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라고 쓰고 효라고 읽는다

부모에게 주도권을 잠깐 넘겨주는 일

by 서이담
211125.jpg 그림: 서이담
김치 사 먹으면 안 돼요?


나는 요 몇 달째 김치를 사 먹고 있다. 지난해 담근 김치가 끝물이어서 맛도 변했고, 집에 김치 냉장고도 없어서 가뜩이나 쉽게 변하는 김치가 더 잘 쉬기 때문이다. 조금 비싸지만 평이 좋은 김치를 사 먹어봤는데 맛이 좋아서 몇 달째 계속 시켜먹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정말 대량의 김치를 담그지 않는 이상 사 먹는 게 싸다. 엄마는 김장이 힘들어 김치를 사 먹고 싶어 하시면서도 할머니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김장을 해야 할 것 한다고 하신다.


엄마~올해도 김장하는 거지?


올 해도 여지없이 김장 시즌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엄마가 직접 텃밭에 무와 갓을 심으셔서 그걸 뽑으러 김장 하루 전 날 미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김장 후에 몸이 아팠던 기억이 있어 하루 뒤에도 연차를 붙여서 써 두었다. 나름 단단히 각오를 한 것이다.


김장 날 할머니를 뵈니 그날따라 기운이 넘치신다. 재료 사는 것부터 다듬고 버무리는 모든 과정에서 할머니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 표정이 좋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몇 안 되는 행사기에 더 신이 나신 것 같다. 할머니는 말로는 '파는 김치가 깨끗한지 못 미더워서'라고 하시지만 나는 느꼈다. 이 행사는 할머니가 주인공인 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다 커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에게 부모가 주도권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자식들이 그 주도권을 내어 드린다. 나는 그 한 예로 김장이 이뤄지는 거라는 생각이다. 다 큰 자식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일, 부모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루 정도를 인생에서 뚝 떼어 드리는 일 말이다. 그래서 김장이라고 쓰고 효라고 읽는 게 맞다 싶다.


흠.. 그런데 효라고 정의한 이상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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