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 _ 유발 하라리
어느 날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주식 차트를 보고, 누군가는 웹툰에 몰입하고, 나는 메신저 알림을 확인하며 짧은 뉴스 기사 하나를 스치듯 읽는다.
모두 다른 것을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은 닮아 있다.
고립된 듯 보이지만, 실은 끝없는 연결 속에 있다.
언제부턴가 나의 하루는 수많은 알림음으로 시작되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누군가의 피드와 영상에 닿아 있다.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너무 연결되어도 피곤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와 연결되고 있는 걸까?”
“이 연결은 나를 살게 하는 걸까, 지치게 하는 걸까?”
이 질문의 실마리를 유발 하라리의 책 [넥서스]에서 찾았다.
“연결은 이제 생존의 조건이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인간은 더 이상 생물학적 진화만을 거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데이터,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진화하고, 변화하며, 생존한다.
연결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삶의 조건이 되었다.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관계를 맺고, 나를 정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연결은 ‘자유’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미리 설계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 지점에서 하라리는 단지 개인적 연결을 넘어서 정치적 연결 구조를 묻는다.
“민주주의는 왜 연결을 위협받는가”
유발 하라리는 통찰한다.
“오늘날 인간의 연결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체계는 기술도, 종교도 아닌 관료제이다.”
관료제는 사람을 얼굴 없는 번호로 만들고, 통계를 통해 정리하며, 거대한 시스템 안에 위치시키는 기술이다.
처음엔 합리성과 효율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인간의 개별성, 창의성, 결정권을 무디게 만드는 방향으로도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하라리는 말한다. 전체주의는 인간을 제거하고, 민주주의는 인간을 통계화한다.
그 둘의 차이는 잔인함의 정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그리고 데이터화된 시대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목소리를 가진 시민의 연합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된 소비자 집단으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넥서스]는 전통적 전체주의처럼 억압적이지 않은, 그러나 그보다 더 정교하고 무감각한 형태의 통제를 경고한다.
우리는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는 지조차 스스로가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은 사실상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결과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투표로 대표를 뽑는 체계’만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는 강조한다.
“진짜 민주주의는 정보에 대한 감각과, 비판적으로 연결을 재조직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기술이 아니라, 의식적인 태도와 사유의 힘이 진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연결을 선택하고 있는가?”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다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오늘 얼마나 의식적으로 연결을 선택했는가?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기보다, 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해 본 시간이 있었는가?
‘좋아요’나 조회 수가 아닌, 진짜 나를 알아보는 연결은 무엇인가?
[넥서스]는 말한다. 이제 중요한 건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 속에서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이다.
“연결을 재구성하는 용기”
우리는 연결의 혜택을 누리지만, 동시에 연결에 지배당한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판단은 더 어렵고, 소통은 더 피로하다.
그럴수록 필요한 건 ‘연결을 선택하는 힘’,
그리고 그 선택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용기이다.
우리가 묻지 않으면, 연결은 질문 없는 체계가 된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연결은 우리의 자유를 대신 선택해 버린다.
“다시 나를 바라보는 작은 질문”
책을 덮고 나는 내 일상 속 연결들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내가 내 생각을 만들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졌는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의심’과 ‘사유’를 멈추지 않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이 인간다움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는 묻는 힘, 질문하는 태도가 우리를 구분 짓는다.
하라리는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그 가능성은 질문하는 자에게만 열린다.
[넥서스]는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책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연결을 통해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하라리는 말한다.
“모든 연결은 선택의 결과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당신 대신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연결을 새롭게 맺고,
어떤 연결은 끊을 준비가 되었는가?
책을 덮은 후 나는 생각했다.
세상은 이토록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자주 고립감을 느꼈을까.
끊임없이 연결되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권력은 이제 강한 자가 아니라, 연결을 설계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연결이 곧 권력이라면, 내가 내 삶의 연결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기술, 더 많은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연결이 나를 설명하고 대신 선택하는 구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 목소리를 직접 내고 싶고, 나의 감정은 내가 읽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연결을 만들었고, 무엇에서 스스로를 지켜냈는가?”
이 질문을 붙잡은 채로, 내일도 연결 속에서 다시 나를 세워보려 한다.
연결되지 않더라도 잃지 않아야 할 것들, 그게 결국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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