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랑B Sep 22. 2021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기

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2012년, 카카오톡 고유의 소셜미디어 서비스 '카카오스토리'가 출시됐다. 서비스 개시 열흘 만에 가입자수가 1000만 명을 돌파한 순수 국산 모바일 서비스로, 당시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 인기가 많았다. 나도 카카오스토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사진과 글을 올리며 댓글, 감정 스티커로 친구들과 교류하느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한 지인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이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 수락, 댓글 알림 때문에 미치겠다. 5분에 한 번씩 알람이 울려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카스, 정말 지옥 같아!"




카카오스토리 웹 버전 BI.



 디지털 기술은 일상의 사소한 노동을 대폭 줄여주었다. 물건은 쇼핑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하면 되고, 음악을 듣기 위해 MP3 플레이어를 따로 휴대할 필요도 없어졌다. 카카오톡 등 실시간 채팅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먼 곳에 사는 친구나 친지와의 소통이 편리해졌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터치할 필요도 없이 부르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서비스도 많다. 교류는 쉽게, 볼일은 빠르고 간편하게. 디지털 기술 발전은 바쁜 현대인에게 넉넉한 시간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견되었다. 사람 손으로 하던 많은 일을 이제는 앱이 대신해주고 있으니 단순하게 계산하면 우리는 그만큼 많은 여가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곰곰 생각해 보면, 현실은 대형마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생필품을 주문한 뒤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누리기보다 화면에 뜬 수백 가지 상품을 구경하면서 시간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피로에 찌들어 몸이 늘어지는 저녁이면 배달앱으로 분식 세트를 주문해서 먹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SNS 피드를 구경하다가 잠들곤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반년 전까지 내 생활이 이랬다. 유튜브 영상 시청, 온라인 서점 신간 구경, 정보 검색을 빙자한 인터넷 서핑 등등을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갔다. 책을 읽다가도 트위터 친구가 멘션을 보냈다는 알림이 오면 책을 놓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머릿속으로는 다음날 출근할 걱정을 하면서 밤새 트위터를 본 날도 많았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얻은 여가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는커녕 일상 유지에 사용해야 하는 시간까지 디지털 세계에 쏟아부은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내 일상을 내 의지대로 꾸리지 못한다는 불편감.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친구도 스마트폰에 열중해 한 시간이나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밀려오던 서먹함.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걸 자각하고 난 뒤 다시 디지털 세계로 빠져들었던 경험 또한 많은 사람이 해보았을 것이다. 이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이에 관해 심도 있게 분석한 책,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에 따르면 디지털 신기술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용자주의를 최대한 오래 빼앗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필두로 이런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할 때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시간과 주의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도록 만들까?'를 주로 고려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포스트를 보고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서 약간의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페이스북 초대 대표 숀 파커가 2017년 가을에 어느 행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가 언급한 도파민은 뇌에서 보상(reward)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그에 따른 반응이나 피드백이 올 때 분비된다. 즉, SNS에 올린 글에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듯한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과격하고 자극적인 언행으로 화제를 모으는 이들을 관종(관심종자)이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사람은 누구나 '관종끼'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 개발자들은 이를 교묘하게 자극하여 사용자들이 오랜 시간 SNS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용자들이 오래 머무를수록 다양한 광고에 오랫동안 노출되고, 이는 곧 디지털 기술 기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신기술을 이용하는 데에도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다.



 돈에 눈먼 거대기업의 술수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해도 즉시 디지털 중독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사회연결망이라는 간판을 내건 서비스다. 뉴스앱이나 운동앱은 쓰지 않아도 타격이 크지 않지만 사회연결망은 사람 본능상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도 마찬가지다. 21세기는 회사 업무 연락과 지역 소모임을 카카오톡으로 하는 시대가 아닌가. SNS를 멀리한다는 건 곧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쉽사리 끊지 못하는데, 칼 뉴포트는 바로 이 점이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역설한다. 그는 'SNS나 실시간 채팅 서비스를 멀리하면 정말로 인간관계가 다 끊어져서 나 홀로 고립될까?'를 고찰해보라고 주문한다.



