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라톤에 도전한 날

때로는 아주 엉뚱한 도전

by 부크럼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 지난 10월 3일 월요일, 황금 같은 공휴일에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봉은사역으로 향했다. 비 예보에 마라톤이 취소되진 않을까, 사람들이 오긴 오는 걸까 반신반의하며 현장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풍경이 보였다. 짧은 스포츠웨어를 입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라톤은 처음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젠가부터 러닝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평발이 콤플렉스였던 데다가, 내가 뛰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달리는 폼이 진짜 웃기다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운동은 좋아했지만 달리기는 내 분야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엉뚱하고 과감하게도 10km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는 말 그대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였다. 꾸준한 웨이트로 체력은 다져 놓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완주는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전, 유니폼 위에 우비를 입었다. 들고 온 짐과 우산은 보관소에 맡겼다. 속눈썹에 자꾸 빗방울이 떨어져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은 동그랗게 원 모양으로 서서 다 함께 몸을 풀었고,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낀 채로 빠르게 제자리 뛰기를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온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나도 마라톤에 동행한 애인과 파워에이드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부스에선 지글거리며 음식을 만들고,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목소리가 워낙 경쾌하다 보니 마치 거대한 축제에 온 기분이기도 했다.



풀 코스, 하프 코스가 출발하고 마침내 10km 도전자들이 거대한 축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출발했다. 나도 수많은 사람에 섞여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꺾어지는 길목마다 안내 요원이 손을 흔들며 파이팅! 힘내세요! 라고 외쳐 주었다.


잠실 강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고 20분이 지났을까? 점점 배가 뭉치고 쿡쿡 아프기 시작했다. 몸은 이렇게 솔직하구나, 생각했다. 참다못해 배가 아프다고 말했는데 애인은 이때 조금만 더 견디고 뛰어보면 적응이 될 거라고 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배에 좀 더 힘을 주어 뛰었다. 첫 번째 음수대 구간을 지나고 나자 여기저기서 ‘힘들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인터벌로 빠르게 걷다가 뛰길 반복했다. 한동안은 러너스 하이가 온 듯 머리가 가뿐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반환점을 돌고 나니 힘에 부쳤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애인과 쉬엄쉬엄 걷기도 하고, 한강 두루미를 구경하기도 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란히 비를 맞으며 동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달렸으나, 나중에는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달렸다. 달리는 건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가 어우러져 달리는 분위기, 그 에너지였다.



마지막에는 애인과 손을 잡고 뛰었다. 우리는 결승선에 나란히 골인하며 같은 기록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그쯤에는 꽤 사그라들었다. 하얀 비닐봉지에 든 간식과 경품, 그리고 메달을 받아드니 비로소 인생의 첫 마라톤 도전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먹는 삼립 정통크림빵은 달달했다. 보람찬 맛이었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절차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도전부터 도전 종료까지의 과정에서 실패할 확률도 있고, 결과물이 엉성해서 보람이 없을 수도 있고, 도전 종료까지의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하는 도전들도 허다하다. 그런데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대로 10km만 뛰어서 들어오면 증명서와 메달도 받을 수 있으니 가볍게 시작해도 몇 시간 안에 만족스러운 성취감과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도전이었다.


때로는 아주 엉뚱한 도전을 해 보는 건 어떨까. 달리기엔 젬병인 내가 마라톤에 도전한 것처럼. (한 시간 넘게 내 뒤에서 내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애인은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한다. 달리는 폼이 웃긴 이유는 마구 나풀거리는 다리와 상반되게, 흔들림 없이 꼿꼿한 상체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에 선뜻 도전해 보면 세상을 감각하는 시야가 좀 더 넓어지게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달에도 아주 엉뚱한 도전을 해 보려고 한다. 아직은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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