작 걸어갈 힘은 없으면서 계속 불안하다. 그러나 혼자가 되니 살짝 불안함은 있었지만, 자유함이 느껴졌다. 한동안 혼자 쭈욱 걸었다. 앞뒤로 정적했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길만 보였다. 그러나 길을 잃을 위험은 딱히 없어 보였다. 중간중간 가지에 걸려 있는 노랑, 빨강 리본이 안내자가 되어주었고, 내가 있는 지점을 알려주는 노란 표지판도 중간중간 보였다. 거기에는 구조대 번호도 나와 있었다. 나중에 한 대장님은 그 번호판을 계속 사진 찍었는데, 알려주시길, 혹시 산에서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이 번호로 전화하고, 거기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만 알려주면 바로 구조대가 온다는 것이었다. 안전장치들이 다 되어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되어요      


혼자 걸으니 자유함이 느껴졌다. 남들보다 느릴 수 있지만, 내 몸의 속도에 맞춰서 숨이 차면 잠깐 걸음을 멈췄다. 특히 오르막길에서는 여러 번 멈췄다. 그랬더니 조금 나았다. 나는 사실 말도 빠르고 걸음도 빠르고 모든 지 조금 빠르게 해치우는 편이다. 이런 성향이 내가 지금 하는 일, 익숙한 일에서는 적용할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일, 초보자로서 적응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똑같은 속도를 고집하면 지레 포기하거나 낭패를 볼 수 있다. 산행이 나에게 그랬다.     


오르막길에서도 빨리 걸으려는 나를 보고 뒤에서 걸어오시는 분이 “오르막에서는 천천히 걸어야 해요.”라고 말씀해 주신다. 한참을 걷다가 대장과 같은 분도 또 한 번 “여기서는 천천히 걸어야 해요.”라고 조언해 주신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너무 힘드니 정말 숨도 천천히 쉬면서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중간에 멈추는 시간이 조금은 적게 들었고 조금은 편안했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왜 나는 빨리 걸으려고 했을까. 왜 조급할까. 왜 산행해서도 평지를 걸을 때와 똑같이 걸으려고 했을까’하며 생각해 본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다른 사람 발걸음에 꼭 맞추지 않아도 돼.’ 

‘그래도 결국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도착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 같았다.     

      

겨울과 오르막

      

나중에는 한 분이 내가 계속 뒤처지는 것이 걸리셨는지 앞에서 나를 계속 기다려주셨다. 혼자가도 사실 정말 괜찮아서 “괜찮아요.”라고 계속 말씀드렸는데도, 본인도 괜찮다면서 계속 기다려주셨다. 나와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하시면서. 내가 조금 쉬어도 저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기도 일이 있어서라고 편안하게 말씀해 주셨다.      


어느 순간에는 무슨 일을 하냐며 물어오기도 했다. 자기는 택시 운전을 하는데 산악 구조대 활동도 오랜 기간 했다고 했다. 치악산은 200번은 오른 거 같다면서. 그러다가 2년 정도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셨단다. 이렇게 다시 걷는 것도 기적이라면서. 택시 일을 하지만, 산행할 때는 택시 일도 잠시 쉰다고 하신다.     


이번에 내가 스틱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몇몇 분이 지나가시면서 “스틱을 써야 무릎 안 망가져요”라고 말씀하신다. ‘내 무릎은 아직 튼튼해요’, ‘양손이 자유로운 것이 좋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초보티가 팍팍 났는지, “등산화를 신어야지.”. “스틱이 없네.”. “장갑 빌려 줄까요?”라고 한다. ‘장갑 두 개나 있어요.’, ‘덥고 답답해서 벗고 있었어요.’, ‘이거 등산화 맞아요.’, ‘신이 문제가 아니며, 스틱은 아직 왜 써야 하는지 모를 뿐이어요.’라는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중에 계속 기다려주셨던 분이 거의 도착지에 다다를 즈음엔 나에게 스틱 하나를 던져 주다시피 하셨다. 내가 계속 거절하니 하나라도 써 보라면서. 근데 쓰니 다르긴 했다. 수없이 오르막 내리막을 하다 보니 내 다리 상태가 맛이 갈 때로 갈 즈음, 스틱 하나는 의지할 할 구석이 되어주었다. 누가 좋다 해도 직접 써 봐야 안다고 하시면서 주신 스틱. 다음번에 산행을 다시 한다면 스틱 꼭 가져와야겠다.      


도착지에 거의 다다랐는지 빨간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집들이 등장하고, 옆에 여러 농사로 가꾸어놓은 풀과 나무들이 보였다. 이건 돼지감자고, 저건 포도고, 이건 고사리고. 고사리는 생명력이 강해서 베도 베도 수없이 자라나요 등등 동행인은 식물에 관한 지식을 알려 주셨다.      


겨울이라 모두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먹는 잎, 열매를 지탱해 주는 중심대를 처음 보았다. 겨울이 아니라면 먹을 만한 형태로 남아 있는 열매와 잎사귀에만 주목했을 것이다. 겨울이니 그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들만은 겨울을 꿋꿋이 견디고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열매도 잎사귀도 주어졌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겨울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다.      


추위와 차가운 바람을 수없이 견뎌야 하는 겨울, 평지와 내리막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오르막, 오르막에서 포기하지 않으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앞뒤 사람과 보조도 맞춰야 하겠지만,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도 필요하다. 인생길에는 힘들 때도 있지만 기다려주며 응원하는 사람도 만난다. 혼자 고고한 척하지 말고 그들의 환대에 마음을 열면 배울 점이 있다. 모든 것에서 배움을 얻는다. 하나의 산행을 마쳤다. 내일 다리 상태가 어찌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리, 산행을 통해서도 다시 인생을 배운다.      


아 그리고 산행 후 버스 앞 도로 길에서 주신 뜨끈한 어묵! 정말 감사해요.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이 작은 산행 하나를 마치기 위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서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다음 산행은 계속할 건가? 아직 고민 중이다. 알 배긴 다리에 고통이 가시기 전이기에.       


내가 가입한 산악회는 인원이 많아 금방 찬 한 대가 찬다. 그래서 대기자로 줄 서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매주 하기로 한 산행을 ‘한 달에 한 번이라고 도전해 보자!’라고 목표를 낮췄다. 그러다가 3월에 있는 산행에 대기자가 아닌 참여자로 어찌하다 보니 올라갔다. 그런데 나중에 한 대장이 “그건 31km 거리예요. 무박 48시간으로 13시간 걷는 코스예요.”라고 알려주신다. 여수에 가족 여행을 갔던 기억이 좋아서 신청했는데 난감하다. 3월에 산행 후기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그 산행은 없었던 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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