우리 뇌는 의사소통을 오직 오프라인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던 시기에 진화했다. 앞서 주장한 대로 오프라인 교류는 대단히 풍부한 양상을 지닌다. 우리 뇌가 몸짓, 표정, 말투 같은 은근한 아날로그 신호로 받는 정보를 대량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디지털 소통 도구가 뒷받침하는 저대역폭 잡담은 오프라인 교류를 모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뇌에서 사회적 교류를 처리하는 고성능 네트워크는 대부분 활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지닌 강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고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면 멀리 사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의 근황을 확인하는 데 SNS보다 편한 도구는 없다. 하지만 요즘은 영상통화 기술이 좋아서 만리타국에 있는 친구와 얼마든지 얼굴 맞대고 대화할 수 있다. 모임을 계획하느라 며칠에 걸쳐 온종일 문자메시지를 수백 통 주고받느니 날을 정해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의논하는 편이 시간 절약과 대화의 질 향상이라는 면에서 훨씬 좋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업무상 중요한 결정은 카카오톡이 아닌 회의실에서 이루어진다. 카카오톡은 대개 단순한 정보나 지시를 전달할 뿐이다. 즉, SNS나 카카오톡이 교류를 쉽고 빠르게 해 줄지는 몰라도 오프라인 교류를 대신할 필요성은 없다고 보는 편이 옳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급한 일을 처리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시간보다 많다. 내가 스마트폰에 설치해둔 앱의 절반은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가끔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그 앱들이 수시로 보내는 광고성 알림 때문에 스마트폰을 들면 그대로 트위터나 인터넷 검색에 빠지는 패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몰라도 상관없잡다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느라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합리화했지만, 실은 그것이 삶을 좀먹는다는 사실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젠 정말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칼 뉴포트가 책에서 제안한 '디지털 정돈 30일'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정돈 과정
1.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 기술에서 벗어나는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
2. 이 기간에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활동과 행동을 탐구하고 재발견한다.
3. 이 기간이 끝날 때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차적 기술들을 하나씩 다시 쓰기 시작한다. 각 기술이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파악한다.



 앱을 하나하나 보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앱이 반드시 필요한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왔다. 트위터 포함 90%의 앱을 삭제했다. 남은 것은 웹브라우저, 온라인 서점, 독서기록장,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은행, 카카오톡, 유튜브였다. 웹브라우저와 온라인 서점은 각각 생활용품과 전자책을 살 때 필요고, 은행과 카카오톡은 직장 때문에 삭제할 수 없고, 독서기록은 질 높은 독서를 위한 필수 활동이고, 은 원래 가끔 들었으므로 중독될 염려가 없고, 트위터는 손절해도 고양이 동영상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종류의 알림을 껐다. 정보제공이라는 미끼로 나를 유혹하는 이벤트, 마케팅, 새 동영상 업드 알림과 자동재생 기능, 택배 도착 알림까지. 11시~아침 7시를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해 전화와 문자시지를 막고 퇴근하면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어두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일종의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절대 몰라서는 안 될 소식을 놓쳤을까 봐, 중요한 전화나 메시지받을까 봐, 책 구매가 줄어서 서점사 등급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보름쯤 지나면 알게 된다. 플래티넘에서 일반회원으로 내려가도 인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세상 모든 사건과 소식을 전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데 집착하면 충동구매와 정보 과잉으로 인해 피곤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덕분에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한 디지털 정돈을 반 년째 잘 실행하고 있다. 삭제한 앱 중에서 재설치한 것은 자주 이용하는 커피 체인점 앱뿐이다. 정보탐색 욕구는 주간지 <시사IN>과 장애 언론 <비마이너> 구독으로 채우고 있고, 트위터는 디지털 정돈 기간이 끝나면 일주일에 한 번 컴퓨터로 접속하기로 정했는데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 들어간다. 유튜브는 점심시간에 15분 정도, 짧은 영상 위주로 본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명상과 운동을 한다.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고, 식사시간에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니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며칠 전에는 스마트폰을 깜빡 잊고 출근했는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 스마트폰 없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신기술을 가치 자체의 원천이 아니라 자신이 깊이 중시하는 일들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본다. 그들은 약간의 사소한 혜택이 주의를 빼앗는 서비스를 생활 속으로 받아들일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신기술을 신중하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커다란 혜택을 누리는 데 관심이 있다. 또 마찬가지로 중요한 점은 그들이 다른 모든 사소한 혜택을 놓쳐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면 지루한 시간을 견딜 도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는 스마트폰 외에 취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혹자는 스마트폰 많이 쓰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여러 가지 놀이와 취미활동과 잡담으로 시간을 활용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은 분명 편리하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기업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그 함정에 빠지는 대가는 바로 인간성 상실이다. 다른 사람과 눈 맞추며 인사하고, 맑은 하늘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책과 예술에서 영혼의 충만함을 얻고, 훌륭한 르포르타주로 질 높은 정보를 얻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 본연의 모습 말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새로고침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우리가 원한 바가 아니며 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디지털 기술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삶의 주도권을 쥐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어야 함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철학에 대한 오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