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텔레비전을 찾지 않는 아이

어쩌면 노력하지 않았던 걸 수도

by 서이담
gaspar-uhas-SP24kW8mbII-unsplash.jpg Photo by Gaspar Uhas on Unsplash
엄마아아아~~텔레비뎐 탐팁분만 바두 돼요?


고백하건대 몇 번의 주말 정도는 아이에게 3시간 이상의 텔레비전 시청을 허가했다. 가족영화라는 이유로,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돌보기엔 우리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허락한다. 그리고 이걸 몇 번 체감한 아이는 이렇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우리에게 텔레비전 시청을 또 허락받는다. 부끄럽지만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우리가 케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눈을 꾹 감았던 적도 많다.


엄마가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셔서 가끔씩 그곳에 내려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번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앞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부쩍 빠져버린 곤충을 관찰하고 또 잡아 보기도 하면서 아이는 무척 신나 했다. 단층집이어서 신나게 뛰어도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릴 사람도 없었다. 아이는 신나서 두두 다다 뛰어댔고, 우리는 익숙해진 조바심에서 벗어나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이는 이런 곳에서 키워야지 싶다. 어떻게 보면 맞벌이 부부로서는 환상에 가까운 거주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울에 살아야 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참 소중한 공간이다.


문득 아이가 한 번도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하나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카봇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콩순이도, 또봇도, 자동차도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강아지와 고양이, 온갖 잡초와 풀들, 풍뎅이와 나비, 나방, 이름 모를 벌레 등 소소한 일들로 채워진 일상이었는데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일상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져서일까?


인생이 텔레비전보다 재미있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대부분의 일상을 회사와 집, 그리고 SNS와 유튜브로 채워 넣는 사람이다. 아이폰이 가끔 내게 주간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에서 내가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를 평균 얼마 정도 이용한다는 걸 알려줄 때 정말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 집에 가면 내가 놓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내 삶을 살게 된다. 남의 삶과 누군가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쇼에 내 시간을 쓸 생각이 전혀 나질 않는다. 주중에는 그게 내 삶의 낙이었는데도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시골집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시간과 공을 들여 다른 환경에 놓여있었고, 거기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고, 더 많이 대화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비일상'적인 노력들이 모여 텔레비전보다 재미있는 인생을 만든 게 아닐까.


아... 캠핑용품을 슬슬 사야 하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장 이상한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