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버티던 마음이 쉬어간 곳

사랑이 체력이 되었던 날들

by 서수정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결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서서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오래도록 멈춤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이 떠난 뒤, 남겨진 것은 말이 아니라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한 가지 삶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아침에는 일을 했고, 낮에는 또 다른 일을 했으며
밤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는 일들로 하루를 이어 붙였다.
그 삶은 계획이 아니라 전투에 가까웠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했고, 마음은 늘 뒤따라왔다.
아프다고 말할 시간도, 쉬고 싶다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녀에게 하루는 늘 모자랐고, 밤은 늘 짧았다.
아이들은 그녀의 품에서 자랐다.
피로 이어지지 않은 아이들이었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믿지 못해 고개를 돌릴 때도,
사춘기의 문턱에서 거칠게 밀어낼 때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남의 아이를 마음으로 품는 일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의심을 견디는 시간, 거절을 삼키는 밤,
“엄마”라는 말이 나오기까지의 침묵을
그녀는 묵묵히 지나왔다.
그렇게 기른 시간은 말보다 단단했고,
혈연보다 오래 남았다.
아이들이 하나둘 성장하고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아무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밤을 맞았다.

그 밤이 이렇게 텅 비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의자에 앉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신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보호자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으려 하지 않아도 되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울음이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그 울음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버텨온 밤들, 삼켜온 말들,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던 책임들이 조용히 풀려나왔다.
그녀는 울면서도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더 잘하지 못한 날들을 세지 않았고,
다르게 살지 못한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저 여기까지 온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 가까이에서 루미는 날개를 접은 채 머물러 있었다.
다가오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녀의 울음이 스스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루미는 알고 있었다.
이 울음은 무너짐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온 마음이
비로소 쉬는 소리라는 것을.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눈가는 붉었고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 한쪽이 아주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의 삶도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 밤은 해답을 주지 않았고 다짐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낸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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