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삶을 위하여
연말을 맞아 회사에서 부서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주었다기보다는 강제로 보낸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난 휴가가 필요하긴 했나 보다. 휴가를 시작하는 화요일 저녁, 회사를 나서는데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일단 푹 쉬자.’
휴가의 첫날은 그동안의 피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까무러치듯 긴 낮잠을 잤다. 점심에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가 저녁때가 되어 배가 고프다기에 주섬주섬 밥을 챙겨 먹였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지난 주말 치과 의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하는 듯 하나 부모님을 향해 여러 차례 당부하셨던 이를 꼼꼼하게 닦는 작업을 마치고는 아이와 벌러덩 누워 또 밤잠을 잤다.
다음날이다. 길게 잠을 잔 덕분인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말개 보인다.
‘이제 조금 휴가를 즐겨볼까?’
즐겨보기로 마음은 먹었다만 상황은 녹록지가 않다. 매일 아이를 나 대신 챙겨주시던 어머님도 휴가차 내려가셨기 때문이다. 아이를 깨우기 전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빵을 오븐에 넣었다. 빵만 먹이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싶어 과하다 싶지만 계란과 베이컨을 프라이팬에 올린다. 탄수화물이랑 단백질은 채웠지만 식이섬유는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냉장고에 있던 키위도 꺼내 조금 썰어 놓았다.
이제는 아이를 깨울 차례, 시어머님이 목요일에는 아이가 태권도를 가니 옷을 갈아입기 좋게 얇은 반팔을 입힌 뒤 두꺼운 웃옷을 입히라고 말씀하셨다. 조언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오늘의 코디를 해본다. 팬티를 깜빡해서 다시 방에 갔다 온다. 그리고 아이를 깨운다.
“재민아~학교 가야지.”
아이가 완전히 깨어 스스로 옷을 입기까지 버퍼링이 걸린다. 그 시간에는 옷을 입는 걸 조금 도와주고는 식탁 앞에 앉은 아이에게 아침을 내어준다. 아침을 깨작깨작 먹은 아이에게 키위 하나만 먹어라 잔소리를 하고, 약을 먹이고, 이를 닦아주고, 두꺼운 점퍼와 장갑을 끼워 주고는 스쿨버스로 간다. 가정이 있는 내게 쉬는 날이 마냥 쉬는 날은 아니다. 자잘한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을 해보니 그렇다.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집안일도 끝나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나는 계속해서 어떤 일을 받게 될 것이고, 가정을 그만 두지(?) 않는 한 나는 계속해서 엄마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가정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어떤 형태로든 내게 그리 행복한 모습은 아닐 것 같다.
그래. 일도, 삶도 끝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게 요즘 내 화두였다.
나는 일을 빨리 처리해 내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사람이다. 후딱 해치워버리는 게 편하다. 반대로 말하면 일을 질질 끌고 있거나 밀린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불안하다. 그 불안함이 빨리 해버리는 것의 동력이다.
불안함 때문에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첫 번째, 빨리 하면 구멍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그 구멍을 채우는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되돌아보면 서두르지 않아도 그만큼의 시간이 들었을 것 같다. 두 번째, 조급함이 앞서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진다. 집중해서 차근차근 일을 정교하게 다듬어간다기보다는 주어진 과제만 처리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내 실력이 크게 향상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빨리 하지 않아도,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일상은 잘 돌아간다. 특히나 남편이나 아이에게 좀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간접, 직접적으로 짜증 섞인 말을 내뱉고 나서는 언제나 반드시 후회한다.
‘정말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아닌 걸 알기 때문에 후회했겠지.
2025년, 조금은 천천히 살아보기로 한다. 속도를 늦추고 순간을 음미해보려 한다. 1년만 살 것이 아니므로, 삶은 계속되고 일도 계속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