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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열등감

그도 알고 그녀도 알았지만 나만 몰랐던 성장의 비밀

by 서이담

오랜 친구 둘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닮은 구석이 많은 친구들이라고 믿었다. 까 보니 아니었다.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나와 다른 점이 무척 많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 다른 점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10년 지기 친구들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친구 중 하나는 정말 빨랐다. 나는 다음에는 뭘 하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면, 이 친구는 벌써 다다음 목적지까지 고민을 해서 동선을 짜고 있었다. 여행 초반에는 나와 친구 생각이 살짝 다른 경우도 있었다. 나는 돈을 아끼면서 뭔가를 덜 하자고 주장하는 타입이라면 이 친구는 넉넉히 쓰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든 인생이든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게 더 컸다. 돈을 아끼려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 나는 결국 친구를 인정하게 되었다. 친구의 생각은 늘 나보다 빨랐고, 여행 막바지에는 내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 ‘친구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하는 게 정답’ 임을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이 친구 덕분에 여행이 편안했고 효율적일 수 있었다.


다른 친구는 늘 감탄했다. 머리가 빠른 친구를 먼저 알아본 것도 이 친구였다. 여행 초반부터 이 친구의 말이 곧 진리고 길이라며 빠른 머리를 예찬했다. 그런데 친구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나만 너무 느린 것 같아. “


“나도 더 빨라져야겠다.”


이런 말을 되뇌고 우리에게도 여러 번 말하더니 뭔가 빠르게 행동하고 먼저 뭔가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사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신속한 친구에게 계획 짜는 걸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각자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다른 친구를 살펴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분명 처음에는 여러 가지 서툰 것들이 있었지만 곧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친구가 우리 사이에서는 꽤나 잘 나가는 친구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따로 시험을 준비하고, 나중에는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 시험에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느꼈다. 자신의 부족함을 빠르게 인정하고, 그걸 따라잡으려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이 친구의 진정한 장점이라는 걸.


짧은 여행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우연히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방탄소년단 RM이 나온 프로그램 클립 영상을 보게 되었다. RM이 나와서가 아니라 썸네일의 ‘열등감’이라는 키워드가 나를 끌어당겼다. RM도 열등감이 있다는 건가? 하면서 유튜브 클립을 클릭했다. RM은 그 특유의 동굴 목소리로 이런 말들을 했다.


"저는 에미넴, 나스, 칸예 웨스트, 에픽하이 타블로 형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제가 그 사람들보다 기술적으로 랩을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굳이 솔로 앨범을 내서 소음 주파수 덩어리를 굳이 음악 플랫폼 사이트에 올려야 하나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시를 하고 용감하게 직업인으로, 프로로서 평가받으려고 하는 건 결국 다른 가수와 다르게 제가 잘하는, 그들이 하지 못하는 저만의 모서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RM도 열등감을 느꼈다니.. 신기했다. 친구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사람도 결국 자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방식은 달랐다. 친구는 다른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점점 속력을 붙이는 방식으로, RM은 자신만의 독특한 모서리를 찾는 방식을 택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열등감이 성장의 불씨가 되었다는 점에서 둘은 감정을 좋게 이용한 것이다. 불편하고 기분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이 감정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 ‘이용’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와 나만 몰랐나보다.”


오늘도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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