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디지털 기술은 일상의 사소한 노동을 대폭 줄여주었다. 물건은 쇼핑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하면 되고, 음악을 듣기 위해 MP3 플레이어를 따로 휴대할 필요도 없어졌다. 카카오톡 등 실시간 채팅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먼 곳에 사는 친구나 친지와의 소통이 편리해졌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터치할 필요도 없이 부르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서비스도 많다. 교류는 쉽게, 볼일은 빠르고 간편하게. 디지털 기술 발전은 바쁜 현대인에게 넉넉한 시간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견되었다. 사람 손으로 하던 많은 일을 이제는 앱이 대신해주고 있으니 단순하게 계산하면 우리는 그만큼 많은 여가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페이스북을 필두로 이런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할 때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시간과 주의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도록 만들까?'를 주로 고려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포스트를 보고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서 약간의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뇌는 의사소통을 오직 오프라인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던 시기에 진화했다. 앞서 주장한 대로 오프라인 교류는 대단히 풍부한 양상을 지닌다. 우리 뇌가 몸짓, 표정, 말투 같은 은근한 아날로그 신호로 받는 정보를 대량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디지털 소통 도구가 뒷받침하는 저대역폭 잡담은 오프라인 교류를 모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뇌에서 사회적 교류를 처리하는 고성능 네트워크는 대부분 활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지닌 강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급한 일을 처리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시간보다 많다. 내가 스마트폰에 설치해둔 앱의 절반은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가끔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그 앱들이 수시로 보내는 광고성 알림 때문에 스마트폰을 들면 그대로 트위터나 인터넷 검색에 빠지는 패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딱히 몰라도 상관없는 잡다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느라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합리화했지만, 실은 그것이 삶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젠 정말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칼 뉴포트가 책에서 제안한 '디지털 정돈 30일'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정돈 과정
1.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 기술에서 벗어나는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
2. 이 기간에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활동과 행동을 탐구하고 재발견한다.
3. 이 기간이 끝날 때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차적 기술들을 하나씩 다시 쓰기 시작한다. 각 기술이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파악한다.
앱을 하나하나 보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앱이 반드시 필요한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왔다. 트위터 포함 90%의 앱을 삭제했다. 남은 것은 웹브라우저, 온라인 서점, 독서기록장,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은행, 카카오톡, 유튜브였다. 웹브라우저와 온라인 서점은 각각 생활용품과 전자책을 살 때 필요하고, 은행과 카카오톡은 직장 때문에 삭제할 수 없고, 독서기록은 질 높은 독서를 위한 필수 활동이고, 음악은 원래 가끔 들었으므로 중독될 염려가 없고, 트위터는 손절해도 고양이 동영상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종류의 알림을 껐다. 정보제공이라는 미끼로 나를 유혹하는 이벤트, 마케팅, 새 동영상 업로드 알림과 자동재생 기능, 택배 도착 알림까지. 밤 11시~아침 7시를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막고 퇴근하면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어두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일종의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절대 몰라서는 안 될 소식을 놓쳤을까 봐, 중요한 전화나 메시지를 못 받을까 봐, 책 구매가 줄어서 서점사 등급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보름쯤 지나면 알게 된다. 플래티넘에서 일반회원으로 내려가도 인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세상 모든 사건과 소식을 전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데 집착하면 충동구매와 정보 과잉으로 인해 피곤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덕분에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한 디지털 정돈을 반 년째 잘 실행하고 있다. 삭제한 앱 중에서 재설치한 것은 자주 이용하는 커피 체인점 앱뿐이다. 정보탐색 욕구는 주간지 <시사IN>과 장애 언론 <비마이너> 구독으로 채우고 있고, 트위터는 디지털 정돈 기간이 끝나면 일주일에 한 번 컴퓨터로 접속하기로 정했는데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 들어간다. 유튜브는 점심시간에 15분 정도, 짧은 영상 위주로 본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명상과 운동을 한다.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고, 식사시간에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니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며칠 전에는 스마트폰을 깜빡 잊고 출근했는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 스마트폰 없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신기술을 가치 자체의 원천이 아니라 자신이 깊이 중시하는 일들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본다. 그들은 약간의 사소한 혜택이 주의를 빼앗는 서비스를 생활 속으로 받아들일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신기술을 신중하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커다란 혜택을 누리는 데 관심이 있다. 또 마찬가지로 중요한 점은 그들이 다른 모든 사소한 혜택을 놓쳐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