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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예술로 만드는 일

가장 큰 자유

by 소리


"네 작품은 똥이야!(Your work is shit!)"


후문에 따르면, 만초니의 아버지가 만초니에게 '네 작품은 똥이야~'라고 말했고, 그 말에 발끈한 피에로 만초니는 똥이 담긴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마침 아버지가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아버지 공장에서 통조림을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일기시대>, p.176, 문보영



나는 이 문제의 똥 작품을 곧바로 찾아보았다.


작품명 : <예술가의 똥, Artist's shit>, 1961, 알레산드로 만초니(Alessandro Manzoni, 1785-1873)


정말 있다! 이게 작품이라고? 만초니 작품을 보면서 나는 풋, 하고 웃었지만 이내 '어떻게 이런 생각을?'이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런 발상이 탄생한 순간의 정신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예술가의 똥, Artist's shit>, 1961, 알레산드로 만초니


만초니는 이런 통조림 깡통 90개 안에 자신의 똥을 넣어 밀봉하고 시리얼 넘버를 붙였고, 다음과 같은 문구를 4개 국어로 써 놓았다고 한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원상태로 보존됨, 1961년 5월 생산되어 깡통에 넣어짐"


그리고 이 깡통 1개의 가격을 당시 금 값과 같은 수준으로 매겼다. 세월이 흘러 2016년 이탈리아의 한 경매에서 이 똥 깡통은 무려 낙찰가 4억원으로 매겨졌다고 한다(이제 진심 '작품'이라 불러야 하는 건가...)


이 안에 진짜 똥이 들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결론은 지금까지는 '알 수 없다'이다.


프랑스의 한 예술가가 용감하게도 이 깡통의 뚜껑을 열어 보았으나, 안에는 또 다른 깡통이 들어 있었고 그는 내부의 깡통까지는 열지 않다고 한다. 그 후에도 예술품을 훼손하고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부정적 여론때문에 감히 누구도 열어보지 못했고, 그래서 깡통 안의 정체는 아직까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만초니는 원래 기존의 정통 미술을 추구하는 작가는 아니었고, 지금으로 말하면 전위예술과 비슷한 작품을 주로 구상하는 화가였기 때문에 이런 똥 작품이 그런 그의 스타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왔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만초니라는 예술가의 발상이 반짝이던 순간이
'니 작품은 똥'이라고 무시받는 순간임을
꽤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인정은 커녕 가족들 앞에서도 무시와 조롱, 독설로 그의 작품을 쓰레기 취급하는 아버지를 향해 얼마나 절망적이고 분노할만한 헀을까?



그런데 이 유쾌한 발상의 전환이 바로 이 절망과 분노의 감정 뒤에서 탄생되었다.

나의 작품은 똥이다 >>>>> 똥이 나의 작품이다 >>>>> 똥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면?


실제로 그는 자신의 똥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감히 누구도 훼손하기를 두려워하며 보존되기를 원하는 위대한 "똥 작품"으로 남았다.




굳이 예술가의 난해가 정신세계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의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난과 독설을 나를 공격하는 활과 창으로 그대로 받아드릴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유익한 것으로 발상의 전환을 할 것인가?


나를 항한 온갖 부정들을 역이용하는 힘.

만초니의 똥 작품은 그 통쾌한 힘의 실제를 보여준다.


선택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 또한 무척 희망적인 메세지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활과 창에 장렬히 전사할 수도, 작품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작은 두더지가 소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초니의 깡통을 다시한번 마음 속에 담아 본다.

저 안에 진짜 똥이 있기는 할까?라는 궁금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똥을 예술로 만드는 나"의 선택, 가능성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 북(Book) 노트

흰색 깔끔한 글쓰기 필사 노트 문서 A4 (1).png


* - <일기시대>, 문보영 에세이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맥커시 글/그림, 이진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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