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카렌시아
새벽이 주는 고요함을 아는 사람은 점차 그 시간에 중독된다.
고요하다는 표현으로 충분할까? 새벽은, 특히 해뜨기 전의 깊은 새벽에는 고요하다 혹은 조용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공기의 느낌이 있다.
가장 강한 중독의 포인트는 완벽하게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학창시절, 출근할 때의 새벽은 늘 시간에 쫓기는 긴박함으로 가득 찬 시간이거나 꿀 같은 단잠을 즐기느라 이불속에서 흘러가는 1분 1초도 아까왔던 시간이었다.
앞만 보고 달렸던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듯한 지금.
나는 새벽이 주는 압도적인 고요함 자체를 사랑한다.
그 속에서 사브작, 사브작 뭔가를 하고 있는 과정은 마치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쳐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필요 없는 것들을 떨쳐 내면서 흐미하게 보이던 것이 점차 또렸해 지는데, 가만히 보니 내 모습을 닮아있다. 나는 나를 조각하고 있었구나....
새벽녘의 고요함 속에 앉아 있으면, 본능은 최소화하고 이성이 뾰족해진다.
낮은 너무 바쁘고 내 이성은 조금 무디어 있다. 가족, 친구, 크고 작은 모임, 불쑥불쑥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금 바로 봐 달라 소리치는 SNS 메시지... 나보다는 타인과 세상의 일로 바쁘다 보면,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다스릴 수 없는 마음 상태로 지치곤 한다.
밤은 너무 많은 생각들로 넘나드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의 일까지... 그리움과 후회, 온갖 다짐과 다시 시작하는 계획들, 습관 같은 다짐들, 때로는 맥락 없이 온갖 상념들이 덤빈다.
정리라도 해보자 플래너를 펼치면, 느닷없이 배가 고프기도 하다.
배가 고프다니? 밤늦게 느껴지는 이 허기가 당황스럽다.
평소에도 식탐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 심지어 배가 고프다. 라면, 피자는 물론 한정식 한 상까지 거뜬히 먹을 기세다. 이 화려하고 풍성한 낮과 밤 시간의 상념들...
식욕 따위는 아예 들어설 틈조차 없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것이 매우 편안하고 본질적이라 느껴진다.
해뜨기 전의 깊은 새벽이면 이 느낌은 더욱 진득하다.
무뎌진 이성이 뾰족해지고, 반짝! 하고 한 번이라도 빛날 때면, 그것을 놓치기 싫어 글을 쓰곤 한다. 글을 쓰면서 이성도 더 뾰족하고 단단해진다. 다행히도 다음 날 보면, 이불 킥해야 하는 그런 글이 아니다.
느닷없는 허기와 온갖 현재, 미래, 과거의 상념이 뒤섞여 무뎌진 이성이 아니라, 새벽이 주는 맑고 단단해진 마음의 힘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마음도 다잡아 본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던 소가 극심한 긴장이나 깊은 상처를 안고 달려가는 곳. 머릿속에 표시해 둔 특정 장소가 케렌시아이다. 그곳으로 달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의 마지막 에너지를 모으며 결전을 준비한다고 한다.
투우장의 소만큼이나 내게도 그런 곳이 절실했더랬다.
새벽은 그렇게 달려가 쉬는 곳, 케렌시아가 되는 시간이다.
때로는 벅찬 하루, 때로는 텅 빈 하루, 그 하루가 어떠하든 하루를 살아갈 힘을 모으는 시간...
포 떼고 차 떼고, 온갖 치장이며 가면도 다 벗어버린 최소한의 담백한 나를 마주한다.
그런 나를 인정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최선을 찾아 계획하는 시간이 된다.
오늘, 새벽을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도 새벽 같은 시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