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이 순수해서 그래

epilogue 끝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by 서이담

원래 미적대는 성격이 아닌데 이 글을 쓰기까지 나는 확실히 미적대었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달까? 그런데 또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아... 이제 끝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이야기가 빙빙 돌고는 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마음을 좀 굳게 먹고 에필로그를 써보기로 한다.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약간은 들뜬 모습이셨다. 처음에는 손녀가 자신을 인터뷰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쁘기도 하셨다. 그러다 어떤 날은 본인의 삶이 그리 화려하지도 굴곡지지도 않았다는 것 때문에 글이 재밌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하셨다. 할머니 기준에서 내 글이 잘 된다는 건 곧 책을 내는 일이었는데 이 일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출판사 몇 군데에 원고를 보내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무려 7만이 넘는 분들이 내 글을 보아주셨다. 그것도 내가 가장 애정이 갔던 일화였다. 할머니께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드렸다.


나: 할머니!!


할머니: 으응~무슨 일이냐.


나: 할머니, 저번에 왜 엄마가 대학에 합격해서 아파트에 떡 돌린 이야기 해주셨잖아요.


할머니: 응 그랬지.


나: 그 이야기가 5만이 넘는 사람들이 봤대요!!


당시 내게 브런치에서 계속 알림이 울려 엄청 흥분한 나와 달리 할머니는 덤덤한 반응이셨다. 나는 살짝 실망했다. 전화를 끊고 한두 시간쯤 지났는데 할머니께 다시 전화가 왔다.


할머니: 이담아~


나: 네 할머니.


할머니: 아까 너가 전화했잖여. 내가 화장실에 있다가 나와서 급히 전화를 받느라 제대로 답을 못했어.


나: 아 그랬구나.


할머니: 우리 손녀 장허네. 아까 내가 급하게 전화를 받느라 이야기를 많이 못해서 네가 서운해할까 봐 다시 전화했어. 아니 5만이 넘는 사람이 봤다는 건 어떻게 아는 거냐?


나: 할머니 이게 인터넷에 쓰는 거라, 거기서 몇 명이 내 글을 봤는지 알려줘요.


할머니: 그랬구나.


나: 할머니랑 인터뷰하면서 저도 가장 애정이 가는 글이었는데 그 글이 이렇게 되니까 신기해요.


할머니: 그 글이 순수해서 그래.


순수해서 그렇다는 할머니의 말이 참 와 닿았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순수'라는 단어로 정리될 줄이야.

할머니께 내 글 링크를 드렸었는데 링크를 눌러보는 게 어려우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캡처해서 다시 문자로 보내드렸다. 곧 이렇게 답장이 왔다.


할머니의 문자.jpg



이 일이 있고 난 후 할머니께 종종 연락이 왔다.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 이담아~


나: 네 할머니


할머니: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 하얀 종이를 받았어. 제목인지 뭔지 15자 정도의 글을 쓰라고 주는데, 그것까지 일러줬는데, 일어나서 그걸 얼른 적어야 하는데 꾸물꾸물하다가 깼는데 도통 생각이 안 나.


대박의 징조인가. 제발..!!


할머니: 네가 글을 쓴다기에 나도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연필을 쥐면 적어지지가 않여.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작은 꽃들부터 큰 나무까지 활짝 피어오르는 봄의 경치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걸 글로 옮겨 적지를 못혀.


웃음이 났다. 내가 글을 써서 할머니가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하시는 걸까? 아니면 할머니가 늘 글을 쓰고 싶으셨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어쨌든 할머니의 삶에 약간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다행이다.




이 글들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와의 가장 첫 번째 장면을 담아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때였나. 내가 아직 작은 소녀였을 때였다.


더운 듯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이 드는 여름밤이었다. 그 날 할머니와 내가 대로변 옆 인도를 찬찬히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고 할머니에게 이게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게 아카시아 냄새라고 알려주셨다.


코 끝에 찡하게 와 닿았던 아카시아 향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날의 향기처럼 할머니와의 시간들이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 할머니와 나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향기로운 그 여름밤처럼!



Photo by nokcha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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