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꼬리를 문 생각들

by 북극성 문학일기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서 흘러넘칠 때. 우리는 넘친 단어를 어디에 담아야만 할까요. 한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어요. 단 한시도. 바깥은 동부간선도로. 앞뒤로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옆엔 승객도 있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입니다. 창문이라도 열고는 생전 핀 적 없는 담배라도 피고 싶었습니다. 유달리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음. 안전벨트가 몸을 묶어두고 있습니다. 어디도 갈 수 없어요. 어디도 갈 수 없습니다. 여기는 동부간선도로. 돌아갈 수 없음. 묶여 있음. 안전을 담보로 모험은 포기 상태.


묶인 채로 계속 이동 중입니다. 미세먼지 가득 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생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차고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어쩌면 오늘 날씨는 제 머릿속과도 같군요. 뿌옇기만 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아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초능력이 있어서 하늘의 미세먼지를 다 없애고 화창한 날씨로 바꾸겠나요. 아니면 잘 열리지도 않는 창문 바깥면을 닦아서 반짝거리게 할까요. 심지어 오늘은 평소에 또렷하던 남산 타워도 안 보여요. 서울 어디서도 잘 보인다는 롯데타워도 보이지 않아요. 뿌연 하늘을 바라보니 뿌연 생각만 하네요.


조금이라도 깨끗해지고 싶으니 가방에서 안경닦이를 꺼냈습니다. 이럴 땐 지문이 묻은 안경이라도 닦아 눈앞이라도 또렷해져야지요. 저와 같은 현대인들, 반짝거리는 안경을 위한 준비 과정에 소홀해지지 맙시다.


안경을 닦는 30초 남짓, 천 조각으로 무언가를 문지르고 있는 행위는 여러 사물에 기도하는 방식과도 비슷해요. 제주도 석상의 코를 문지르면 아이가 생긴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또는 접시 위 동전 던지기에 성공하면 재물 운이 생긴다는 말에, 언제나 던지기 전에 동전을 쓰다듬으며 잘 들어가라고 기도했어요. 심지어 알라딘의 지니도 램프를 문질러야 짜잔 하고 등장하니까요.


코에도 기도하고 동전에도 기도하는데 안경이라고 못 할 것 있나요. 안전벨트에 묶인 김에 시력이 좋지 않은 이들의 구원자, 현대인의 동반자, 날마다 보살펴야 할 안경에 기도해 봅니다. 삶의 방향성도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요.


평소엔 신경 쓰지 않는 어떤 말들에도 휘청거리는 날이 있습니다. 잔뜩 곤두서있을 때는 제가 처한 상황을 멀리 보기보다는 근시안이 되곤 해요. 참, 전 근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일하고 번 소중한 월급을 야금야금 사용합니다. 열심히 일하다 지치는 도중 월급날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다시 힘을 내어 일하고 이 구조가 반복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기란 힘들어요. 참, 난시도 있습니다. 미래를 계획하는 일도 어렵고 삶에 가까이 맞닿아 있는 먹고 자고 쉬는 일도 때때로 어렵게 느껴지네요.


미래를 그려보고 싶어도 과거를 곱씹느라 하루가 다 가고, 알 수 없는 미래에 숨이 턱턱 막혀 10년 후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조차 두렵죠.


오늘도 성큼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릴 적부터 하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대상이 저에겐 문학과 이야기였습니다. 왜 문학을 사랑했을까요?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왜 잘하지도 못하는 문학을 사랑했을까요?


학창 시절 글쓰기에 소질이 있어서 두드러지게 윤곽을 드러낸 적 없었어요. 남이 쓴 글에 열심히 감동하고 위로받고 동경하는 쪽이었죠. 그 와중에 돈이 안 되니 문학은 포기하라는 이야기만 왕창 들어왔죠. 제대로 뭔가를 써본 경험도 없는데 말이에요. 많은 예술 분야가 그렇듯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열정과 사랑, 그리고 놓지 못함은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던 어린이에서 학생으로, 학생에서 어른으로 시간을 통과해 오면서 저에게도 한 가지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렸죠. 전 꾸준히 사랑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을 느릿느릿하게 단계 밟아가면서 사랑의 마음을 키워왔고 성장해 왔어요. 엘리베이터 타고 꼭대기 층까지 바로 올라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문학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릿느릿하게 단계를 밟아오며 키워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모으고 싶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왔어요. 백 명도 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제 마음속 어딘가 차곡차곡 쌓였을 거예요. 어떤 이의 말은 글로 써서 인터뷰 기사로도 남았고, 어떤 이의 말은 우리가 대화 나눈 그 공간에 숨겨져 있죠. 공적인 글과 사적인 대화로 보존된 이야기 사이에서 개개인의 고유한 언어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언어에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낯선 언어에도 흥미가 이어졌습니다. 한글로 된 아름다운 문장들처럼 외국어에도 분명 마음을 사로잡는 멋진 문장이 넘쳐나겠죠. 그렇게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문학하면 독일이라는 이미지가 당시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럼 독일어를 배워야겠다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한 공부인데 아직도 언어의 광활한 바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겨우 개헤엄 치고 있습니다.


