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끄기
타인의 평가에 무너지지 않기.
이 말('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中)에는 나를 포함한 많이 사람들이 타인의 평가에 무너지는 일이 많다는 의미도 숨어있겠다.
가끔씩 생각한다.
인간말고 또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가령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다는 다른 포유류들? 사자나 침팬지나 영리하다는 돌고래들도?
아마도 아니지 싶다. 왜 인간은 유독 내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 지는 걸까?
때로는 자신이 무너질 만큼.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기가 막힌 비유를 보여준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내리는 판단에 비하면 뭇 사람의 평가는 나약한 폭군에 지나치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이 방향이 정해진다.
Public opinion is a weak tyrant compared with our own private opinion.
What a man thinks of himself , that it is which determines, or rather indicates, his fate.
<Walden>
타인의 평가는 폭군만큼이나 거칠고 잔인하게 위협적이지만, 실은 내가 내 자신에게 내리는 자기 평가에 비하면 턱없이 힘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타인의 평가는 '나약한 폭군'일 뿐이다.
내 운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 평가가 99.9%이다.
내가 무슨 선택을 하였느냐에 따라 운명의 방향키가 돌아간다.
타인의 평가가 아무리 쎄고 집요하다 한들, 내 운명에 끼어들 여지는 바늘구멍이다.
왜? 그들은 이방인이고, 주변 인물이고, 지나가는 행인 1, 2, 3..... 일뿐이니까.
99.9%가 아닌 0.1%에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 1, 2, 3... 이 내밷는 몇 마디가 내 마음의 소리보다 크게 들린다면, 나는 99%를 보지 못하고 굳이 내 인생에 없어도 좋을 0.1%를 보려 기를 쓰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99개를 가진 자가 1개를 더 가지려고 99개의 재산을 몽땅 낭비해 버리는 모양새이다. 얼마나 가성비없는 노력인가.
그들은 그들의 삶이나 책임지라 하고,
내 삶은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1분 1초를 아끼며 도전하고 내 삶을 사랑하면 된다.
타인의 평가에 나를 끼워 맞추려 노력할때 마음은 차갑고 딱딱하개 느껴진다. 그래서 불편하고 과정은 괴롭다.
하지만 내가 나를 높이려 노력할때 성장하는 나를 볼수 있다.
거기에는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뿌듯하고 신단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고 했다.
나의 별은 타인의 소리가 아니라, 내가 무슨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빛을 낸다.
♣ 북(Book) 노트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온도를 찾다>, 정여울
-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 이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