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순한 뇨자
요즘 도서관이 코로나로 인해 휴관이라 주간예약대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데 어제 내가 당번이라 도서관 현관 앞에서 3시부터 8시까지 예약 도서를 나누어주는 일을 했다. 현관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추운 날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자리에 앉아보니 눈앞에 너무나 이쁜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거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서 코 박고 있었으면 보지 못했을 눈을 이렇게 실컷 보는구나 싶어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한참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하. 지. 만. 행복은 잠시뿐!!
눈이 너무 많이 쌓이기 시작하는 거다. 일부 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나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현관 쪽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대출 처리를 하면서 눈 치우러 왔다 갔다 하는 직원들에게 “너무 고생이 많으시네요”, “눈이 왜 이렇게 많이 올까요” 하면서 접대성 멘트를 마구 날렸다. 또한 바로 옆에 내가 2년 동안 몸담았던 어린이 자료실이 있어 인계인수차원에서 이런저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말에도 가속도의 법칙이 있는 것일까? 정신줄이 서서히 놓이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떠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8시에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를뻔했다. 대출 처리하면서 그 밖에 여러 상황으로 말을 많이 해서 에너지가 소진되어 힘들었다. 남들이 보면 밝은 성격에 잘 웃어서 마냥 즐거운 것 같이 보이지만 썰레발(?)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었다. 나의 행동들을 머리속에서 계속 리플레이 하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가서 맥주 한 캔 까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는 길에 작년까지 한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친한 직원에게 톡을 했다. 내가 하소연을 하니 ‘아’ 말만 해도 ‘어’까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공감해 주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 사람만 마음을 알아줘도 극단적인 선택은 안 한다더니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한사람 때문에 얼어있던 마음이 눈 녹 듯 녹았다.
갑자기 드라마 “또 오해영”속의 주인공 오해영이 떠올랐다. 푼수 같은 캐릭터로 많이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무엇보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 아무리 망신스러워도 다음날 꿋꿋이 출근하는 포스, 많이 울지만 또 그많큼 많이 웃는....
내가 드라마속 오해영처럼 상큼하진 않지만, 생긴 대로 살고 많이 웃고 많이 울기로 결심했다. 정신없는 나의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한 다른 사람은 나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어느 책에서 내가 힘들 때같이 있어 주지 않을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도 떠올렸다. 집에 가서 자면서 그날 있었던 일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리셋하기로 했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단순한 뇨자인가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