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중요한 것에 집중할 때
승진 누락 후 피폐해진 나를 추스르려 처음으로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아침마다 성경말씀도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치이고 상처 받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나만 왜 이런 취급을 받을까?’
이런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고, 그 연민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출근했다.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바람에 회사에 바로 들어가기 싫어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사람의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고 해요. 당신은 지금 아마 겨울을 살고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언제나 겨울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 봐요!’
남편의 문자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문자를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겨울나무의 앙상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나뭇잎 하나 없이, 언제 푸르렀나 싶을 정도로 말라버린 무채색의 겨울나무가. 한 때는 연 초록빛으로 빛났고 또 찬란한 금빛으로 발그레했던 나뭇잎을 나무는 바스러지는 잿빛으로 만들어 떨어뜨렸다. 악조건 속에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생존에 오롯이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만약 한겨울에 나무가 잎을 파랗게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분산시킨다면 그 나무는 겨울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쓸모 없어진 잎을 다 내려놓고 벌거벗은 채로 겨울을 난다.
어쩌면 내 인생의 겨울인 지금 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가 그토록 움켜쥐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나의 평판이나 물질적 욕심들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이 되지 않았을 때 내가 가장 슬펐던 건 동기들 중 유일하게 낙오했다는 이유로 내 평판이 크게 안 좋아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너무 그것을 처절하게 붙들고 있었다. 사실 남들은 내 인생에 크게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남들의 평가나 시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그냥 열어놓기만 했던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잎을 내려놓는다고 나무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잎과 꽃을 내려놓았기에 나무는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을 수 있다. 봄이 오면 또 찬란한 잎들이 나무를 뒤덮어 아름다운 한 때가 올 것이다.
그 봄이 올 때까지 지금은 잠잠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매일 더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Photo by María Álvares de Carvalh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