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함은 그것을 가진 자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자의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통장에 찍힌 숫자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풍요로워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수억 대의 자산을 가지고도 궁핍하게 사는 구두쇠의 삶이 그렇다. 이들은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명백한 부자이지만,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극심한 빈곤을 겪는다.
여기서 구두쇠라고 한다면, 굉장히 인색한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마땅히 베풀지 않고, 나누지 않고, 강박적으로 돈을 아끼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을 구두쇠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돈은 흐를 때 가치를 발휘하는 에너지이다. 그러나 구두쇠는 이 돈이라는 에너지를 가두어 두는 데 모든 생을 바친다. 그들에게 돈은 사용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결핍의 공포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패인 셈이다. 결국 천만금을 손에 쥐고도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한다면, 그 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돈의 본질은 '교환'에서 발생되는 가치이다. 우리는 돈을 통해 경험, 시간, 그리고 안락함을 얻는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한다. 돈은 결국 가치를 교환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돈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순간, 인간은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구두쇠가 천만금을 가지고도 궁핍하게 사는 이유는 돈을 잘 쓰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돈을 강박적으로 아끼는 심리는 언제든지 가난해질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이 만들어낸 감옥이다. 돈을 모으는 행위 자체에서만 집착하고, 돈을 쓰는 행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면 삶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막연히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조금 더'에는 끝이 없다. 우리는 미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오늘을 너무 쉽게 희생한다. 무작정 욕구를 참으며 30년 뒤의 노후를 걱정한다. 물론 저축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저축이 현재의 나를 학대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자기 착취에 불과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핍 지향적 사고'라고 부른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구두쇠의 마음속에는 늘 '모자라다'는 신호가 울리는 것이다. 이 신호는 뇌의 전두엽을 마비시키고 오로지 생존 본능만을 자극한다. 결국 천만금이라는 숫자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을지도 모른다는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많아질수록 더 가난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가 더 이상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과 맥을 같이 하는 연구로 볼 수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경제 성장이 반드시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흥미로운 현상을 의미한다.
소득이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돈은 더 이상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복잡하고 소모적인 삶의 원인이 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벽이 되기도 한다.
또한,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지독한 구두쇠'들은 돈을 쓸 때마다 뇌의 통증 센터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실제로 돈을 쓰면,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느끼는 것이다. 이들에게 소비는 곧 마음의 상처이자,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인 셈이다.
이처럼 과학적 근거들은 구두쇠로 살아가다 보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돈의 액수보다 '돈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결정짓는다!
나 역시 한때는 돈의 노예였다. 몇 년 전 나는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위안이었다. 돈이 아까워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그렇게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내 통장에는 꽤 큰 금액이 모였다. 빚도 청산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나는 균형을 잃었고,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무작정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났다. 돈을 어느 정도 써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돈을 아무 목적 없이 아끼는 행위는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했다. 물론 마구잡이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병적으로 돈을 아껴서는 그 무엇도 없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근검절약을 최고의 미덕으로 교육해 왔다. "아껴야 잘 산다"라는 말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기서 '잘 산다'는 의미를 많이들 오해한다. 잘 산다는 것은 풍성하게 삶을 기쁘게 누린다는 뜻이지, 머리 위에 돈을 쌓아두고, 신처럼 모시라는 뜻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절약은 오히려 삶의 균형을 깨고, 우리의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반문한다. "나중에 노후는 어떡하죠? 큰일이 생기면요?"라고 말이다. 물론 미래를 대비해서 돈을 잘 모아야 한다. 대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 일어날지 모를 불행'을 위해 '확실하게 존재하는 오늘의 행복'을 버리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
명심하자. 진정한 의미의 절약은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이지, 궁핍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 곁에 나지 않는 구두쇠에서 벗어나 진정한 풍요를 누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다음의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기쁨의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라. 저축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출 목표'이다. 한 달 수입의 5~10%는 오로지 나를 즐겁게 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데만 사용하겠다고 결심하라. 이 돈은 남겨서는 안 되는 돈이다. 반드시 써야 하는 '행복 비용'으로 정의하라.
둘째, 가격표 대신 가치를 먼저 보는 연습을 하라. 물건을 살 때 "이게 얼마인가?"를 먼저 묻지 말고,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먼저 질문하라. 1만 원짜리 싸구려 물건 세 개보다, 나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는 3만 원짜리 물건 하나가 당신을 더 부자로 만든다.
셋째,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하라.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는 나 자신의 성장에 돈을 쓰는 것이다. 책, 강의, 교육비, 휴식을 위한 소비는 투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또한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기 위한 소비는 비용보다는 투자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적 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란 단순한 통장의 액수가 아니라, 내가 누리는 풍요로움으로 결정된다. 천만금을 금고에 넣어두고 굶고 산다면, 부유하다고 볼 수 없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이들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간다. 돈이 우리의 명령을 듣게 해야지, 돈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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