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딱 감이 와.

I just have a hunch.


감이 좋은 편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로또 번호와 시험 정답을 찍어야 할 때를 빼놓고. 아주 작은 변화도 감지를 잘 해내는 예민한 성격 덕분인지 나 스스로 '감이 좋다','촉이 좋다'라고 셀프 평가한다. 이런 셀프 평가에 약간 자만한 나머지 여행을 가서 식사를 할 때에도 남들의 리뷰나 포스팅을 믿기보다는 나의 감을 믿어본다. '지금 손님은 하나도 없지만 왠지 맛있을 것 같은데?'하고 모험 삼아 들어가면, 10번 중 8번은 성공이다. 80%의 성공률이면 제법 나쁘지 않다.


감이 좋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작용일지도 모른다.

평소 예리하게 주변을 살피고 몸속의 감각을 깨우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AI가 맛집부터 정치 경제까지 세상 모든 정보들을 알려주는 이 시대에, 나는 나의 직감과 촉을 믿고 아날로그적으로 판단을 내려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AI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해서 알려주는 것이지 않나. 나는 내 몸에 축적된 정보들을 가지고 판단해 보는 거다. AI와 인간의 두뇌싸움에서는 AI가 이기겠지만, 인간의 몸 안에 오랜 기간 차곡차곡 적립된 정보들은 생각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뭔가 쎄한 기분이 든다면 피하라'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이것은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믿으라는 뜻 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정말 맞다. 아주 어렸던 20대 때 나의 직감 덕분에 아마도 큰 일을 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일이 있다. 20대 후반 밤새 야근을 하고, 회사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발전한 때는 아니었기에 다양한 택시 어플이나 맵 어플은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아무리 새벽 어두운 곳이라 하더라도, 그냥 기사님에게 "00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고는 그냥 믿고 가는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다 그렇게들 다녔던 시절이라 용감하게 새벽에 혼자 택시에 올라탔었다.


회사에서 집 까지는 새벽에 택시를 타도 30분 이상은 걸리는 거리.

야근을 밥 먹듯이 했었던 슬픈 시절이라, 새벽녘 택시는 자주 타 본 적이 있었기에 보통 택시가 달리는 루트를 잘 알고 있던 나였다. 피곤하니까 눈을 좀 붙여도 되지만, 이상하게 택시를 타자마자 잠이 오기는커녕 긴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평소 가던 루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택시 기사('님'이라는 글자는 붙이지 않기로 한다.)에게 물었다.

"이 쪽으로 가시면 더 멀지 않나요? 00대로 로 가주세요."

"기사가 어련히 다 알아서 가는데 일로 가라 절로 가라 말이 많아?!"

나는 룸미러로 기사의 표정을 살핀다. 감이 좋지 않다. 범죄자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눈빛이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제가 가자는 쪽으로 가실 거 아니면 내려주세요."

"??? 내린다고? 지금 여기서 어떻게 내려요."

택시는 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이 택시는 내리는 것이 맞다!' 라는 정보가 몸 전체에서 느껴졌다. 그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내려달라고 고함을 여러 번 질렀다. 경찰에 전화하게 만들지 말라는 협박을 여러 번 하자, 결국 택시기사는 궁시렁 거리면서 차를 멈췄다.


낯선 길에서 맞이하는 새벽 시간보다 택시 안 공기가 더 무서웠다. 미터기에 찍힌 돈을 던지다시피 하고, 부리나케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는 출발하고, 그곳에서 다시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렸다. 택시가 많이 다니지 않을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목적지가 먼 곳인데 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직감이 느낀 공포의 정보가 맞지 싶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앞만 보고 걷는다. 더 걷다 보니 조금 큰 길이 나오고, 편의점과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편의점에서 위치를 확인한 뒤, 콜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이번 택시는 성공인 느낌이다. 좀 전의 긴장감과 공포감이 풀리면서 잠이 오려고 한다. 내가 부탁한 루트로 달려주는 택시. 기사님의 인상과 말투만 봐도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안전하게 집 앞에 내리면서 나도 모르게 '천만다행'이라는 네 글자가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오해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그 기사의 눈빛은 좋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거나, 또 그 외에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내가 너무 과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은 것은 피하는 것이 맞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을뿐더러, 예감과 직감이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그 기사의 눈빛과 택시의 분위기를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난 웬만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늦은 시간에 나 홀로 택시탑승은 절대 사절이다.


"음..이건 먹지 않는 게 좋겠어."

"나는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이걸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누가 보면 "혼자 또 예민하게 구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감각을 믿는다. 생각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 예감을 긍정적인 회로로 돌려보려고 한다. 몸이 느끼는 감각을 말로 뱉어서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머리는 그걸 그대로 믿고 실행한다고 하니까.


"나는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냥 딱 그런 감이 와!"

이렇게 말이다.


"I have a hunch that good things will happen to me.

I just have a hunch."






[한 모금 더]

hunch

'예감, 육감, 직감'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를 '노트르담의 꼽추'의 영어 제목인 The Hunchback Of Notre Dame 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사로는 '등을 둥글게 구부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감'과 '등을 둥글게 구부리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서로 너무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예감'이라는 뜻은 '등을 (둥글게) 구부리다'라는 동사적 의미에서부터 확장된 것이다.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거나 위험한 기운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몸을 웅크리거나 등을 굽히는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면 몸이 굳어지고, 어깨를 움츠리고, 자세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즉, hunch (over) 이라는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묘사한 표현이, 이런 자세를 취하게 만든 '느낌'을 뜻하게 되고, 결국 그 느낌 자체가 '예감, 직감'을 뜻하게 된 것이다.



[체크 체크]

I (just) have a hunch (that) ~ : (딱)~일 거라는 감이 와.

= My gut tells me (that) ~

= I have a gut feeling (that) ~


* gut은 일반적으로 배(내장), 소화기관을 뜻한다. 하지만 내장(gut)은 ‘제2의 뇌(second brain)’라고 불릴 만큼 실제로 자율신경계와 연관된 신경세포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내장이 감정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고, 몸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심장뿐 아니라 내장에서 발현된다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영어에서는 gut이 내장뿐 아니라 몸에서 느끼는 감정, 즉 직감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활용]

* 해석은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으로, 직역이 아니므로 주의!


I just have a hunch, that's all.

그냥 딱 그런 감이 와, 그뿐이야.


I have a hunch she is a good person.

그녀는 좋은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 딱 들어.


I just have a hunch that he likes you.

왠지 그가 널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


My gut tells me we shouldn’t trust him.

내 직감으로는 우리가 그를 믿어서는 안 돼.


I have a gut feeling he's hiding something.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촉이 오네.


Why do you think she's lying? - I just have a hunch.

왜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 그냥 딱 감이 와.







뭔가 긴가민가 할 때는 자신의 감을 믿어보세요.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답니다.

If you have a hunch, trus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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