타인으로, 멋지고 반짝거리는 온갖 것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를 발견해야 했던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막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았어요. 다만 생활과 동떨어진 글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누가 볼지 모르는 글을 차곡차곡 쌓아오면서도 사회의 한 사람으로 기능하고자 일을 다닙니다. 그 속에서 영감을 찾고 저만의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금보다 더 자신을 잘 알기 위해 앞으로도 몰두하겠죠.

이런 일은 성과가 바로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아주 미약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버스가 모든 정류장에 서서 승객을 맞이하는 일과 똑같아 보여요. 도 닦는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온갖 것을 받아들입니다. 일상에서 수행하기엔 역시 안경만 한 게 없네요. 날마다 안경을 닦으며 기도하려고요.


누군가 실용성을 따지며 조언할 수 있어요. 눈에 잘 보이고, 금전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라고요. 사실 누군가 뭐라고 말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 이치에 밝았더라면 컴퓨터나 수학 대신 애초에 문학을 선택할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다른 무엇보다 저를 옭아매는 것은 다름 아닌 저라는 사실. 못난 제 모습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요. 오히려 누구보다 엄격하죠.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할 때도 필요한 법인데, 너 왜 이렇게 못해? 언제까지 좋아만 할래? 하며 최대한 근엄하게 굴죠.


제 안의 근엄한 어르신을 돌려보내고, 사랑만 해주기엔 게을러질까 두려워요. 직장인이지만 열심히 쓰고 있다가 아닌, 글도 잘 쓰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도 닦는 마음으로 스페이스 한 번에 기도, 한 번에 기도를 반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죠.


근엄한 어르신도 있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코가 빨간 어린아이도 존재해요. 그 어린아이는 객관적으로 현재 어떤 상황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불안해해요. 오늘 하루를 망치려고 작정했다는 듯이 울어대다가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금방 감동해요.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해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기도 하죠. 그러다가 오히려 슬퍼해요. 어떤 건 노력해도 가질 수 없음이 확실히 보이니까요.


어르신의 비판적인 이야기를 조금 덜 신경 쓰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도 달래 가며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뭐가 됐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은 명확해요. 당장 내일의 일도 알지 못하지만 그러니 10년 뒤의 모습을 꿈꾸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계속 쓸 거예요.


계속 쓰고, 더 잘 쓰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머리를 아프게 울리는 고민 속에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재능이 없어도 쓰고, 잘하는 게 꾸준함밖에 없을지언정 루틴을 만들어서라도 쓸 겁니다.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잠깐 쉬었다가 쓰고, 그렇게 반복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지겠죠.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겠죠.


저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 존재해요. 미래엔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또 동동거리며 업무를 보고 월급 받으며 분투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모니터 앞에 존재했던 것처럼 10년 뒤에도 모니터 앞에 존재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


알 수 없는 미래를 바로 여기에서 꿈꾸고 실현하죠. 스스로 약속하고 싶은 게 있다면, 미래엔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가 아닌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진지하게, 모니터에 앉아 쓰기에 대해 고민할 거라는 다짐. 그 다짐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결국은 태도인 것 같아요. 흘러나오는 사념의 찌꺼기를 글로 담고, 삶의 우선순위를 쓰기에 두는 일. 그것을 위해 야금야금 무언가를 열심히 씹어 삼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에서 달콤함을 맛보고,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들을 경험하며 쓴맛을 느끼고, 도파민 만땅인 일에서 홧홧한 활력을 얻습니다. 여기서 추가하고 싶은 것은 감칠맛. 감칠맛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글을 맛보러 마트 시식 코너에 간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그들이 제 글을 한번 쓱 읽고 집에 돌아갔는데도 계속 생각나는, 마치 평양냉면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그렇게 괜히 1+1 행사로 물건을 사고 다 먹었는데도 계속 떠올라 또 찾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감칠맛을 주기 위해선 감칠맛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 법. 푹 썩힌 메주에서 나는 깊은 된장 맛, 조미료에서 나는 익숙한 대중적 맛, 부글부글 발효과정을 거치며 톡 쏘는 막걸리의 맛. 그런 맛들을 연구 하며 준비하고 있으니 천천히 따듯한 마음으로 기다려주세요.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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