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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Sep 11. 2020

월급이 카드포인트로만 나온다면?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리뷰, 줄거리 있으니 주의!

https://youtu.be/IcugI_6PDL0


당신의 월급이 돈이 아닌 모두 카드 포인트로만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 한 단편 소설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한 직장인이 나옵니다. 바로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고 이에 담겨있는 의미 등을 생각해보는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줄거리     


우동마켓(우리동네중고마켓)이라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안나는 아침부터 대표인 데이빗에게 한 소리를 듣습니다. 중고마켓에 [거북이알]이라는 이름으로 물품을 끊임없이 올리는 한 유저 때문입니다. 데이빗은 거북이알이 어뷰저가 아닐까 의심도 하고, 올라오는 물건들이 장물이 아닐까, 게다가 파충류를 싫어하기에 프로필 사진을 거북이로 올린 거북이알이 더 싫다고 덧붙입니다. 이에 제재를 줘야하지 않을까 안나에게 이야기하지만 이에 안나는 오히려 거북이알이 충성고객이면 고객이지 어뷰저는 절대 아니며 거래성사율 100%에 거래 후기도 좋다고 하며 그 유저 이후로 우동마켓의 지표가 상승했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10만원을 안나에게 주면서 한번 중고거래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거북이 사진을 좀 바꿔보라는 말을 해보라고 권유도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거북이알을 만난 안나는 거북이알이 유비카드를 다니는 회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물품들을 올리게 되었는지를 묻는 안나에게 거북이알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녀는 유비카드의 공연기획팀이었으며 클래식 매니아인 조운범 회장의 지시에 루보프 스미르노바의 내한공연을 성공시킨 사람이며 승진을 약속받았습니다. 거북이알은 내한공연 사실을 평소 절차대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인 조운범 회장은 루보프 스미르노바의 내한공연을 본인 인스타를 통해 먼저 알리고 싶어 했었습니다. 때문에 먼저 공지를 해버린 거북이알의 일처리에 격노했습니다. 이에 좌천은 아니었으나 혜택기획팀으로 부서발령이 났고 승진은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서 이전 후 갑자기 회장이 거북이알의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참석합니다. 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래서 우리 회사 카드를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자 <포인트를 두 배로 줍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포인트가 그렇게 좋은가?>를 물은 회장에게 좋다고 대답한 거북이알은 그 후로 회장의 지시로 모든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거북이알은 포인트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거나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사는 등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알은 직원 아이디로 갖가지 물품들을 싸게 사고, 이를 정가보다 낮춰서 팔면서 현금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수단이 된  플랫폼이 우동마켓이었던 것입니다.          

월급이 카드포인트로만 나오게 된 거북이알


2. 반년 정도 회자되는 사건  


거북이알은 이 일이 사내에서 반년 정도 회자되는 사건이며, 이보다 더한 일도 많다고 말합니다. 어이없는 일 같지만 사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별의 별 사람,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법 한 일들은 사실은 현실을 모티프로 하고 있으니깐요.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사건과 일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라고 덧붙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이처럼 이상한 일들과, 이상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자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이런 이상한 일들은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와 이유 있는 항변을 멈춰버리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안나의 회사생활


안나도 직장생활 중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회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서 있는 상태에서, 짧게 업무에 대해 10분정도 이야기하는 스크럼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지만 그 스크럼 이후에 대표인 데이빗이 20분 동안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또 영어 이름을 도입해 수평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하려 하지만 존칭표현을 쓰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또 나이적으로는 막내이지만 대표가 공을 들여 데려온 천재개발자 ‘케빈’은 코드가 풀리지 않거나 버그가 잘 잡히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며 그 히스테리의 피해를 실질적인 막내인 안나가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나는 거북이알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거북이알에게서 물품 하나를 더 구입합니다. 케빈이 좋아하는 레고(스타워즈 다스베이더 트랜스포매이션)를 구입해, 케빈에게 건내주며 자기가 짠 코드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고 버그는 버그일 뿐이니 그 것으로 자신을 갉아먹지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대표의 본명인 ‘대식이’를 언급하며 둘은 웃습니다.


거북이알도, 안나도 회사생활에서 오는 어려움과 이해 못 할 일, 이해 못 할 사람들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이런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와 기쁨을 찾아나갑니다. 회사에서 운적이 있냐는 거북이알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케빈의 한숨 때문에 잠깐 울어 본적이 있는 안나는 케빈에게 레고를 건내며 화해의 손길을 건넵니다. 상사를 살짝 뒷담하며 웃음으로 매듭 짓는 케빈과 안나의 사이는 이후에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를 기대하게 합니다.       



4. 일의 기쁨과 슬픔     


거북이알과 안나는 판교 주차장 쪽의 육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아니라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있는 육교를 보며 이것이 과연 육교일까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거북이알은 <그냥 조형물일 수도 있어요. 법으로 정해두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만든 것 같은 성의 없는 조형물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으니까>라고 말합니다. 


거북이알은 월급을 포인트로 받았을 때 그 모멸감을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라고 인정하며 이겨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정해놓은 것들, 시스템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이 해야 할 일들이 생깁니다. 이 육교는 본래의 기능을 하진 못하고 있지만 법으로 정해둔 시스템 안에서는 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판교의 육교처럼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의미하고 허무하게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많은 직장인들은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안나가 보여준 월급의 플렉스나, 동료에게 화해의 손길을 뻗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힘든 사회생활의 소소한 기쁨, 그리고 앞으로도 볼 사이기에 잘 맞진 않지만 동료와 잘 지내려는 모습 등은 직장인이라면 공감과 위로를 받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5. 마무리 TMI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집의 두 번째 소설입니다. 장류진 작가가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게 한, 등단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집의 다른 소설들도 여러 가지로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판교의 육교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육교에 올라가면 역시 소설에 등장하는 NC소프트 회사가 아주 잘 보입니다. 이러한 디테일, 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의 요소들 덕에 장류진 작가를 극사실주의 작가로도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육교. 실제로 육교는 아니고 조형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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