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독립해서 살 수 있는지 혹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는 방식이 맞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결혼을 했다. 당시 32살에 결혼 한 나도 늦은 나이였다. 나에게는 결혼을 하지 않는 친구 두 명이 더 있었다. '왜 결혼하지 않는지,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눈을 낮춰야 한다'라는 등의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 충고가 상처가 되는 책임 없는 말들. 30대 중반이 넘어가자 친구의 주위 사람들은 두 친구들의 '결함'을 찾고 있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 무슨 결점이 있어서 결혼을 '못'하는 것 같은 수많은 상처의 말들. 졸업하면 직장에 다니다가 적당히 나이가 차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을 사람들은 '안정적'이라 부른다. 드라마나 보험회사 광고에는 정상가족의 판타지들이 우리를 관습과 규범으로 묶어놓는다.
이 책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더 큰 메시지가 있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 사회문화적 관습과 규범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의 표지만을 보았을 때는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 두 사람이 동성애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 작가는 마음이 잘 맞는 동거인이자 동성친구이다.
김하나 작가를 알게 되면서 세바시강연과 말로만 듣던 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도 찾아보게 되었다. 삶을 재미있게 즐길 줄 알고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떨 땐 낄낄거리기도 했다. 공동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처음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하고 서로 너무 다른 생활습관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한다.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따뜻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결혼 생활에 대한 하루키의 말처럼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처럼 말이다.
황선우와 김하나 작가 각각 차례로 독백 형태로 되어있어서 처음에는 누가 누구에 대해서 말하는 읽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82~83쪽)
용기를 내어서 동성친구 둘이 같이 사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인 시선에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결혼 적령기'라는 것을 넘긴 여성으로써 얼마나 쓸데없는 관심과 충고를 들었을까. 그녀들은 그 깎아내림을 당해도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을 안 해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부분이 참 좋았다. 자신감 있어 보였다.
'자취와 독신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의 생활을 '한시적'으로 여기느냐 '반영구적'인 것으로 여기느냐인듯한다. (87쪽) '황선우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아내'였다. 마당발이라 늘 온갖 사람들과 약속이 이어지고 웬만한 음악공연을 장르 불문 다 다니고 남는 시간에 한강변을 뛰는 이 여자에게는 말이다.' (105쪽)
'우리의 동거는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판이 충돌하는 것 같은 일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비슷함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지만 서로의 다름을 깨달으며 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끝없이 들고 나는 파도처럼 이어질 "생활습관"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p.112)
>>이들은 40년 이상 독신으로 살았던 각각의 원자들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서로 모여서 분자가 된다.. 황선우 작가는 맥시멀 리스트, 김하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비슷한 취향을 발견한다. 부산에서 자란 것, 음악적 취향, 책등 취미생활 등. 하지만 너무 다른 생활 습관에 대해서 많이 싸운다. 마지막에는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평가 내리지 않는 지혜로운 공존의 방법을 선택을 한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느덧 부부와 다름이 없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 - 정현종>
작가가 말한 것처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내 가족이다. 아프면 따뜻하게 보살펴 줄 수도 있는 사람. 비록 가족결합 상품을 가입하지 못해도 법적상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 라도 말이다. 1인 가구가 약 30%라고 한다. 앞으로 더 늘을 수밖에 없다. 비혼족, 딩크족, 1인 가구 시대, 너무나 다양한 가족형태가 새롭게 그리고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의 형식에 들어맞지 않는 가구의 형태가 늘어나겠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생각하거나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큰 공감이 갈 것 같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고 한다.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따뜻한 관계 아닐까. 법과 제도가 더 튼튼하게 그들을 받쳐주었으면 하고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